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 몰츠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주지사와의 파티
1997년 뉴저지 공장이 첫 시공할 때 주지사가 참석했다. 뉴저지 상원 의원, 로버트 토리체리( Robert Torricelli) 이었다. 그는 이탈리안 계통이었데, 첫인상은 동네 이태리 아이스크림 주인같이 보였다.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악수를 나누고 다녔다. 그는 내게 다가오더니 곧 악수를 청했다. 그때 우리 회장, 프리드먼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에 대해 장황히 설명을 하는 거였다.
“이 프로젝트의 연구소장으로서, 그는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완전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As the chief institute of this project, he is fully committed to overseeing this initiative and ensuring its successful completion.”)
여기서 'commitment’은 간단히 의무가 있다 정도의 의미하지만, 그가 사용한 문장에서는 프로젝트를 끝까지 이끌기 위한 나의 책임과 결단력에 달려다는 강조하는 회장의 엑센트에 주지사 앞에서 아니라고 하기도 그래서 그냥 웃음으로 맞장구쳐 주었다. 그런데 이놈이 주지사가 옆에 있는 아내에게 슬금슬금 다가가서 이쁘다나 어쩌니 해대면서 허튼수작을 하는 것이 눈길이 아주 안 좋았었다. 참 그러다 보니 한 300명이 있는 오픈 축제 이벤트에 집사람 빼곤 동양인이 없었다. 이 사람들 보기엔 동양 여자가 하나가 정말 귀하게 보였던 순간이었다. 아내는 애 둘의 엄마였지만 하얀 살결과 까만 머리칼이 대조가 되어서 처녀처럼 이뻤다. 이 친구도 보는 눈들은 있어서, 사람 이쁜 것은 알아보고 아내 주변에서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그는 잠시 호들갑을 떤 후에도 또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몇 번 인가 그놈, 주지사와 마주쳤지만 눈으로 인사하곤 상투적 말이 몇 마디 더 오구 갔다.
나는 주 상원 의원 처음 봤고 켄터키에서 더 큰 프로젝트로 했어도 주지사 코빼기도 보지 못했었는데 뉴저지엔 주지사가 나타나서 보통 사람보다 더 허접하게 놀고 있어서 좀 의아해하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회장, 프리드먼이 돈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주지사 이 친군 후원금 소스를 만들려고 왔던 것이었다. 그러니 그는 상원 의원이라기보다 잔칫집에 흥 정도나 독구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건들 건들한 게 영 마음에 안 차는 친구였지만 그래도 이 뉴저지 주가 2,3위 정도 되는데 미국 안에서 영향력이 제법 큰 사람이지만 실제는 나와는 거리가 어려 방면으로 먼 사람이었다. 좀 있으려니까 그는 연단에 올라서 기자 회견을 하는 거였다.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고 난리가 났다. 우리 뉴저지에도 초정밀 유기막( Membrane) 가동 생산하게 되었으니 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떠들어대며 제품의 부가가치를 숫자로 쭈욱 나열하는 거였다. 그걸 듣고 있는 순간 나는 피싯하고 웃었다. 그 중대한 태그놀로지는 내 머릿속에 있었다. 내가 가진 테크놀로지는 달나라 가는 테크놀로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약간 앞서 있는 테크놀로지임엔 틀림이 없었고 성공하면 엄청난 재정을 보장해 주는 좋은 사업이었고 뉴저지 세금의 보고였다.
그날 유독 기억나는 게 회장 부인이었다. 우리 회사 회장, 프리드먼은 뉴저지의 명문 스티븐텍그놀오지 대학을 나왔고, 내 동창이다. 그는 학력보다 그의 경력이 너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동유럽에 7살 때 이민을 온 거였다. 그 나라가 아마 우크라이나에서도 저기 미개발지역으로 국경선상에 있던 것 같았다. 허구한 날 생사가 왔다 갔다는 말을 하곤 했다. 소련과 미국 자유진영 사이에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무진 시달렸던 우크라이나 그리고 그 안에서도 그는 유일한 유태인이었다. 그가 미국 와서 자수성가로 성공하여 부를 쌓았고, 이 회사 지분의 상당수를 소유하고, 현 회장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결혼할 땐 아침에 냉장고 문을 열면 먹을 게 없었다고 했다. 맨 주먹으로 사업하고 주급 생활, 월급 생활 나중엔 대기업에 CEO로 그 자리매김을 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잭 웰치 (GE의 전 CEO)나 이 회장이나 팔팔 뛰는 스피릿이 있었다. 말을 안 하고 있을 때 특히 눈이 항상 말을 걸어왔었다. 그의 눈은 맑은데 빛이 늘 반짝였다. 혹시 오늘도 저 눈이 마주치면 내혼이 쭉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오늘은 저 눈에 꽂히지 말아야겠다"
속으로 이런 생각으로 꽉 차고 있었는데 그 옆에 있던 회장 부인이 웃으면 손을 내민다. 무심결에 인사를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자기가 프리먼 회장 부인이라고 소개를 먼저 했다. 아마 머리가 하나 더 있었어 보였고, 첫인상인데도 아주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다시 좀 자세히 뜯어보니 60 정도일 텐데 아직 팽팽한 40대처럼 보였다. 나는 동양식으로 머리 숙여서 인살 하고, 고개를 막 들려고 올릴 때 앗! 내 눈높이가 이 여자 엄청 깊게 파인 무방비 상태의 가슴이 딱 걸린 거였다. 앗! 노부라였다. 내 눈은 본능적으로 거기에 잠시 멈춘 거였다. 이게 아마 멈춘 시간이 0.07초가 되려나? 이부인, 로라는 이 회장 부인이 가만히 있었으면 그냥 지나갈 상황이었는데 여자의 본능인지 뭔지~ 할망구가 처녀 흉낼 내려는 것인지~ 이 부인이 갑자기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아니 거의 반사적으로 자기 가슴을 손으로 팍! 가리는 거였다. 아주 팍~ 소리를 주변에 있는 사람들 들었고, 나도 들고 있었다. 이거~ 어찌나 민망한지 …… 미안하다고 말로 표현할 수도… 그렇다고 내색 않고 그냥 지나자니 그렇고…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든 ……이상하고, 야리꾸리한 순간이 타임머신의 시간 프레임 속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다음은 내가 어찌나 비굴한 사람인지 내 눈이 회장이 어디에 있는지? 그 사람, 회장을 찾고 있었다.
“아~ 이 비굴함!”
아~ 다행히 이 회장은 상원 의원이랑 뭐가 그리 재미난 지 박장대소하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만 가지 생각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띵~ 한 게 약간 정지된 듯싶기도 한 이 어처구니없는 순간이 스로우 모션( slow motion)으로 지나가고 있을 쯤에 나도 모르게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 간신히 정신을 되찾고는 칵테일 바가 어딘지부터 찾고 있었다. 그리로 그 자리를 피해야 했으니 아무 말없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가서 톤잌 한잔 벌컥 드려마시면서 무시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거 내 잘 못인가? 아님 노부라에 가슴을 파고 파티장에 나오는 저 여편네 잘못인가? 누가 문제인지? 참 예상치도 못했던 일로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런 데에서 무방비였던 나도 문제가 있고, 저 사람도 문제인 것 같았다. 근데 내 마음이 진정되면 진정될수록 내 속에서 은근히 화가 나는 거였다. 이번에 마실 줄도 모르는 칵테일 한 잔을 벌컥 더 들이켜면서 생각했다. 어처구니없는 의상을 입고 왔으면 그걸 보라는 건지? 보지 말라는 건지? 입고 오는 건 저 사람이 선택을 했다면 나도 보든 말든 내 선택이 아닌가? 까지 생각하니 좀 마음이 편해졌다. 아~ 그때처럼 국가가 알아서 길면 잘라대고, 짧으면 가위질하던 그 시절, 옛날 5 공화국 시절이 그리운 적이 없었다. 회장 부인인가? 하는 여자는 처음 만나서 날 이렇게 당항 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에도 파티에 참석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미국 여자들이 자유분방하게 - 특히나 늙은 여자들이 - 예의 없이 옷을 걸치는 통에 눈을 어디에 두워야 할지 참 난감할 때가 많다.
한참 몇 달이 지나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얏트 호텔에서 할 때에 이 부인이 또 나왔다. 그땐 이 부인이 가슴팍에 큰 걸로 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야 이해가 되시는 모양이군. 그렇게 노출하고 싶었으면 해변을 가셔야지…."
하고 나의 혼잣말에 내가 핏!하고 웃었다. 그날은 40대로 보였던 여자가 아니라 주시해야 할 늙은 노파였기에 연회 온종일 피해 다녔다. 나는 그 사건 이후부터 우리 애들 의상을 점검한다. 나는 우리 애들 파티에 가면 좀 자제한 옷을 입길 항상 조언한다.
"얘 어딜 가냐?"
"핼러윈 파티"
"너무 이상하게 입지 말라"
"난 그냥 까만 드레스야"
"응 그거 평상시에도 입어도 되겠구나"
"그럼 누구 딸인데"
"오케이 "
이렇게 단속해도 애들은 자기 하고픈 대로 한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단속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추호의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