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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Oct 26. 2022

낯선 사람의 호의

호의 그리고 의심,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

 시골길을 혼자 저녁에 걷다 보면 무서울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다리를 하나 넘고 나면 논이 펼쳐져 있고 가운데로 길이 나 있습니다. 왼쪽 논 건너편에는 기찻길이 있고 오른쪽 논 건너편에는 산만 덩그러니 있어 15분 정도 걷는 동안에는 인가가 없습니다.


 길은 하나이고 지나가는 차량은 동네가 목적지인 경우가 대부분이 이었습니다. 지나가는 경우는 국도가 있어서 굳이 동네로 들어가는 길로 진입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이 길을 걷는 대부분은 지나가던 차량이 태워준다고 하면 반색하며 타고 갑니다.


 해가 짧은 어느 저녁, 하교하는 길에 승용차를 얻어 탔습니다. 30대 정도의 남자 어른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이 흉흉한데 낯선 차를 겁도 없이 타도 괜찮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싶어서 대답은 하지 않고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습니다.

 “농담이야, 형도 ㅇㅇ중학교 졸업했어. 교복 보니까 친근해서 농담한 건데 너무 얼어붙은 거 아니야?”

 

 그 이후에도 별생각이 없었고 자라면서 지나다니던 차를 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나서는 그 길을 걸을 일이 없어 낯선 차량을 탈 일은 없어졌습니다.


 어느 날 모 프로그램에서 미제 사건을 다루는데 2003년 여중생이 하굣길에 납치 피살된 사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고 정황상 차량을 이용한 범죄일 수밖에 없어 면식범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지역의 특성상 지나가던 차량이 동승을 해주는 경우 대부분 타고 간다는 것에 주목하는 부분이 나왔습니다. 그 부분을 보고 어릴 때 의심 없이 탔던 생각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요즘은 가양 실종 사건 등 낯선 사람을 경계하게 하는 범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주말에 마켓 컬리에서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박스를 나르는 레일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2 1조로 근무를 는데 업무 중이다 보니 서로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힘든 근무를 같이 해서인지 함께한 분이 많이 챙겨주었습니다. 마감할 때쯤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고 부평에서 왔다고 하니 그는 송내에서 왔다며 가는 길에 태워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낯선 사람의 차에 타는 일이라 살짝 걱정되었습니다. 스쳐 지나갈 사이라 이름도 나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하며  성격  이상한 사람은 아닐 거란 생각에 고맙다며 받아들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왔는데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 2인승이라   어려울  같은데.”

 “그럼 괜찮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도 불편해할 수도 있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차량은 4인승인데 2인승이라며 거절한 건 뭐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아내를 찾으러 가려고 할 때 그가 다시 말을 건넸습니다.

 “괜찮으면 같이 가요. 아내 분이 조금 불편할  있겠지만 셔틀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가는 길에 아내를 만나 함께 일했던 분이 태워다 준다고 하는데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아내는 불편한  싫어해서 평소라면 사양했을 텐데 많이 힘들었는지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와 함께 그의 차로 향했습니다.


 뒷좌석에는 아이들을 태우느라 카시트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접어 트렁크에 넣었습니다. 2인승이라고 했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딸의 아버지라고 했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사라졌습니다. 도리어 괜한 의심을 했던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아내는 뒷좌석에 앉아 말없이 왔지만 덕분에 편히 왔고 저는 동승해준 그에게 감사한 마음에 일하며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왔습니다.


 살아가며 낯선 사람에게 직접 해를 당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발생하는 일을 보며 경계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하니 인복이 좋은 건지도 모르지만 낯선 사람의 호의로 온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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