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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사인가, 부하인가

성공적인 중간 리더가 되는 법

by 구쓰범프

"회사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어요?"

5년 만에 만난 후배가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다. 순간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대답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글쎄... 나는 윗사람과 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

"어, 그래요???"


사실 그랬다. 상사는 내가 주로 따르면 되는 존재다. 적절히 눈높이를 맞추고 기대에 부응하면 큰 무리 없이 관계가 유지된다. 게다가 신뢰를 얻게 되면 내가 맡은 일에 전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도 있으니, 굳이 각을 세우기보다 이해하고 따르려는 마음을 먼저 먹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지속되면 상대도 느끼기 마련이어서 긍정적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진다.


오히려 처신이 어려운 건 부하들과 일할 때다. 부하들의 속마음을 알기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부하가 상사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다 보니 나에 대한 객관적 판단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겉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하겠지만 진심으로 따르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조직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동시에 '상사의 부하'이자 '부하의 상사'라는 이중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신입사원에서 한 해 두 해 경력이 쌓여 서열이 올라가는 현상은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렇게 중간 리더가 되면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숙제가 되어 나타난다.


그렇다면 양쪽 역할을 다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나는 중간 리더에게는 '부하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상사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내 부하들을 고생시키지 않는 리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상사 A가 떠오른다. 그는 인품이 훌륭하고 부하들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보스 앞에서는 유독 주눅이 들어 일을 마무리 짓기보다, 역으로 혹을 붙여 오기 일쑤였다. 워낙 인품이 훌륭해서 미워할 순 없었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자 아쉬움을 토로하는 후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중간 리더의 위치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A는 부하들의 기억 속에 훌륭한 리더보다 좋은 선배로만 남아 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상사’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한 첩경은 먼저 부하의 역할을 잘해 내는 것이다. 좋은 부하란 단순히 지시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사의 의도를 먼저 읽고, 상사의 지시를 두배로 멋지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리더의 신뢰를 얻으면 자신도 중간 리더 역할을 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스포츠 팀에는 주장 선수가 있다.

감독이 코치진을 비롯한 선수단 전체를 총괄하는 리더라면, 주장은 선수들을 이끄는 중간 리더인 동시에 감독의 전술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야전사령관이다. 그런데 주장이 감독의 신임을 받지 못하거나, 경기력이 떨어져 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선수들 앞에 당당할 수가 없게 된다.


주장의 역할 이전에 자기가 맡은 일이나 포지션을 능력 있게 처리해서 감독의 눈에 들어야, 그리고 선수들이 인정을 해야 권위도 서고 말발도 먹힌다. 그렇지 못하면 앞에서는 말을 듣는 시늉을 하겠지만 돌아서서 또는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하는 게 세상인심이다.




삼성라이온즈는 2024년과 2025년 연속으로 구자욱 선수에게 주장을 맡긴다. 2024년 시즌 구자욱은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실력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잘 다독이는 리더십의 소유자로 세간의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2025년에 들어서는 경기감각이 이전 시즌만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경기에 나설 때마다 화면에 보이는 그의 모습에선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표정이 읽힌다. 팀이 침체되어 있을 때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파이팅을 보여야 하지만 자신부터가 기여를 하지 못하니 여의치가 않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경기 중 보여 준 모습은 중간 리더의 책임감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팀이 점수를 나야 할 타이밍에 타석에 들어선 그가 또 평범한 내야 땅볼을 친 것이다. 보고 있는 선수들과 관중 모두 아웃카운트 하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와중에 그는 죽기 살기로 1루를 향해 달린다. 어떻게 해서든 팀을 구하고 내 존재를 증명해야만 한다는 간절함이 느껴지는 주루였다. 비디오 판독 끝에 그는 세이프 판정을 받았고 팀은 득점을 해서 경기를 이긴다.


때로는 생각이나 기술보다 간절한 몸짓이 하늘을 감동시키기도 하는 모양이다. 승리 인터뷰에서 그는 선수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노라고 했지만 중간 리더가 보여 준 절박함이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한 장면으로 그의 주장 자격을 의심할 여지는 영원히 지워졌다.




중간 리더에게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은 자기 실력이다. 그리고 상사로부터 신뢰를 획득하는 역량이라 하겠다.


일단 이 정도가 되어야 부하들도 인정하고 들어와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쉬워진다. 상사도 부하도 인정을 해 주는데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일은 가속도가 붙고 자신감은 충만해져 도전적인 일도 가뿐히 해결한다. 선순환 사이클을 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부하 역할에 더해 상사 역할도 잘 해내는 중간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부하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심지'도 함께 갖춰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화룡점정을 이룬다.


상사는 한 명이지만 부하는 다수다. 한 사람의 신뢰는 얻었을지라도 다수 부하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이 또한 답답한 처지가 된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부하들의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본인의 색깔은 사라지고 우유부단한 리더가 된다.


부하의 의견은 경청하되, 리더가 책임지고 결론을 내리는 용기가 있어야 구성원들도 리더를 '이끄는 사람'으로 인정한다. 때론 타협보다 결정하는 리더를 더 믿고 따른다. '나를 따르라'가 통하는 이유다.


상사에게 맞추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면, 이제는 부하들을 이끄는 리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부하로는 역할을 할지 모르지만 좋은 상사로는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멋진 중간 리더가 되기란 이래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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