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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로 가라

후회는 하지 않을

by 구쓰범프

최근 한국 스포츠계에서 벌어진 세 가지 장면이 흥미롭다


하나, 국내 프로축구 FC 서울이 팀의 레전드인 기성용 선수를 포항 구단으로 보낸다는 이적 소식에 팬들이 화가 났다는 내용이다.


국가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기성용(36)은 FC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다. FC 서울로 입단해서 영국과 스페인의 프로구단을 거쳐 돌아올 때도, 다른 팀의 러브 콜을 뿌리쳤을 정도로 팀에 애정이 깊은 선수다.


그래서 마지막 선수생활도 친정팀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원했을 터인데,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해 경기를 못 뛰다보니 마지막 혼을 불사를 팀으로의 이적이 논의되는 모양이다.


FC 서울은 그동안 팀에 공헌을 한 선수들을 예우하지 않고 여러차례 내 보낸 전력이 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결국 팬들이 분노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결과를 떠나 팀은 또 한번 '레전드를 지키지 않는 구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둘, 프로야구 KT 위즈의 이종범(55) 코치가 시즌 도중 갑자기 코치직을 던지고 예능 야구 프로그램의 감독으로 떠나버렸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정후 선수의 아버지요,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모르는 이가 없는 한국 야구의 전설 같은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한창 치열한 순위 다툼을 하고 있는 시즌 중에 팀을 떠난 것만도 충격인데, 그 행선지가 예능 야구 프로그램의 감독이라하니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일 것이다. 결국 명예보다 돈이나 인기를 택했을 걸로 여겨지기에 그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셋, LPGA 투어 다우 챔피언십에서 임진희(27)와 이소미(26) 선수가 2인 1조 팀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이들의 인터뷰가 짠하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메인 후원사까지 잃고, 다른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도전했다.”


최근 LPGA에서는 한국 선수들보다 일본이나 태국 선수들 이름이 스코어보드 상단을 차지하는 일이 많아졌다. 한때는 한국 선수들이 대회를 독식해서 LPGA 주최측이 불만스러워 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KLPGA의 인기가 올라감에 따라 굳이 고생하면서 우승도 어려운 세계 무대에 도전하느니 국내 무대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스폰서도 든든하고 광고수입도 괜찮으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대에서 사서 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이런 꽃 길을 마다하고 LPGA에 도전해 아직 고난의 길을 걸어가던 두 선수가 같이 일궈낸 결과이기에 어떤 우승보다도 값져 보였다.




살다보면 선택의 기로에 서는 일이 끊임없이 다가온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후 운명이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모든 선택을 다 잘 할 수는 없다. 때론 실수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의 결정이 운명까지는 아니어도 그의 평판을 갈라 놓는다고 생각하면 숙고가 필요함은 분명하다. 그래야 최소한 '반성은 할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 '후회는 하지 않을 선택'이 될까?


나는 큰 길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큰 길이라 함은 편하고 안정된 포장도로를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큰 길로 나서는 순간 많은 변고와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고, 좌절과 실패가 일상이 될 수도 있다. 때론 영원히 성공의 길에 들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옳고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하면 도전하기를 권한다.


세상은 도전하는 자들의 역사이기에 그렇다. 당장의 인기와 편안함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진정한 성공은 언제나 명예와 대의를 더 중하게 여기며 고난을 인내한 자들의 몫이었다.




FC 서울은 영구 결번 레전드들이 즐비한 전통의 명문구단이 되는 길로 들어 설 기회를 또 한번 잃었다. 그것이 오죽 아쉬웠으면 우승 숫자 만으로 최고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오히려 팬들이 강조하고 나섰을까.


이종범 코치가 야구 팬들의 반응에 어떤 답을 내 놓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선택은 야구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 실패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설명으로 이해를 구하더라도 야구판에서 그의 이름이 자랑스런 레전드로 불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반면, 임진희, 이소미 선수는 KLPGA에서 각각 4승, 5승씩을 거두고, 국내 무대에서 더 많은 우승 기회가 있었음에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동안 우승을 맛보지 못하고 메인 후원사와의 계약마저 종료되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 잡고 일군 결과이기에 박수를 받아 마땅하고, 다른 국내 선수들에게도 도전의 가치를 일깨워 준 사람들로 기억되기에 손색이 없다.




잘못된 선택은 다시 되돌릴 수는 있어도 영원히 없던 것으로 하기는 어렵다. 더우기 쉽게 소식을 접하는 세상에서 한번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크고 험난한 길로 들어설 것인지, 작고 편안한 길을 선택할 것인지 정하라면 쉽게 결정할 것 같지만 막상 그 위치에 서게 되면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눈 앞의 이익이 보이는 데 길을 돌아서 가라하면 누가 선뜻 마음이 내키겠는가? 그래서 때론 많은 리더들이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며 조직의 먼 미래를 놓친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라면 당장 괴로울지라도 미래, 명예, 대의를 위한 선택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항상 큰 길이 어느 쪽인가를 생각하며 판단하기 바란다.


큰 길을 선택하고 기다리는 자부심은 단기적인 성과에 환호하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되새기며 인내할 줄 아는 리더가 그리운 시기다.




스폰서가 끊어진 이소미 선수가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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