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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말수

네가 먼저? 내가 먼저?

by 구쓰범프

오랜만에 생각난 후배가 있어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마자 너무 반갑다는 인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온다. 내가 바쁘다는 얘기를 들어서 연락하기가 망설여졌단다.


사실 내가 바빴다는 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지만, 연락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 뉘앙스는 분명해 보였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예상보다 길게 나누고, 식사 약속과 더불어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내가 더 일찍 연락할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괜한 부담을 줄까 봐 망설였던 건데, 그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예전에 모시던 상사가 보자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간 적이 있다. 그때 하신 말씀이 "이젠 내가 보고 싶고 궁금한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며 살기로 했어. 그동안은 부담 주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주의였는데 이제 생각을 바꿨어."라고 하셨다.


결심을 바꾸게 된 계기는 '상대가 나를 어려워해서, 연락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란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스스로는 후배들에게 편안하게 대한다고 하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언제나 윗사람이기에 어지간히 가까운 관계가 아니고는 먼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입장을 바꿔 내가 선배나 상사에게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떠올려보면 된다.


내 마음과 상대의 생각 사이엔 의외로 큰 간극이 있을 수 있다.




은퇴 후, 아내가 건넨 조언 중 하나가 '입을 열라'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화제가 주로 회사 내 이야기뿐이니 말을 할 수가 없었을 테지만, 이제는 어떤 얘기든 말을 해야 대화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닌 듯해서 조금씩 말수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그날 밖에서 만난 사람과 나눈 이야기, 들은 소식, 느낀 점 등을 먼저 풀어놓으니 대화가 풍성해지고 그 순간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공유하는 게 가능해진다.


대화는 누군가 먼저 마음을 드러내고 말을 해야 시작이 된다. 입을 닫고 대화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말을 주고받아야 의견이 나오고 주장도 오고 간다.




이런 심리는 일상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 내 상하관계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리더가 말수가 적으면, 그 의 속내를 파악할 방법은 추측밖에 없다.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지만 그런 상사와 부하가 몇이나 되겠는가.


부하가 먼저 찾아가 의견을 내고 상사의 뜻을 물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상적인 건 리더가 먼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을 전해 주는 것이다.


'부하가 어떻게 하는지 보자.' 하며 기다리는 순간, 부하는 상사의 머리와 가슴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한 달음에 내달릴 길을 둘러둘러 가는 오류를 범한다.




상사들 중에는 말수가 많은 사람과 그 반대의 스타일이 있다. 부하들마다 좋아하는 타입이 있겠지만 그래도 입을 다물고 있는 상사보다는 속내를 바로바로 내 보이는 편이 좀 더 상대하기가 편하지 않을까.


언제 맞을지 알 수 없는 매보다, 잔소리나 꾸지람일지라도 먼저 맞는 매가 정신 건강에는 더 낫다는 생각이다. 부하의 입장을 고려하면 생각을 표현해 주는 것이 좋은 상사다.


속을 내보이지 않는 상사는 혼내는 상사보다 더 두려운 존재일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의 예상과 상반되는 평가를 받았을 때 오는 당혹감은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든다.


이런 리더는 대체로 fear driven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리더가 내뿜는 위압감과 공포 분위기는 자유로운 의사표현도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리더의 생각을 모르니 함부로 의견을 냈다가 어떤 소리를 들을지 알 수 없어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리더는 다소 가볍게 보일지 몰라도 편하게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 긍정적 효과를 부르지 않을까 싶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따라붙고 번복도 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상대의 마음을 얻는데 이보다 좋은 것도 없다.


그렇다고 잔소리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역으로 귀를 막을 정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을 할 때와 안 할 때, 할 말 안 할 말 가려가며 적절한 수준에서 균형을 잡는 노력이 요구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나칠 정도로 말이 많고 모든 걸 바로바로 토해낸다. 그래서 그의 의중을 알기가 쉽다. 반면 이로 인한 말실수 또한 많아서 신뢰를 주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말을 극도로 아낀다. 공식 발언 외에는 속내를 알 수 없고 표정마저 큰 변화가 없으니 그의 생각을 알 길은 추측밖에 없다.


어떤 상사가 함께 일하기 더 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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