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세계화
떡볶이 세계화
10여 년 전 정부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공을 들인 떡볶이 세계화는 왜 실패했을까? 떡볶이가 외국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식감과 맛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당시 외국인들에게 떡볶이를 시식시켜도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2022년 현재 떡볶이는 세계가 열광하는 음식이 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 슈퍼마켓에는 우리의 인스턴트 떡볶이가 진열되어 있다.
모두 알다시피 떡볶이의 세계화는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한류가 이뤄냈고, 팬데믹 상황에서 가속화되었다. 드라마에서 떡볶이 먹는 장면을 보고, 좋아하는 K팝 스타가 떡볶이 먹는 영상을 보면서 외국인들은 K 컬처의 일환으로 떡볶이에 관심을 가졌고 좋아하게 된 것이다.
한국 드라마의 해외 수출은 이미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 대장금에서 시작됐지만 당시에는 한식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이 있더라도 한식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 사이 한류는 더욱 거세어졌고, 한국을 직접 방문한 관광객의 숫자도 늘어나고, HMR이 개발되어 수출되고, 한국 프랜차이즈들이 외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고 많은 한식 중 왜 하필 떡볶이가 인기를 끌까? 세계인의 입맛이 변했을까? 그 사이 떡볶이가 더 맛있어졌나?
떡볶이는 예전에도 충분히 맛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제 떡볶이는 재미있어졌다. 다양해졌고,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 것이다. 승부욕을 자극하는 단계별 매운맛, 의외의 궁합을 선보이는 토핑들, 노포부터 개성을 자랑하는 새로운 브랜드까지 다양한 떡볶이집의 발굴 등이 모두 떡볶이에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들이다.
드라마나 예능뿐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이렇게 재미있고 다양해진 떡볶이가 자꾸만 소개되고, 규모를 갖춘 프랜차이즈들이 자리 잡고 경쟁하면서 떡볶이의 노출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들도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들도 매운맛 챌린지에 참가하고, 밀떡파 쌀떡파를 구분하고, 토핑을 나열하고, 맛집을 섭렵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이제 떡볶이는 세계화된 것일까? 떡볶이를 수출할 상품으로 생각하고, 세계화된 음식의 모델을 햄버거나 피자 같은 글로벌 식품 기업의 식당 체인에서 찾는다면 아직 떡볶이가 세계화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햄버거나 피자처럼 전 세계에 촘촘하게 체인망이 깔리지 않았으니까. 세계 여러 나라 음식 문화에 스며들어 그 일부가 되는 것을 세계화라고 본다 해도 아직 멀었다.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 버릴 위험도 없지 않으니까.
세계화된 음식으로 자주 꼽히는 것이 피자나 파스타 등의 이탈리아 음식과 중국음식이다. 둘의 공통점은 이민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중국음식은 말할 것도 없이 화교라고 불리는 중국인 이민자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탈리아 음식 중 피자는 엉뚱하게 미국에 의해 세계화됐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음식 문화가 전파되고 확산되어 전 세계에 공유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우선 이탈리아 시장통에서 척척 접어 선 채로 먹어 치우던 만만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 피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은 미국으로 이주해 고향의 음식을 해 먹었고 몇몇 솜씨 좋은 이들이 고향 사람들이 주로 드나드는 식당을 차리기도 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났고, 미국 병사들이 이탈리아에 진주했다. 거기서 피자를 먹어본 병사들은 고향에 돌아와서도 피자를 찾았다. 이탈리아 이민자들만 드나들던 작은 식당은 귀향한 군인들과 그의 친구들로 북적거렸을 것이다.
피자집은 늘어났고 레시피는 이탈리아의 전통을 벗어나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화했다. 이제 피자는 이탈리아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미국의 음식이 되었다. 그다음 과정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를 따랐다.
전쟁이 식문화를 휘저어 섞고 변화시켜 온 역사는 많이 알려져 있다. 글로벌 기업이 전 세계를 시장화해 대량 생산한 상품을 팔아 대는 것도 익숙한 일이다. 이러한 식품 산업의 글로벌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에 대해 여기서 말할 생각은 없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대목은 미국의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작은 식당들이다. 그들의 음식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지의 식재료와 조건에 맞게 적응되어 있고, 미국에서 자란 자식들의 입맛에도 맞도록 맛도 적당히 변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 갑작스러운 수요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도루묵’ 같은 착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래 사진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 집의 추수감사절 상차림이다. 음식을 장만한 친구는 스스로 국적 없는 상차림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한식이다. 떡볶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사진만 봐도 제법 매콤할 것 같이 새빨간 떡볶이는 이 집 아들의 여자 친구(유럽계 미국인)를 위해 장만했단다. 여자 친구가 한국 드라마 마니아이고 한국 음식도 잘 먹는다고 한다.
이민자들의 식탁은 참 애틋하다. 거기에는 하루치, 혹은 한 해 치의 안도와 깊은 그리움, 다독여지지 않는 불안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민자들의 식탁은 참 풍요롭다. 거기에는 대륙과 대양을 넘나드는 연대, 도전과 신생(新生)의 설렘이 뒤섞여 있다.
나는 떡볶이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HMR 떡볶이,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수출도 좋지만 현지에 적응한 이민자들의 떡볶이 매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국을 방문한 적 없는 그 나라 사람들이 그 식당에서 정성껏 만들어 주는 떡볶이의 맛을 보고 그 매력에 빠져 단골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골들이 레시피를 받아 적어 가 자기 집 주방에서 자기만의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다. 그 나라 식문화가 우리의 떡볶이와 만나 새로운 식문화로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길거리에서 태어나 가난한 음식, 약자의 음식으로 자라나 한식의 대표 메뉴 자리까지 올라간 떡볶이의 역동성과 포용력이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발휘됐으면 좋겠다.
떡볶이의 자발적 디아스포라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