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는 사람'인가 '알려주는 사람'인가
골프를 익힌 지 1년 반 되었다는 사람과 라운딩을 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셋은 구력이 좀 되는 로우 핸디캐퍼들이다. 나름 초보자를 배려하느라 말과 행동이 따뜻하다. 해저드로 들어간 공을 같이 찾아 주는가 하면 티샷이 아웃되면 벌타 없이 다시 치게 해 주는 멀리건도 후하다. 골프 선후배 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하늘을 찌른다. 아름다울 따름이다.
그런데 초보 골퍼가 하는 행동을 보니 룰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본인은 의문의 여지없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데 사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 잘못을 지적해 주지 않은 모양이다.
골프는 에티켓이 중요한 운동이다. 심판이 옆에서 지켜보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스스로 룰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그래서 골프 한 라운딩을 같이 해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얼추 파악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명랑골프'라는 미명 하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 센 타수를 바로잡아 주거나 골프 에티켓에 어긋나는 행동을 지적했다가 괜히 분위기만 어색해질까 봐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치는 일을 흔히 접하게 된다.
결국 잘못 익힌 골퍼들은 자신이 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 채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고, '하하 호호'하며 넘어가는 동안 바로잡을 기회는 영영 없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나중에는 본인이 맞는 것으로 착각하고 남을 가르치는 아이러니한 일까지 벌어진다.
이럴 때 과연 그 사람의 잘못된 점을 직접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아니면 스스로 알아차리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알려줄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더 현명한 태도일까?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후에 내게 돌아 올 감정의 화살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한 감히 엄두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간혹 있다. 상대방이 불편해 할 것은 알지만, 침묵이 오히려 더 큰 해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밥상머리 교육'이란 게 있다.
부모가 식탁에 둘러앉은 자녀에게 삶에 필요한 예절과 지혜를 알려주는 것이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진심과 애정이 담긴 것이어서 어떤 가르침보다도 바른 교육일 가능성이 높다. 가정에서 못다 한 교육은 학교가 이어받고, 그 다음은 사회와 직장이 역할을 맡아서 도덕적이고 바른생활을 하도록 이끈다.
갈수록 남에게 애정 어린 충고나 조언을 하기를 주저하는 사회가 되어 간다. 내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상대도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하는 행동일텐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소심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국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말자는 엄숙한 결정을 내리며 남의 잘못에 애써 눈을 감는다.
이런 태도는 타인 뿐 만 아니라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괜히 지적을 했다가 불필요한 갈등이나 감정의 골이 생길까 염려되어,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도 쓴 소리는 가급적 건네기를 주저한다.
밥상머리 교육조차 조금씩 그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이런 침묵은 결국 옳고 그름을 각자가 판단하고 책임지는 구조로 몰고 간다. 정의나 선의 기준도 개인의 판단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판단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계속 간다면, 이건 누가 제어해야 하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선배 직원을 붙여줘서, 사수와 조수라는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 선배에겐 후배를 지도할 책임이 부여되었고 후배는 사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선배는 일은 물론이고 직장생활의 A to Z를 일러주는 보급창고같은 존재여서 첫 번째 '직장 운'은 어떤 사수를 만나느냐에 좌우되기도 했다.
나의 직장생활을 돌아봐도 크고 작은 가르침을 통해 좋은 영향을 준 분들이 있다. 당시에는 지적을 받는다는 것이 괴롭고 창피하고 불편했지만,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달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처음 접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알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보니 살면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종 이 당연한 과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절이나 남에 대한 배려처럼 기본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게 잘못이 아니라, 모름에도 불구하고 배우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가 더 문제인 것이다.
가끔 어떤 리더들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인심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리더십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리더들은 그 순간 인기를 얻을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어렵다. 상대가 잘못이나 실수를 범하고 있을 때 적절한 조언을 해 주는 것은 어쩌면 리더가 욕먹을 각오로 임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당신이 리더라면 지금 '꼰대'소리 듣기 싫어서 할 말을 억지로 삼키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시대나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는 것도 이해는 해야겠지만, 누군가 할 말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도 사회도 더 멋있고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하지 않겠나.
꼰대소리 +1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