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맛, 맛, 맛
잃어버린 맛, 맛, 맛
나는 꽤 오랜 시간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을 했지만 요리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다. 직접 음식을 만든 적은 거의 없고 대부분 서류를 들여다보는 것이 내 일이었다. 요리를 글로만 했다고 농담할 정도로 레시피는 달달 외우지만 실제로 만들어 본 적은 없는 음식도 많다.
서류 작업 다음으로 많이 한 것이 품평이다. 시제품이 나오면 먹어보고 평가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맛있는 것 먹고 잔소리만 하면 되니 세상 편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 입에 맞는 걸 찾는 일이라면 그렇겠지만 다수가 좋아할 맛을 찾는 것이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관능(官能)은 요리사는 물론이고 식품을 기획, 제조, 판매하는 모든 종사자들에게 중요한 능력이다. 그런데 관능을 잘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쉬운 예로 간을 잘 보는 간순이, 간돌이들이 이런 자질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 간이 맞고 안 맞는 기준은 또 어디 있는가?
맛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맛은 음식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사람의 입안에 들어가 오감을 자극했을 때 그 사람의 뇌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즉, 먹는 사람의 축적된 사적 경험과 그의 타고난 체질 등이 결합된 개개인의 음식취향과 특정 시간의 컨디션, 그 음식에 대한 선입견 등등이 맛을 결정하는 것이다. 짜다, 싱겁다, 달다, 쓰다, 시다, 맵다, 고소하다, 비릿하다, …. 그래서 맛있다 또는 맛없다!
예전에는 많이 사용했지만 요즘은 잘 안 쓰는 말 중에 ‘기성품(旣成品)’이라는 단어가 있다. 특정인을 위한 맞춤이 아니라 미리 규격대로 만들어 놓고 파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기성품이라는 말이 사라져 버린 것은 역설적으로 거의 모든 상품이 기성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산업화되었다, 표준화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럼 음식은 어떨까? 음식도 당연히 기성품화, 산업화, 표준화가 급속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장도, 김치도, 반찬도 모두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고 있다.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음식점의 조리식품도 기성품화 됐다. 서울이나 대전이나 광주나 부산이나 제주도나 똑같은 인테리어의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똑같은 그릇에 담아 파는 똑같은 된장찌개, 똑같은 불고기가 모두 기성품화 된 식당 음식이다.
어떤 상품이 기성품화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우선 충분한 수요가 형성되어야 하고, 유통의 기반이 조성되어야 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자본과 기술이 준비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기술에는 표준화를 위한 데이터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마다 있던 양장점, 양복점들이 사라지고 기성복이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신체 사이즈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데이터에 기반해서 표준 사이즈를 정하고 거기서 약간씩 벗어나는 것은 개인이 감수해 수선을 하든 불편한 대로 입게 된 것이다.
신체 사이즈만큼 사람의 입맛도 제각각인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표준화해 음식을 기성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제조 회사마다 다수가 좋아할 것 같은 맛을 정하면 거기에 맞는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 사 먹을 것이고, 인기가 없는 제품은 그만큼 대중의 입맛에 맞추지 못한 것이니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프랜차이즈 식당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대량 생산 대량 소비는 어느 곳에서나 상당한 폭력성을 동반한다. 소비자의 선택에는 가격, 유통, 광고 등 맛 이외의 요소들이 알게 모르게 더 많이 개입되고, 입맛은 거기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몸에 맞지 않아도 대충 맞춰서 기성복을 사 입듯이 음식도 입에 맞지 않지만 대충 맞춰 사 먹고 그러다 보면 그게 그 음식의 맛인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추세를 한탄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다. 업계에 종사하는 나는 물론이고 소비자인 우리 모두는 기꺼이 이 거대한 굴레에 들어가 고유의 입맛을 포기하고 대신 다른 수혜를 입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새 천년을 코 앞에 두고 떡볶이에도 프랜차이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많은 브랜드들이 생겨났고 많은 점포들이 간판을 달았다. 삶의 막장이었던 떡볶이 장사가 꽤 큰 목돈을 쥐고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번듯한 요식업이 된 것이다.
세상에는 어머니 수만큼의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떡볶이는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학교 수만큼의 맛있는 떡볶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개인 점포들은 프랜차이즈 점포의 인지도에 밀려나고, 프랜차이즈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가장 대중적인 몇 개 맛으로 수렴해 갔다. 소비자는 그 몇 개의 맛에 억지로 끼워 맞춰지고 소울 푸드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내게 맛있는 떡볶이집 옆에 네게 맛있는 떡볶이집이 있지 않고, 맛있는 떡볶이 프랜차이즈 옆에 맛있는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 보다 더한 떡볶이 맛의 표준화는 코로나 시대에 밀키트라고 불리는 반조리 가공식품에서 진행됐다. 슈퍼마켓 판매대에 나란히 진열된 각 제조사의 떡볶이 밀키트, 인스턴트 떡볶이를 보면 떡볶이는 이제 라면과 같은 종류의 음식이 되었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떡볶이는 길거리에서 태어난 음식이니 처음부터 기성품이었다는 점이다.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는 팬에 한가득 떡볶이를 끓여 놓고 팔았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떡볶이를 만들어 주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떡볶이는 각 가정에서 시작해 기성품화, 산업화, 표준화로 내몰린 다른 얌전한 한식들이나 외국에서 수입된 음식들과는 좀 다른 경로를 걷지 않을까?
떡볶이집이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편재되고 대기업에서 반조리제품을 쏟아내더라도 떡볶이는 그렇게 호락호락 표준화되지 않을 길거리의 근성이나 톡톡 튀는 젊은 역동성을 갖고 있지 않을까? 막연하지만 그런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