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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Mar 23. 2023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알고 있었는데 살짝 꼬였네

 아내의 생일은 3월 23일입니다. 3월 중순만 해도 날씨가 쌀쌀해서 패딩을 입고 있었기에 겨울에 태어났다고 놀렸었는데 며칠 사이에 완연한 봄이 되어 개나리도 폈습니다.  매년 아내의 생일에는 연차를 사용해서 집에서 쉬었는데 이번 3월에 어머니 환갑이 있어 본가에 내려가기 위해 다른 날짜에 연차를 사용했습니다.


 아내의 생일이면 주로 요리를 해주곤 하는데 미역국, 갈비, 육전, 잡채를 했던 날이 가장 손이 많이 갔던 날입니다. 미리 준비해 놓은 것도 없고 연차를 사용하지 않아서 요리를 하기엔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미역국이랑 생일 도시락을 준비해야지 하고 서둘러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요즘 조리법이 잘 공유되어 있어 괜찮은 메뉴만 고르면 됩니다.


 이영자 님의 편스토랑 리소토 도시락을 할까 했으나 바로 먹을 것이 아니라 점심으로 먹을 건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락은 미역국이랑 목살 갈비, 잡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오전 근무였는데 근무를 바꿔주어 21시 퇴근이었습니다. 바보처럼 날짜를 생각하지 않은 바람에 시간에 쫓기게 되었습니다.


 퇴근해서 평소처럼 마트에 도착하면 10시가 예상되었습니다. 생일 케이크도 사야 하고 장도 봐야 할 텐데 집에 도착하면 아내가 먼저 잠들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침은 안 먹을 거라 도시락으로 준비할 계획이었지만 그래도 23일이 되기 전에 케이크에 초을 켜고 축하해주고 싶었습니다.

 생일 편지를 먼저 썼습니다. 아내는 정성이 담긴 글을 좋아해서 연애시절에도 음료수에 붙여주었던 포스트잍도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생일에 편지를 꼭 씁니다. 작년에는 나름 이렇게 꾸며 보기도 했는데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 큰일입니다.


 아내가 퇴근하고 마트에 간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18시에 퇴근하니 19시 반쯤 전화했습니다.

 “자기야, 혹시 마트 몇 시까지 하는지 알아?”

 “ 22시까지는 하겠지. 오후 근무하고 있을 텐데 이 시간에 왜 전화했어?”

 “아니, 혹시 소고기만 국거리만 사달라고 부탁할까 하고.”

 “자기야, 그래도 본인 생일 장을 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방금 나왔어. 괜찮으니까 이따가 그냥 와. 집에 미역은 있어.”

 “응, 알겠어.”


 퇴근하자마자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역으로 달렸습니다. 다행히 바로 지하철을 타고 내리자마자 다시 환승지점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내리자마자 카페로 가서 케이크 먼저 샀습니다. 이미 마감업무 중이었으나 다행히 케이크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레드벨벳 케이크를 사고 미션을 달성했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마트로 향해서 국거리용 소고기랑 양념목살 구이에 사용할 목살, 그리고 김밥재료를 샀습니다. 잡채 생각했다가 도시락이니 김밥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아내는 샤워하고 났더니 갈증이 난다며 오는 길이면 에일 맥주를 사다 달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미 짐이 많았지만 짐은 내가 준비한 거고 맥주는 아내가 원한 거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하며 맥주를 4캔이나 샀습니다. 편의점 맥주는 왠지 1캔 사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 그래도 무거웠는데 무리를 했습니다.

 아내는 집에 온 저를 보고 좋아했습니다. 기대 안 했는데 감동이라며 케이크와 에일 맥주를 함께 했습니다. 재료를 보더니 언제 일어나서 하려고 그러냐며 그냥 저녁으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려고 했는데 덕분에 살았다고 말하고 미루었습니다.


 생일 저녁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목살을 구워 먹었습니다. 원래는 갈비양념을 만들어서 재울 생각이었지만 퇴근 이후 빠르게 저녁 준비하느라 바로 구웠습니다. 아내는 본인이 끓이는 것보다 맛있다며 공치사를 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기념일 중 하나인 아내의 생일을 보내며 글을 씁니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인데 제 생일처럼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특별히 해준 것이 없는데도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는 아내, 새벽부터 생일 축하해 주신 아버지, 어머니, 형 생일은 연락도 없더니 형수 챙기는 남동생, 며칠 전부터 선물로 고민하던 여동생까지 가족이 총 출동해 준 덕에 감사한 하루를 보냅니다.


 p.s. 찐~ 생일 축하해요!! 생일이 별 거냐며 일하던 당신에게도 뜻깊은 하루였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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