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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탐하는 어리석음

존경을 갉아먹는 손

by 구쓰범프

골프를 치다 보면 경기의 텐션을 위하여 작은 내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게임의 재미를 위한 것이다. 그런 만큼 통상 이긴 사람이 그 돈으로 밥을 사거나 딴 기분만 낼 정도의 소액만 가지고 나머지는 돌려준다. 그래야 마음 상하는 사람도 안 생기고 모임이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얼마 전 모임에서 이런 룰이 깨진 일이 발생했다. 네 명 중에서 가장 윗사람이 딴 돈을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 버린 것이다. 물론 내기를 한 것이니 딴 사람이 자발적으로 돌려주지 않는 이상, 잃은 쪽에서 돌려달라고 요구할 명분은 없다. 그래서 딴 사람의 처분만 바라며 조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날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공교롭게 밥조차 가장 많이 잃은 사람이 샀다.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따지도 잃지도 않아 금전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지만, 가장 윗사람이 베풀 줄 모르고 작은 것에 욕심을 내는 행동을 보며 실망이 컸다. 돈의 액수를 떠나 마음 씀씀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위나 권력으로만 이끄는 리더는 오래가지 못한다. 제대로 된 리더는 그 지위와 권력에 걸맞은 존경을 받을 때 완성된다. 존경은 높은 위치에 올라갔다고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성공은 이루었지만 주변사람들에게서 좋지 않은 평판을 듣는 리더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모습을 보면 '리더 = 존경'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오래도록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은 성공한 지위에 있을 때는 추앙을 받다가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밉상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현직에 있을 때는 악명이 높았지만 물러난 후 보여주는 면모로 사랑을 받는 사람도 있다.




A와 B는 같은 회사에서 최고의 위치에 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데 A는 주변으로부터 존경의 대상이고 B는 기피대상 1호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은퇴 후에 판이하게 갈렸다.


A는 현직에서 물러나서도 같이 일했던 부하들을 살뜰히 챙기며 과거 인연을 이어간다. 모임에 나올 때면 으레 자신이 밥값을 지불하고 모임에도 후한 회비를 내놓아 후배들이 부담 없이 모임을 이어가도록 돕는다. 경조사마다 찾아다니며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눈다. 후배들과의 대화에선 늘 인자하고 관대한 태도로 일관한다. 과거의 윗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친근한 어른이 되어 나타난 느낌이다.


B는 은퇴 후에도 현직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군림하려는 자세를 버리지 못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손해가 나는 일은 조금도 참지 못하는 태도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직도 후배들을 과거 부하 부리 듯해서 그를 따르던 부하가 한순간 돌변해서 대들고 다시는 상종을 안 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삶은 후배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너무나 유명한 얘기가 되었지만 두 사람이 이런 평가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역사 속 성공한 인물들 중에서도 선행이 넘쳐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들추면 들출수록 악행만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 세종시대 맹사성, 유정현을 꼽을 수 있다.


맹사성은 청백리로 유명하다. 76세까지 정승의 자리에 있었으나 워낙 검소했을 뿐 아니라 직책과 연배를 따지지 않고 공손하게 사람을 대하여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다. 개인 용무로 외출을 할 때는 가마를 이용하지 않고 소를 타고 다녀서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지체 높은 사람인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정승을 오래 하였음에도 개인 소유 토지도 없고 품질이 나쁜 녹미를 먹었는데 녹미마저 떨어지면 아내가 쌀을 빌리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녹미란 나라에서 주는 묵은쌀이라서 하급관리조차 그것으로 밥을 짓지 않았다고 한다. 집은 비가 새고 세간은 단출하기 짝이 없었으며 손님이 와도 접대 음식은 소찬 밖에 내놓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유정현은 양녕대군을 폐세자 하고 충령대군(훗날의 세종)을 지지한 공으로 성공을 거듭한다. 그런데 그는 평판이 아주 안 좋았다. 돈을 빌려주었다가 갚지 못하면 백성들 집의 가마솥까지 뺏어올 정도였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유정현은 성품이 매우 인색하여 추호도 남을 주는 일이 없고 동산에 열린 과일조차 시장에 내다 팔아서 작은 이익까지 취하였다고 적혀있다. 그러니 백성들이 "비록 죽을망정 다시는 좌의정의 장리는 꾸어 쓰지 않겠다"라고 원망을 했다 한다. 하지만 세종은 그에게 죽기 나흘 전까지 좌의정을 맡길 만큼 신뢰를 보여준다. 국가의 곳간 관리도 개인 곳간을 다루듯이 해서 재정을 풍부하게 했다는 소리가 있으나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사람은 아니었음에도 관직에서 장수를 누린 것이다.


왕의 신임을 받아 당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지만 후세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누가 진정한 리더라고 할 수 있는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능력부터 인성까지 모두 갖추었을 것으로 여긴다. 사회생활에서 태도가 성공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간혹 상상할 수 없는 저급한 인성의 소유자가 성공 가도를 내달려 보는 이들에게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리더는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 존경은 작고 사소한 행동들에서 비롯된다. 작은 것을 욕심낸 리더는 결국 큰 것을 잃는다. 반면 작은 것을 나눌 줄 아는 리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존경을 얻는다. 특히 돈이나 이익이 결부된 상황에서 남을 먼저 배려하고 뒤로 물러서는 데서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리더라면 마음속에 사소한 욕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어금니 꽉 깨물고 참아라. 그게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남에게 존경받는 진짜 리더로 숙성되어 간다.


티끌 모아 태산 같은 '재산'보다, 티끌 모아 태산 같은 '존경'이 더 뿌듯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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