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가 그렇게 잘 우는 편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나이를 먹다 보니 요즘은 눈물이 많아진 것 같아. 심지어 넷플릭스에서 아주 화사하고 유쾌한 요리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울컥한 적도 있다니까.
[나디야의 초간단 레시피]라는 영국에서 만든 요리 다큐였는데 기본 컨셉이 바쁘고 서툴기까지 한 초보 엄마들한테 빠르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럴듯한 요리를 알려주는 거야. 꽤 유명한 요리사인 듯한 나디야는 처음부터 편법이 난무하는 요리라고 전제하면서 통조림이든 냉동 반제품이든 융통성 있게 사용하는 레시피를 알려 주더라고.
레시피를 알려준 다음에는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집에 찾아가서 함께 요리를 하는데, 2화에서 방문한 집의 아기 엄마한테 요리 시간을 줄여서 얻게 된 30분에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어. 그리고 그 젊은 엄마의 대답이 나를 울렸어.
세상에!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대. 느긋하게 차 한잔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책이라도 좀 읽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부족한 잠을 자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 가며 아무리 종종거려도 일은 끝이 없고, 먹을 걸 신경 쓰다 보면 같이 놀아주지 못한 것 같고, 열 일 제치고 애 하고 놀아줘야지 하다 보면 집안은 폭격 맞은 것처럼 엉망이 되어 버리고…. 게다가 미디어와 이웃들은 이것도 해야 한다, 저것도 중요하다 매일매일 온갖 정보들을 쏟아내고, 내가 해주지 못한 모든 것들은 고스란히 죄책감이 되어 목을 조르고 ….
그 안타까움, 그 무력감, 그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기억나고 공감되어 울컥 눈물이 쏟아지는 한 마디였어.
그렇게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늘 아이에게 무언가 덜 해주는 것 같고 더 해 주고 싶은 워킹맘의 마음은 내가 너희를 키우던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다를 게 없는지.
아들, 집안일은 모두 단순해 보여도 의외로 상당한 정보와 지적 능력이 필요한 노동이야. 그중에서도 요리는 순서를 잡고 각 과정에 필요한 도구와 소요되는 시간까지 가늠해 종합 계획을 세워서 수행해야 하는 아주 복잡한 작업이야. 앞서 말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요리사는 요리의 순서를 잡고 미리 해 놓을 수 있는 것과 즉석에서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고 적절한 도구를 활용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 등의 요령을 알려주고 있어.
엄마 생각에 어떤 요리든 이 종합 계획, 프로세스 짜기만 잘하면 시간을 1/3은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 특히나 약간 난이도가 있는 요리를 하거나 여러 가지 요리를 한꺼번에 해서 상을 차려야 할 때는 말이야.
엄마는 아들이 요리를 잘해서 잔칫상도 뚝딱 차려낼 수 있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축하해 줘야 할 특별한 날, 선물 같은 요리 한 두 가지 정도는 손수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이번엔 잡채를 시도해 보려고. 잡채는 어려운 요리 같지만 공정만 잘 이해하면 그다지 까다로울 것 없는 요리야. 오늘은 우선 잡채 만드는 방법을 프로세스 중심으로 설명해 줄게.
우리 아들도 살면서 잡채를 꽤 많이 먹어봤겠지만 한 번도 만드는 걸 눈여겨본 적은 없을 테니 개요부터 알려 줄게. 잡채는 여러 가지 재료를 채 썰어서 따로따로 볶거나 삶거나 데친 다음, 간장 양념을 해서 다 같이 버무리는 거야.
우선 잡채에 들어가는 재료부터 알아보자. 정답이 있는 건 아닌데, 보통 많이 하는 잡채에는 당면, 양파, 당근, 표고버섯, 돼지고기, 시금치 또는 부추가 들어가.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엄마가 보기에 가장 일반적인 건 이 재료들인 것 같아.
이 중에 양파와 당근은 씻어서 썰어서 식용유에 볶아야 하고, 돼지고기는 미리 양념에 재 뒀다 볶아야 하고, 표고버섯도 살짝 양념을 해서 볶는 게 좋아. 시금치는 다듬어서 데쳐서 찬물에 식혀 둬야 하고 부추를 쓸 경우는 익히지 않고 세척해서 썰어만 두면 돼. 당면은 삶아서 씻어서 다시 기름에 볶고 간장, 설탕을 넣어 졸여줘야 하고.
이제 조리 순서를 잡아 보자.
제일 먼저 할 일은 고기에 밑간을 해놓는 거야. 두어 시간 전에 미리 해 둬야 할 일이지.
건버섯을 사용한다면 버섯을 물에 담가 불리는 것도 미리 해 둬야 하는 일이야. 마른 표고버섯은 한, 두 시간쯤 불려야 하니까.
다음은 시금치 데치기. 데칠 물을 끓이면서 물 끓는 동안 채소를 다듬어 씻는데 시금치와 양파, 당근, 대파까지 한꺼번에 해 두면 좋겠지.
그다음은 양파, 당근, 버섯 썰기. 이때 당면 삶을 물을 끓이기 시작해야 해.
이제 양파, 당근, 버섯, 고기 순서로 볶으면서 물이 끓으면 당면을 넣고 삶아.
볶는 공정이 끝날 때쯤 당면이 익으면 찬물에 헹궈서 볶아줘.
마지막으로 모든 재료를 큰 그릇에 담고 양념을 해 버무려 주고 적당한 그릇에 담으면 돼.
물론 프로세스는 일하는 사람의 속도나 재료의 상태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 물이 끓을 동안 채소를 썰어서 볶는 것까지 가능하지 않다면 물을 끓이기 시작하는 시간을 조정하면 돼. 예를 들어 채소를 썰어 놓은 다음에 불을 켜는 것으로.
이런 식으로 일하면 4인 가족이 두어 번 먹을 만큼의 분량, 당면 기준으로 10인분 정도(알다시피 엄마가 손이 좀 커서 말이야)를 만드는데 1시간쯤 걸려. 이 정도는 투자할 만하지 않을까? 잡채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별로 필요 없고 네 동생 같은 사람은 밥 없이 잡채만으로 한 끼 충분하니까.
아들, 세상의 어떤 일도 배우고 익히지 않고 저절로 잘할 수 있는 건 없어. 집안 일도 마찬가지야. 요리든 청소든 세탁이든 모두 배워서 하는 거고 익혀서 능숙해지는 거야. 그리고 배우고 익혀 능숙해지고 나면, 그땐 능률의 강박에서 벗어나 일 자체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해.
요리는 왜 하는 걸까? 옛날에야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할 수밖에 없었지만 요즘은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하면 유기농이든 비건식이든 다이어트식이든 무엇이든 내일 새벽에 우리 집 현관 앞에 배달시킬 수 있는 세상이잖아. 내가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든다고 비용을 그다지 많이 절약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요리를 하는 것은 요리를 하고 함께 먹는 전 과정에서 형성되는 교감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거야. 혼자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스스로를 돌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더 낫겠지.
요리도 공정이나 기술에 익숙해지고 나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일의 목적을 상기하고 과정을 음미해야 해. 언제까지나 능률만 생각하며 모든 일을 해치워 버리기만 한다면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 조금 더디더라도, 결과물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일 자체가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게 제일 훌륭한 요령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