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문제라고?
최근 A투자사로부터 흥미로운 자문 요청이 들어왔다.
매출 성장세가 가파른 B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구성원의 이탈이 잦고 조직문화가 불안정해 보여 자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업은 잘 굴러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조직'이 걱정된단다.
첫 미팅은 Zoom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B사의 2인자라는 사람이 미팅 시간에 늦게 들어오는가 하면 영상과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첫인상이 상대를 약간 불편하게 만든다. 앉은 자세나 부하사원과 나누는 대화에서 권위의식도 느껴진다.
회사소개 국면에선 매출이 급격히 오른 것을 강조하며 자신감이 넘치고,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하는 투다. 대표이사는 영업에 집중하고 내부 관리는 본인이 책임을 지고 있다 한다. 또한 자신이 큰 회사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자문을 받는 자와 자문을 하는 자 간에 영 핀트가 안 맞는 느낌을 받는 가운데 일부 대화가 오고 갔지만, 그 마저도 네트워크가 불안하게 연결되는 바람에 중단을 거듭하다 오프라인으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미팅이 마무리되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A투자사가 왜 자문을 의뢰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잠깐의 미팅으로 전부를 판단할 순 없겠지만 때론 그게 전부일수도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겉보기에는 문제없어 보이는 조직이지만, 투자자는 ‘지금 괜찮다고 계속 괜찮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사업은 잘 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이유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것이 실력 때문인지, 시장에서 뒷바람이 불어준 탓인지. 마찬가지로 사업이 주춤해졌다면 그것이 내부 문제인지, 외부 환경의 영향인지를 냉정히 따져야 한다. 그래야 그에 맞는 처방으로 회사를 끌고 갈 수 있다.
투자사가 우려하는 것은 지금의 성과가 지속 가능한가일 터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당장 대표이사가 영업을 잘해서 매출을 올릴 수는 있지만, 그걸 받쳐 줄 사람관리가 안되면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B사는 급격한 매출 증가가 대표이사의 역량과 회사의 실력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실문제는 이럴 때 생긴다.
대표이사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서 매출을 올리는 데 직원들은 뭐 하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차기 시작하면 불신이 싹트기 마련이다. 그런 의심을 받은 직원들은 하나 둘 떠나가고 매번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는 조직에 실력은 쌓이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불량과 클레임이 반복되다 보면 영업으로만 풀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시장은 안면으로 끌고 가는 데 한계가 있고 결국 실력으로 우열이 가려진다.
'개인기'와 '조직력'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 묻는 경우가 있다. 조직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구성원이 다수인 조직에서는 '조직력'이 영속성을 좌우한다고 본다.
스포츠에서도 같은 단체 경기이지만 야구는 각 선수의 개인 기량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홈런을 치는 타자, 탈삼진을 잡는 투수 한 명의 힘이 크다. 반면 축구는 다르다. 메시나 호날두 같은 슈퍼스타도 동료와의 패스, 전술, 협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공은 개인의 발끝에서 시작되지만, 골은 팀의 조직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업에서도 개인 기량과 조직력이 모두 중요하지만 굳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직력'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에는 조직관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이런 조직력을 좌우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리더가 개인과 단체를 적절한 비중으로 중요시하고 자유자재로 균형을 맞추며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할 때 그 조직의 경쟁력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리더를 오케스트라의 컨덕터(지휘자)에 비유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각각의 악기 연주자는 자신의 역량껏 연주를 하겠지만 오케스트라 전체가 하모니를 이루도록 하여 최고의 음악을 이끌어 내는 것은 지휘자의 역할이다.
B회사의 대표이사가 얼마나 조직관리와 구성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오프라인 미팅에서 확인해 볼 참이다. 그리고 내부 관리를 하고 있는 2인자에 대한 구성원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조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대략은 짐작이 갈 듯하다.
만약 대표이사는 돈 버는 데만 관심이 가 있고, 2인자 또한 사람관리에 관심이 없다면 당장 실적은 좋을지라도 빨간불을 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레드 라이트에 진심으로 반응한다면 다행이고 바라는 바이지만, 그마저도 무시하고 자만심에 취하게 된다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피터 드러커는 아무리 전략이 훌륭해도,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문화가 없다면 그 전략은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B회사의 대표이사가 조직문화에 관심이 없다면, 결국 본인의 전략도 허공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스타트업들이 초기 성장에 취해 기업 경영의 근본과 철학을 무시하다 오래가지 못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월간 매출, 투자 유치 금액, 언론 노출 수치는 중요하지만, 그 수치를 가능하게 만든 ‘개인’과 ‘조직력’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지속은 요원하다.
다시 만나는 미팅에서는 좋은 인상으로 만나 서로 배움이 있는 자리이길 바라본다. 하나의 회사라도 더 생존하고 영속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살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들이 봐야 할 곳을 정확히 봐야 한다.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봐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