집밥 김밥
나들이 음식, 김밥 1
어렸을 때 소풍 가기 전날 밤이면 소풍에 가져갈 과자며 음료수며 모두 늘어놓고서 내일 비 오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던 기억이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풍날에는 왜 그리도 비가 자주 왔는지. 소풍! 우리 어렸을 때는 소풍이라는 말을 썼어. 우리가 소풍, 소풍 노래를 부르며 들떠 있으면 아버지는 늘 ‘원족 가는구나’ 하셨고. 원족! 아버지는 소풍을 원족이라고 부르셨어.
할아버지가 원족이라고 부르시고 엄마, 아빠가 소풍이라고 부르던 것을 너희는 현장학습이라고 부르지. 현장학습!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건 교육청 서류에나 어울리는 말인데, 소풍이라는 예쁜 말을 버리고 굳이 이렇게 퍼석퍼석 메마른 단어를 쓰라고 강요한 이유가 뭘까? 누군가 왜 학교에서 아이들 공부는 안 시키고 데리고 나가 놀리느냐고 항의라고 했나, 아니면 어느 높으신 분께서 교육적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는 단어를 쓰라고 지시하셨나?
소풍은 逍風으로 쓰는데(消風으로 쓰기도 해) 이 逍라는 한자는 노닐다, 거닐다는 뜻이야. 소풍은 바람 속에서 거닌다는 뜻일까, 혹은 바람처럼 노닌다는 뜻일까? 소풍은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단어인 것 같지만 풍류(風流)의 전통과 닿아 있어 운치가 있어.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을 떠나 한나절 나들이를 다녀오는 것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엄마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도 소풍이라는 말을 곧잘 썼어. 어디 특별한 관광지, 먼 여행지를 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가까운 곳에 잠깐 바람 쐬러 다녀오는 것, 도시락을 싸가는 좀 긴 산책이 소풍이야. 요즘은 피크닉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피크닉이라고 하면 예쁜 도시락 바구니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알록달록한 깔개도 있어야 할 것 같고 뭔가 좀 갖춰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어.
이에 비해 소풍은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운 나들이 느낌이야. 바람을 따라가서 바람과 함께 바람 속을 바람처럼 노닐다 오는 거니까 가볍고 자유로울 수밖에. 문화재를 살펴볼 필요도 없고 유명 건축물을 눈여겨볼 필요도 없고 정상에 오를 필요도 없고 심지어 기막힌 자연경관을 찾아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어. 그냥 거닐다 오는 것, 노닐다 오는 게 소풍이야.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삶을 이 세상에서의 소풍이라고 말했어.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엄마가 삶을 소풍 하듯 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귀천하여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 아름다웠더라고.
세상은 어느 한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어. 아들, 너는 내게 그걸 가르쳐 줬어.
일본식 한자어라고 지금은 쓰지 않는 원족이라는 말도 아주 재미있어. 원족은 遠足이라고 써. 멀리까지 발자국을 찍는다는 뜻이겠지? 한동안 잊고 있던 이 단어를 기억해내고 나서 갑자기 영화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 프로도와 샘이 마을을 떠나 걷던 중에 샘이 들판의 허수아비 옆에 딱 멈춰 서서 이렇게 말하지.
“여기까지예요. 여기서 한 발만 더 디디면 집에서 가장 멀리 나온 거예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오로지 사람의 두 발로만 이동해야 했던 시절에 내가 가 본 가장 먼 곳이란 곧 내 두 발로 발자국을 찍은 가장 먼 땅이 되는 거야. 엄마 어렸을 때의 소풍만 해도 말 그대로 원족이었어. 그 당시 학교에서는 다 같이 걸어서 소풍을 갔거든. 엄마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정릉동에 있었는데, 1, 2학년 때는 주로 동네 가운데 있는 정릉으로 갔었어. 걸어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저기가 우리 집이다!’, ‘우리 할머니 나와 계시네’ 하는 소리가 들렸지. 조금 더 자란 뒤에는 북악터널을 걸어서 지나 세검정까지 갔었어. 5, 6학년부터는 드디어 버스를 타고 조금 떨어진 창경궁(당시에는 창경원이라고 했어)으로 갔고. 그러니까 4학년까지의 소풍은 정확히 원족이었던 거지.
소풍에는 도시락이 빠지면 서운하고 도시락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김밥이 최고지. 요즘은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다양한 김밥을 마음대로 골라 사 먹을 수 있지만 엄마 어렸을 때는 일 년에 딱 두 번, 소풍 가는 날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어. 손이 많이 가니까 다른 집은 몰라도 우리 엄마는 소풍날 이외에 절대 안 싸줬거든. 운 좋게 형제가 다른 학교에 다녀 소풍날이 다르면 두 번 더 얻어먹을 수는 있었지만 학교에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가면 친구들이 모두 하나씩 집어먹어 점심을 굶기 마련이었어.
아들, 너 유치원 다닐 때 김밥 참 많이 쌌었어. 기억나니? 다섯 살 때 다니던 유치원 원장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원아들을 데리고 현장 학습을 나가는 열의를 보이셨잖아. 덕분에 엄마는 매주 김밥 빨리 싸기 기록을 경신했지. 그러고 보니 현장학습 때 도시락 싸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요즘은 도시락도 단체로 주문하거나 현장에서 사 먹는 게 일반적이잖아.
전에 집밥을 사전에서 찾아본 적이 있어. 집밥은 집에서 해 먹는 밥으로 급식이나 외식과 다르고 도시락과도 다르다고 나와 있더라. 그러니까 집밥은 급식이나 외식의 상대 개념이기도 하고 도시락의 상대 개념이기도 하다는 거야. 똑같이 집에서 만든 음식이라도 집에서 먹으면 집밥, 도시락에 싸가지고 나가 먹으면 집밥이 아니라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집에서 싼 김밥 도시락이 집밥이 아니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요즘처럼 동네마다 김밥 집이 즐비하고 도시락 배달 업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집에서 싼 도시락과 사 온 도시락은 구별해줘야 하잖아. 그래서 엄마는 집에서 싼 집밥 김밥은 집에서 먹든 들고나가 먹든 집밥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나가는 김밥은 집밥의 꽃이 아닐까 싶기도 해. 집에서 만든 음식인데 대충 차려 식구끼리 편하게 먹는 것이 아니라 솜씨를 부려 만들고 예쁘게 담아 가지고 나가서 서로 바꿔 먹기도 하잖아. 그렇다고 잔치음식처럼 대놓고 생색내는 건 아니고 은근히 집밥을 내보이며 자랑하는 거지. 그냥 집에서 먹는 대로 싸왔어~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대부분 공산품이고 다 거기서 거기야. 유부를 넣네, 애호박을 넣네, 청양고추를 넣네 등 수없이 많은 비법 재료들이 있지만 기본 재료는 다 비슷비슷하지. 그렇게 비슷한 재료 비슷한 조리법을 가지고 집집마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김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니? 마치 룰이 철저히 정해진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멜로디의 무한 변주 같기도 하고, 기실 우리가 사는 모습의 메타포 같기도 하고.
아들, 네가 너의 가정을 꾸린다면 소풍을 가지 않더라도 가족과 함께 김밥을 싸 먹어 봐. 요즘 같은 기후 환경이나 보건 위생 상황에서는 다시 야외로 소풍 나가 도시락 먹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김밥은 싸 먹을 수 있잖아. 김밥은 도시락을 위한 메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맛있는 김밥은 싸자마자 그 자리에서 집어 먹는 거야. 우리 아들처럼 썰지 않은 채로 집어 들고서 입안 가득 베어 물고 먹어도 좋고, 엄마가 칼질하는 동안을 못 참고 반대편 꼬투리부터 집어 먹어도 감질나게 맛있지.
갓 싸 놓은 김밥은 밥의 따뜻한 기운이 그 안에 들어간 모든 재료들을 감싸며 하나로 아우르고 있어 별 거 넣은 것 없어도 맛있는 것 같아. 이렇게 따뜻한 김밥을 싸 먹으며 서로가 서로를 감싸고 어우러졌으면 좋겠어. 자주 해 먹다 보면 너희 식구들이 좋아하는 너희 집만의 김밥 레시피도 나올 거고 김밥 싸는 솜씨도 좋아질 거야. 집밥의 꽃이 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