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左) 튀김, 우(右) 순대
떡볶이는 중앙에 둬야 한다.
긴 세월 동안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 한 채 길거리 불량식품이라 불리던 음식, 떡볶이가 어느새 분식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어묵, 순대, 삶은 계란, 오징어 튀김, 김말이, 야채튀김, 만두, 김밥 등 값싸고 만만한 음식들이 떡볶이를 중심으로 자리다툼을 한다.
불량식품이 아니라 하나의 음식점 메뉴로서 떡볶이를 다룬 기사는 80년대 들어서 보이기 시작한다. 81년 초 매일경제에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햄버거 하우스, 음식 백화점 등 당시 성장하는 새로운 간이식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는데, 여기에 프라이팬을 놓고 직접 조리하여 먹도록 하는 즉석 떡볶이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 기사에서는 새롭다고 했지만 즉석 떡볶이는 이미 7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신당동을 중심으로 DJ가 있는 즉석 떡볶이집이 생겨나고,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뒤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번져갔다고 한다.
신당동은 가본 적 없는 나도 80년대 초반에는 분식점에서 즉석 떡볶이를 먹었고, 조금 번화한 다른 동네의 DJ 있는 떡볶이집에 드나드는 친구들도 많았다.
이처럼 떡볶이가 어엿한 하나의 음식으로 인정받고, 요식업계의 시민권을 획득한 데는 즉석 떡볶이의 공이 크다. 즉석 떡볶이는 더 이상 아이들의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한 끼 식사가 될 수도 있는 음식이었다.
즉석 떡볶이를 탄생시킨 일등 공신은 휴대용 가스버너의 보급이다. 그전까지는 식탁 위에서 무엇을 익혀 먹으려면 숯불이든 연탄불이든 불을 피우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번거롭고 까다롭게 불을 피워가면서까지 그렇게 해 먹을 만한 음식은 고기구이 정도였지 떡볶이는 언감생심이었다.
휴대용 가스버너가 보급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떡볶이도 내 식탁에서 내 맘대로 내가 조리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떡볶이의 주요 고객인 여학생들의 취향에 딱 맞는 판매 방식이었다.
이미 떡볶이와 궁합이 입증된 여러 음식과 채소가 한 냄비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맛있지만 즉석에서 끓여 먹는 의미가 크지는 않다. 여기에 당면, 쫄면, 라면 등의 면 사리가 들어가 줘야 즉석 떡볶이는 완성된다. 불지 않게 딱 내 입맛대로 면을 익혀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즉석 떡볶이의 최대 장점이고, 떡볶이만으로는 뭔가 허전한 부분을 면이 채워주며 비로소 한 끼 식사로 완성될 수 있었다.
요즘도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고 간혹 예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떡볶이 혐오의 첫 번째 이유는 탄수화물 폭탄 정크푸드라는 것이다. 만약 소스에 떡만 끓여 먹는다면 밀가루 떡이든 쌀 떡이든 영양이 불균형할 것이다. 반찬 없이 밥만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음식이 손쉽게 맛있어져 위험해졌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칼로리만 채워주는 값싸고 맛있는 음식은 개인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둔감하고 게으르게 만든다. 하지만 먹을 것이 궁하던 시절 노점에서 한 개 5원에 사 먹던 떡볶이가 아니라 요즘의 떡볶이를 두고 이런 비난을 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 싶다.
나는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맨 처음 떡볶이에 어묵을 썰어 넣은 것이 누구일까 궁금하다. 추측해 보자면 어묵을 많이 먹던 부산쯤에서 겨울에 누군가 꼬치어묵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던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어찌 됐든 떡볶이와 어묵은 기막힌 조합이다.
어묵이 들어가는 순간, 떡볶이의 영양 불균형은 상당 부분 완화된다. 물론 어묵의 위생상태나 생선 함량, 어묵을 튀긴 기름의 산패 여부 등의 문제가 남지만 양질의 어묵을 넣는다는 전제 하에 식품영양의 측면에서도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삶은 계란과 순대도 떡볶이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다. 전통적으로 떡볶이와 함께 먹어 온 음식들은 모두 마치 밥상의 밥과 반찬처럼 떡볶이의 부족한 영양분을 보완해 왔다.
최근에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다양한 음식들이 떡볶이와 합을 맞추고 있다. 치즈, 소시지 등의 다른 나라 음식, 치킨, 차돌박이, 곱창 등 몸값 비싼 육류 등등.
그래도 높은 칼로리와 나트륨 함량을 문제 삼는다면 이건 외식과 가공식품 산업 전반의 문제로 보아야지 떡볶이라는 메뉴에 국한시킬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