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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수록 손해다

보은으로 인사(人事)를 한다고?

by 구쓰범프

"마침 지쳐가고 있었는데, 해임이 되었어요." 자동차 시동을 거는 순간, A에게서 카톡이 왔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전화 주세요."라고 답했더니 곧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입사한 지 1년 조금 넘은 거 아니었어요?"

"네. 맞아요. 저도 좀 황당하긴 한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마침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이 들던 중이기도 했고요. 하하."


그는 애써 담담하려 했지만 나는 솔직히 좀 화가 났다. 그가 새 직장을 잡는데 약간의 힘을 보태기도 했던 터라, 짧은 시간 만에 그만두게 된 게 아쉽고 미안했다. 더 놀라운 건, 새 CEO가 부임한 지 불과 6개월도 안돼 전임자가 뽑은 사람을 내 보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후임자는 새 CEO의 전 회사 부하라는 것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리더가 바뀌면 사람도 물갈이해야 하는 걸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자기 사람들로 진용을 갖추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ㅇㅇㅇ 사단이니 ㅇㅇㅇ 라인이니 하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물론 손발을 맞춰 본 사람들이고 서로 눈 빛만 봐도 알 테니 얼마나 편하겠는가?


하지만 인사를 그렇게 접근하면 조직엔 금세 균열이 생긴다. 리더의 신뢰를 듬뿍 받으며 입성한 파워엘리트 그룹이야 거칠 것이 없겠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며 물과 기름의 관계가 될 위험성이 크다.


같이 일을 했다고 해서 모든 일에 만병통치약처럼 통하는 것도 아니다. 사업 내용이나 분야가 다르면 새로 공부를 하고 인맥지도도 다시 그리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익숙한 사람들로 자리를 채워 일이 잘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사달이 나기 시작한다. 잘못한 것을 꾸짖으니 서운해하고, 자리를 뺐자니 사적 감정이 어른거리고, 그래서 놔두자니 망가져가고. 어쩌지, 어쩌지 하며 주저하다가 급기야 사고가 터진다. 그제야 서둘러 다른 사람으로 봉합해보려 하지만 너무 먼 길을 돌아온 터라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린다.


무리해서 짜 맞춘 진용에서 하나 둘 속을 썩이는 동안 자신의 성과도 하락을 거듭하고 이내 해임설이 나돈다. 만회할 시간은 없고 스스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질 즈음이면, 한때 머리를 조아렸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알고 각자도생을 위한 생존법을 동원한다. 권력의 무상함을 깨달았을 땐 이미 버스는 떠난 뒤다.




리더가 부임한 직후 단행하는 '첫 번째 인사'는 그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첫 인사에 유능한 인재들로 자리를 채우고, 잡음이 적으면 출발도 한결 가벼워진다. 그러나 이걸 실천하기가 만만치 않다. 특히 과거에 도움을 받은 이들에게 보은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시작일까?


리더가 되면 빚을 갚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것이 조직을 위한 결정과 충돌한다면 냉정해야 한다. 보답을 해야 할 사람이 있을지라도 꾹 참고 기존 인물들의 실력을 먼저 가늠해 보아야 한다. 당연히 교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가, 역으로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 답이 나온다. 어쩌면 이전 리더 때보다 두 배, 세배 더 열심히 할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두루 쓰는 리더로 정평이 나게 되고 더 많은 인재가 몰리게 됨은 불문가지다. 옥석을 가리는 시간을 가져가면서 자신의 사람들을 등용해도 늦지 않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낯선 환경과 새로운 인물들을 받아들이고 점차 익숙해져 가야 한다. 세상과 경쟁의 법칙은 시시각각 변하는 데 같이 일하는 사람이나 업무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과연 경쟁력이 있겠는가.


In-group, Out-group의 폐해는 이미 경영학에서도 부정적인 결론이 난 조직행동이다. 내편, 네 편 가르다 보면 쓸 사람이 부족해지고 그나마 반쪽도 돌아앉아 있으니 두배로 사람이 부족한 꼴이 된다. 리더에게 가장 큰 힘은 인재인데,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보은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살다 보면 신세 안 지고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적인 관계에 지위를 이용해선 절대 안 되지만, 못 내 해야만 한다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큰 자리는 피할 일이다. 설령 상대가 성에 안 차 해도 끝끝내 설득하고 마무리해야지, 휘둘려서 중요한 자리를 내주면 리더십에까지 상처를 입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조선시대 사색당파(士色黨派)는 전형적인 편 가르기였다. 동인, 서인도 모자라 남인, 북인, 노론, 소론으로 나눠가며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로지 적과 동지로만 사람을 판단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당파가 다르면 등용을 하지 않았고, 등용이 되었더라도 반대파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자기들만의 성을 구축하는데 몰두하느라 백성은 늘 뒷전이었다.


이이, 이항복, 유성룡 같은 이들이 그나마 중심을 잡으며 맞고 틀리고를 청하고 간하였지만 그들마저도 내편, 네 편의 벽을 뛰어넘기는 어려웠다.


이런 상황이면 인재가 아무리 많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리더가 되는 순간 어떤 인사를 할 것인지 결정하기 바란다.


나누면 적어지고 아우르면 커진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이치다. 결정을 하기 전에 이 사소한 산수를 한 번쯤 떠올리기 바란다.


그럼에도 나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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