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과 뉘앙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김동리의 <을화>란 소설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사실 <무녀도>였나 긴가 민가 해서 인터넷의 도움을 받음- 번역의 한계로 고배를 마셨다고 배웠습니다. 소설에서 나오는 귀신이 단순히 ghost로 번역이 되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정서들이 단순 직역이 되어버려 적확한 묘사들이 전달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작품이 많음에도 비영어권이라는 한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으로 다양한 문화들이 인정받고 있고 외국인들도 한국어를 배우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한글을 가르치며 가장 큰 강점은 쉬운 글자라고 하지만 한국어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어 표현이 많다는 것을 다들 공감할 것입니다. 중국 글자인 한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일본어나 영어인 외래어가 혼재되어 있고 유행어인 줄임말들도 많습니다.
요즘 유행어인 “반모”는 인터넷에서 불특정 사람들과 연령과 상관없이 편하게 말하는 “반말 모드”의 줄임말이라는 것은 들어보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유행어는 기성세대들이 잘 모르지만, 신세대들도 모르는 말이 많습니다. 요즘 기사에서는 사흘(3일)이라고 적어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2020년 8월 15일이 토요일이라서 8월 17일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어 사흘 쉰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는데 사흘이란 표현으로 4일 쉰다고 오해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루, 이틀은 자주 사용하지만 사흘, 나흘은 자주 사용하지 않다 보니 한국인 중에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사실 요즘 읽고 있는 <1Q84> 2권을 읽던 중 “묘사는 적확하고 색감이 풍성했다.”란 부분을 보았습니다. 적확하고란 표현은 처음 보아서 당연히 정확하고의 오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1판 1쇄가 2009년 9월 8일, 지금 보고 있는 책이 44쇄이니 그동안 이 오타를 아무도 찾지 못한 것인가 하고 약간의 희열을 느꼈습니다.
504페이지 “상세하고 적확한 묘사가 필요해”라는 부분을 다시 보았을 때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적절하고 확실하다는 뜻인가 하고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적확한다는 과녁 적, 확실할 확으로 정확하다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반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미를 중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오타인 줄 알고 느꼈던 희열은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단 생각과 나중에 적확한 표현을 쓸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쓸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글을 잘 쓰기 위해 다독을 결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