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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Nov 11. 2021

첫눈이 내리는 어느 날

함께라서 잊어버리는 소중함

 연이어 비가 내려서 아침에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망설였다.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하면 되었지만 손쉽게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아내는 오늘 비가 안 온다고 대답했다. 문을 나서는 순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눈이 오면 왠지 모를 설렘과 함께 기분이 좋아졌었다.


 눈을 본 순간, 하필이면 출근길에 눈이 오는 거지 하고 생각을 했고 육성으로도 뱉었다.

 “나랑 같이 첫눈 맞는데 안 좋아?”

아내는 나의 반응을 살폈다.

 “좋지. 근데 아까 비 오냐고 물어보았잖아.”

 “비는 안 오잖아. 눈이 오는 건데”

 “눈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머리가 금방 다 젖었어.”


 몇몇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가는 것이 보였다. 눈이 주룩주룩 비처럼 오는 통에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기보다는 빨리 건물 내로 들어가고 싶었다. 비처럼 내린 눈에 살짝 기분이  은 것은 아내 탓으로 돌렸다. 조금 지나서 첫눈을 함께 맞아서 좋아하고 있는 아내에게 기분을 풀어낸  같아 내심 신경이 쓰였다.


 아내는 연애 전부터 내가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나 마음을 담은 소소한 쪽지를 받는 것을 좋아했었다. 연애 초에는 감정 표현을 자주 했었는데 함께 지내는 시간이 오래되며 서로에게 익숙해진 탓일까? 삶이 퍽퍽하여 지친 탓일까? 마음이 변하진 않았는데 표현하는 방법이 달달하기보다는 틱틱거리기 일쑤이다.


 아내가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데 작은 것 하나 챙겨주지 못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첫눈에 대한 생각은 나에게 연애 초기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일침이 되었다. 물론 생각한다고 바로 바뀌진 않는다.


 퇴근하면서 아내가 일을 하면서 작성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시엘이처럼 꼬리가 있었다면 살랑살랑 흔들며 나 잘했지 하고 칭찬해달라는 촉이 왔다. 종이를 본 순간 글자도 너무 작고 양이 방대해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을 했다.  

 “일은 직장에서, 집으로는 가져오지 말자.”

 아내는 아쉬워하는 빛이 역력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결과물을 작성하는 과정의 해프닝을 이야기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깜빡했다는 듯

 “자기가 한 결과물은 주말에 볼게.”

 “그래도 신경 쓰였나 봐.”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일 수 있겠는가? 퇴근 내내 이야기를 했는데. 다만 퇴근하면 8시, 저녁 차려먹고 치우고 잠깐 쉬었다가 잠드는 일정이었다. 출근할 때면 23시면 칼같이 자는 나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잠깐 볼 여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저녁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일하느라 고생했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으로 보상받고 싶었다. 물론 그로 인해 어제 아내에게 짜증을 낸 것도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해 보일 수 있지만 속은 매우 여린 편이다. 감정 노동서비스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업무 시간은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그 외 시간은 웃음이 줄고 있다. 웃음 총량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나도 일은 직장에서, 일하며 스트레스받은 감정은 집으로는 가져오지 말아야겠다. 함께라서 잊어버리기 쉬운 소중함을 되새기며 이 글을 적는다.


 p.s.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진이에게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 당신과 함께라서 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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