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 스트레스
요 며칠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어깨와 목은 뻐근하고 머리는 무겁고 전체적으로 기운이 없다. 환절기 감기가 오려나 싶어 급하게 타이레놀을 먹고 잠도 청해 봤지만 별무 소용이다. PC와 책을 밀쳐두고 소파에 늘어져 억지로 쉬어 보지만 이 또한 큰 도움은 안 된다. 건강은 실제 아파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하는데 지금 내가 그걸 체감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오래 아프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왜 이런 상태가 된건지 슬슬 원인을 찾아본다. 그런데 아뿔싸! 주초 내내 머리를 짓눌렀던 일이 떠오른다. 몇 가지 해결할 일들이 동시에 벌어져 약간의 긴장과 걱정으로 시작한 주였다. 해결이 된 것도 있지만 장기간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어 아직 머리가 복잡한데 그게 원인이었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갑자기 닥친 걱정과 근심이 바위덩어리 같은 스트레스로 몸을 강타한 게 분명했다. 이래서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 하는 모양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산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에서 영향을 받거나 심지어 나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일임에도 관심을 가졌다가 정신적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서 '스트레스 프리'란 불가능하다. 오히려 연속되는 스트레스 속에 무념무상의 순간이 잠시 스쳐갈 뿐인게 아닐까.
건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사람들은 몸에 적신호가 오기 전에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자기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게 많고, 할 수 있는 게 많아도 건강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프로야구를 좋아한다.
프로야구는 철저히 준비한 실력과 치밀한 작전으로 정해진 규칙 하에서 승부를 가린다. 불공정이 개입할 여지가 세상사 어느 것보다도 적다. 그런 점에 야구의 매력이 있고 그래서 빠져들게 한다. 경기장을 찾아 직관하며 응원하는 광팬까지는 아니지만, 매일 저녁 TV 중계를 챙겨보는 열성 팬 수준은 된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요즘 응원하는 팀이 연패에 빠져 있다. 아무리 열성 팬이라 해도 지는 경기를 지켜보는 건 고통스럽다. 경기 결과가 내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흥분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급기야 '이러다 건강에 해롭겠다'는 생각이 들어 당분간 안 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실제로 관심을 끊는 것이 쉽지는 않다. 결심은 작심삼일을 못 넘기고 힐끔힐끔 경기결과를 훔쳐보다가 다시 TV 앞에 앉기를 반복한다.
프로 야구는 시즌동안 많은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이기는 날도 지는 날도 있다. 승리도 패배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패배 경기에 열받고 승리에 엔도르핀이 도는 것은 인간인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감정과 대비되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감독의 태도다.
나 같은 팬조차도 경기를 볼 때마다 긴장과 불안, 희열의 감정을 수시로 넘나드는데 감독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까? 이기든 지든 다음 경기를 위한 작전을 고민하고 선수들을 격려해야 하는 역할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낼까?
감독이 매번 경기 결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면 선수단은 갈팡질팡하다가 혼란에 빠진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피하지 않고 돌파하는 것은 감독이 감내해야 할 숙명이다. 감독이 몸져 앓아눕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은 기업의 CEO도 마찬가지다. CEO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비즈니스 현장 변화에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단기 성과나 일시적 현상에 일희일비하다가는 자신과 조직 모두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격에는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사실 스트레스 관리가 안 되는 경우, 이성적인 사람도 위기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비겁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은 리더 자격이 없어 애초에 임명되어선 안된다. 리더가 먼저 흔들리고 격정에 휩싸이면, 조직은 중심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함께 일하던 CEO에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었더니 그가 내게 해 준 말이다.
"상황이 안 좋을 때마다 '지금이 최악의 상태이니 앞으로는 잘 될 일만 남았다'는 희망을 가지고 임한다"
더 안 좋은 국면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비관적인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낙관적인 태도로 임해야 당황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언제까지 나쁘기만 하겠는가' 하는 희망은 리더를 숨 쉬게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떤 상황에도 표정과 말투, 그리고 구성원들을 대하는 자세에서 속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냉정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기억이 있다. 그라고 왜 걱정과 스트레스가 없었겠는가.
리더란 쉽게 아플 수도 없는 막중한 자리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의 부담을 내려 놓고 휴식을 취하거나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리더에게는 그런 여유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의 관심거리이고, 그의 결정에 많은 것이 좌우되기에 공백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아파도 현장을 지켜야 하는데,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리더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아파도 아픈 척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로봇도 철인도 아닌데 어찌 안 아프고 늘 건강할 수 있겠는가. 다만, 리더의 위치에 선 사람은 남보다 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이 우선이고 건강은 뒷전'이라는 말은 언뜻 보면 헌신적인 태도처럼 들리지만, 실은 일을 하기 위한 기본 조건을 팽개치는 무책임한 행동임을 깨달아야 한다.
스트레스나 건강관리는 각자 나름의 방식이 있을 테니 누가 맞다 틀리다를 논할 일은 아니다. 운동을 하든, 약을 먹든, 명상을 하든 자신에게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도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건강해야 균형 잡힌 사고와 합리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조직에서 리더를 임명할 때는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춘 사람인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리더 또한 실패조차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임을 명심하고 임해야 한다. 그런 내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조직을 이끌 자격이 있다.
항상 좋은 일만 계속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