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국영이 없어서 슬프다
오늘도 나는 영웅본색의 주제가 <당연정>을 들으며 노트북을 켠다. 내 인생의 전성기 주제가였고, 홍콩 누아르 영화 전성기에 꽃같이 해사한 남자였던 장국영과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잃어버린 나의 낭만 시대를 아쉬워하며. 기별 없이 온 사랑이 내 곁에 머물렀던 시간을 추억하며. 그 비밀의 시간을 기억하며….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는 ‘에이프릴 샤워’의 시간이 가고 장미의 계절이 왔건만 화사하기는커녕 우울하다. 집안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생활 회화 가족이란 말이 있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사용하는 기본 생활 회화집에 나오는 말들로만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족 말이다. 바로 우리 가족이 그렇다.
눈을 마주칠 일도 별로 없어서 서로의 눈동자 속에 누가 있는지조차 이젠 모를 지경이다. 그렇고 그런 올드패션이라고 하겠지만 예전에 내가 가졌던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의 눈동자 속에 가족 중의 누군가가 있었다. 물론 기억이라는 것이 약간은 각색됐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핸드폰을 매개로만 연결되는 초현실주의는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주 오래전 지금 같은 초여름 일요일 오후, 배를 깔고 마루에 누워 있던 나는 파나소닉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산울림의 <아니 벌써>를 듣고 벌떡 일어나 문 쪽을 봤다. 현관을 통해 보이던 붉은 벽돌담과 초록색 철문에는 빨간 장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때는 오월이고, 일요일이었으며 나는 음악이 푹 빠진 사춘기 소녀였다. 사월과 오월의 <장미>를 흥얼거리던 사춘기 소녀의 귀에 그들의 노래는 반란이었으며 우주가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처럼 충격이었다. 사춘기 때 막내딸이 아이돌 그룹 <샤이니>에 미쳤었던 것처럼 말이다.
빛바랜 기억 속에서 지금의 내 나이였던 엄마는 수돗가에 앉아서 세 들어 사는 은정이네 아줌마와 오이를 씻고 있었다. 초록빛 오이가 빨간색 고무다라에서 둥둥 떠다니며 수돗물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반나절쯤 지나면 오이는 소금에 절여지고, 오이소박이와 여름내 먹을 오이지로 변신을 할 예정이었다. 나는 그 정겨운 풍경을 배경 삼아 산울림의 <아니 벌써>를 들으며 낮잠에 빠져들었다. 푸른 오이와 같이 싱싱했던 나의 청춘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나른했고 서서히 어른의 길목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산울림의 노래 ‘아니 벌써’처럼.
그 시절 엄마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너무도 많은 걱정이 머릿속에서 매일 폭죽처럼 터진다. 남편은 ‘마의 오십’ 고비를 잘 넘기고 정년을 채울 수 있을까? 큰딸 가을이 수련의 과정을 잘 견딜 수 있을까, 둘째 겨울은 이태백 시대에 공무원 준비를 하는 데 잘 될 수 있을까, 놀기만 하는 막내 봄은 수능을 잘 볼 수 있을까, 등등 너무나 동시다발적으로 터져서 사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다. 한마디로 남의 걱정이나 하면서 지내는 인생인 셈이다.
혈관성치매에 걸려 ‘과거는 잊어주세요’가 다반사가 되어버린 시어머니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시아버지, 각기 개성 만발인 세 딸과 젊음과 회사에 집착하는 남편, 그리고 간절히 원하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슬픈 나의 소설과 서서히 다가오는 갱년기의 전조증상까지 그야말로 일상이 그 자체로도 맨붕 이다.
‘도대체 뭐 했을까? 애 셋 난 것 말고 특별히 한 게 없네?’ 온종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담배 한 갑을 다 피웠다.
친정엄마도 그랬을까? 지금의 나처럼 꿈을 포기하지 못해서 새벽 별을 보며 한숨을 쉬고, 한밤에 깨어나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루를 되짚어 봤을까?
아버지가 돌아간 신 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면증과 한숨이 내 안에서 버무려지는 요즘 가족 간에는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여성 호르몬은 바닥을 치는 중이고, 관절은 인생의 무게보다 나의 무게를 더 견디기 힘들어서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는 도무지 담대해질 수 없다.
9시 뉴스 직전 대가족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홈드라마를 너무 오래 시청한 탓인지 사람들은 ‘스위트 홈’에 막연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속극 속의 가족처럼 모두가 화해와 포옹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요즘에서야 깨닫는다. 지구에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쿨해도 너무 쿨한 친정엄마까지도 전화만 하면 나를 자극한다.
감기약이나 소화제와 마찬가지로 가족관계도 기본설명서가 필요하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말이다. 관계의 안내서가 특별히 필요한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나처럼 오로지 직구만 날리고, 변화구나 암수 같은 것은 쓸 줄 모른 채 살아온, 인생 활용도가 낮은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철판을 깔고 트웨니원의 노래처럼 <I don't care!> 정신으로 살지 않을 바에는 꼭 필요한 것이 그것이다. 나 그리고 So Cool 한 친정엄마, 진시황 증후군인 남편과 치매여서 행복한 시어머니 사이엔 특히 관계의 안내서가 필요하다.
막내 봄이 아직도 애지중지하는 동화책의 달님을 닮은 달이 창가에 걸려 있다. 달이 창문에 걸린 각도를 보니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예전엔 낭만 그 자체였던 달빛이 이제 나에겐 식구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변질하여 버렸고, 보름달을 보면 바람에 스치는 댓잎 소리가 들리고 소주 한잔이 간절한 것이 아니라 둥근 뻥 과자를 생각하게 하는 정신적 빈곤의 시절이 된 것이다.
게다가 무릎 수술을 한 이후로 자고 일어나면 관절도 말을 듣지 않는다. 안 돌아가는 기계에 기름을 치듯 앉아서 워밍업을 한 후 주방으로 향했다. 그래도 여전히 한쪽은 절룩거린다. 한 10분쯤 지나야 만 관절이 부드러워진다. 남보다 빨리 온 서글픈 노화 증세이다. 절망의 방석이 도처에 널려 있어서 언제든 쓰러질 준비가 되어 있다.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우주선 같은 첨단 밥솥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울화가 치민다. 왜 밥솥 광고는 죄다 멋진 남자배우들이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을 보면 밥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세상 모든 여자가 반드시 살 것이라 여겨서 그런 광고를 만든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얄팍한 마수에 걸린 나도 사긴 샀지만 이젠 그 스타 약발도 다 떨어졌다. 만사가 다 귀찮다. 이 모든 귀차니즘의 근원은 바닥을 향해 달리는 내 여성 호르몬이다. 폐경이 되려면 좀 더 있어야 하는 데 벌써 밥 하는 건 미치도록 싫고, 매일 아침 갈던 원두도 시큰둥하고, 원두를 갈면 은은히 퍼지는 커피의 향도 예전처럼 감동적이지 않다. 아무래도 갱년기 전조증상인가 보다.
원두가 든 유리병을 한참을 노려보고 있다가 결국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것도 귀찮아서 포기하고 스틱형 커피믹스를 하나 잘라서 두툼한 그린 색 머그잔에 넣고 전기주전자에 끓인 물을 부었다. 뇌가 먼저 기억하는 달달한 커피믹스의 향이 확 퍼진다.
배우 김혜자처럼 ‘음, 바로 이 맛이야’라고 감탄하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한 모금 넘길 때마다 커피믹스를 개발한 커피 회사를 찬양하면서. 커피믹스야말로 게으른 자를 위한 위대하고 고마운 발명품이다.
바로 옆 침대에서 자던 남편은 다람쥐 신이 강림해 산중으로 뛰어가셨다. 아마 지금쯤 사그라져가는 멋진 몸매가 아쉬워서 미친 듯이 산비탈을 기어오르며 정상을 향해 뛰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놈의 테니스 때문에 오십이 되기도 전에 관절이 가버렸는데 그는 여전히 펄펄 난다. 마치 건전지 CF에 나오는 에너자이저를 넣은 다람쥐처럼 말이다. 초 단위로 날마다 늙어 가고 있는 것 같은 나는 그런 그가 아주 얄밉다.
싱크대 대 앞에 서서 마시는 달달한 커피가 빈속으로 내려가는 느낌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밤새 살짝 죽었던 뇌세포들이 환호성을 찌르며 깨어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위벽 사이에 지방이 축적되든 말든 나는 이 맛과 기분을 포기할 수 없다. 남편은 건강을 생각해서 커피를 마셔도 크림이 없는 원두커피를 마시거나 선승처럼 온갖 폼은 다 집으면서 녹차를 마신다. 그는 본인의 이름을 산속 바위마다 새기며 천년만년 살 기세다. 산천갑자동방삭처럼 말이다. 아마도 나는 그때 이미 저세상으로 가서 인생의 리사이클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모든 작가의 꿈인 전원의 작업실 갖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며 살고 싶었는데, 대박은커녕 3쇄만 돼도 할머니 할 지경이다. 작가로 산 스물여덟 해가 화려하지 않아서, 돈 되는 건 다 쓰고 살아서 뒤죽박죽 된 내 머릿속을 다 비워버리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다. 나이 스물에 작가가 되고, 내친김에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사랑에 미쳐 결혼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친정엄마는 늘 '누가 등 떠밀었니? 네가 좋아서 했잖아'라고 한다. 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내 기억으로 친정엄마는 적어도 나에 관련된 일에서는 한 번도 옳지 않은 말을 한 적이 없다.
‘사십 넘으면 너도 내 마음 알 거다.’라고 결혼 전날 한숨을 쉬며 친정엄마가 말했다. 나의 에너지가 너무 이른 결혼으로 인해서 고갈되기를 원치 않았던 엄마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이제 유리창에 비치는 나의 모습도 더는 아름답지 않다. 아니 이제는 싱싱하지 않아 슬프다. 그럴 때 나는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로 주저 없이 젊음을 던져서 건져낸 봄꽃들처럼 팡팡 터지는 딸들의 아름다운 나날을 훔쳐보며 위안으로 삼는다.
기억 속의 나는 항상 삼십 대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요즘 거울 속의 나는 의술과 과학 그리고 돈의 힘을 빌리지 않은 일반적인 여자의 냉혹한 현실을 말해준다. 옷을 입을 때 숫자 5로 시작되는 치수는 말 그대로 신이 내린 축복이지만, 여자 나이 오십은 신이 버린 나이인지라 거울을 보면 벌써 여기저기서 지구의 중력을 너무나도 충실이 따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귀는 어쩌면 그렇게 얇아지는지 요즘은 갱년기에 좋다는 말을 방송에서 한번 듣고는 죄수도 아니면서 까만 콩밥만 먹고 있다. 식초가 좋다면 서커스 선수도 아니면서 감식초를 생으로 들이켜고, 두유가 좋다고 하면 두유만 먹는다. 그런 내게 남편은 미련하게 진즉에 조금씩 챙기지 몰빵을 하냐고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나의 갱년기를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싶다. 갱년기가 도래한다는 것은 곧 나의 여성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니까.
라벤더색 레이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월의 싱그러운 바람과 밤새 공기 중에 머물던 정원의 꽃향기들이 코끝을 스친다. 빨간 장미 넝쿨이 초록색 철재 대문을 휘감고 있다. 몇 년째 저 장미 덩굴에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 내가 들인 공과 수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손으로 진딧물을 일일이 잡고, 가지를 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장미 넝쿨이 잘 타고 오를 수 있도록 적절한 위치에 매 주기를 여러 번 했으며 가시에도 수없이 찔렸다. 오죽하면 세 딸에게 들인 공보다 대문을 멋지게 타고 오르는 덩굴장미에 들인 공이 더 많을 거라고 남편이 한소리를 했을까. 어쩌면 내 안에서 실종된 나의 서정 시대가 저 덩굴장미로 피어났는지도 모른다.
내가 장미 키우기에 미쳤다면 남편은 운동에 미쳤다. 중력에 반하는 기적을 일으키고자 불철주야 노력 중인 그는 아마 요즘 진시황의 기분을 절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안 그렇다면 눈을 뜨자마자 산으로 달려갈 리가 없다. 그는 유난히 젊음에 집착하는 진시황과의 인물이라 가능하다면 지는 해를 못질해서라도 하늘에 걸어두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자식을 비롯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내 맘대로 되는 그것이 하나도 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상상대로 이루어졌으면 원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 세월은 오죽할까. 요즘은 내가 인생이란 컨베이어벨트 위에 얹혀서 가는 짐짝 같다.
칼갈이가 날을 갈듯이 감수성의 날을 매일매일 세워도 시원찮은 소설가이면서 나날이 무디어지는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작 오아시스의 노래나 미친 듯이 듣고 있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들으면 몇 줄의 글을 쓸 수가 있다. 그나마 노안이 오기 시작해서 안경은 콧등에 건 채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억은 장국영이 로망이었던 시절에 멈춰 있으니 문제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에 여고 동창 진애를 만났다. 그날이 바로 진애와 나의 영원한 로망인 장국영이 자살한 날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홍콩의 한 호텔 24층에서 몸을 던진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녀와 내가 만난 지는 정확히 십 년째다. 진애와 나에게는 그는 ‘장국영 포에버’이며 비디오 가게에서 그의 영화를 빌려다 보며 감탄하던 낭만 시대의 상징이다. 그는 전설이며, 로망이고, 그리움이며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진애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이 아비정전에서 했던 대사를 읊는다,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맞다. 우리가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다 과거가 되었으나 그의 기억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진애와 작은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천녀유혼>과 <아비정전>을 연달아서 보고 그녀가 잘 가는 비싼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물론 언제나 돈 빼곤 다 없다는 그녀가 한턱을 낸다.
스파게티를 돌돌 말고 있던 진애가 물었다. 여자가 오십을 목전에 두고도 새로운 사랑이 가능하냐고?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불가능! 그 나이에 사랑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불륜뿐이고,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설혹 남편이 죽었다고 해도 역시 불가능하다고. 그 나이에 새로운 사랑을 찾느니 문화센터에 가입하거나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우는 것이 나을 거라고. 그랬더니 이어지는 진애의 말이 걸작이었다. ‘벼락 맞아 죽기보다 어려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자든 여자든 그 나이면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사랑은 이제 그만이라고. 왜냐하면 피곤하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너, 작가 맞니?”
“나는 생활인이고, 생계형 작가야.”
“너, 예전엔 기가 막힌 연애 소설 썼잖아.”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못써. 아니 안 써.”
“왜?”
“애 셋과 무병장수가 인생 최대 목표인 남편과 살아봐. 연애 소설이 심각한 다큐가 되니까.”
“사랑은 이제 그만이면 죽을 날만 기다려?”
진애의 섬세한 얼굴이 금방 울상이 된다.
“문화센터는 뒀다 뭐 한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 사랑이 패밀리쉽으로 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야, 기집애야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를 생각하고 문화센터 도예 강좌 등록해서 되지도 않은 도자기 굽느라고 몇 달 고생했고, 탱고 배우러 다니다가 발목 나가서 물리치료받으러 다녀.”
아직도 적당히 요염한 진애가 푸념을 한다.
“그냥. 네 옛날 사랑을 리모델링해서 살아라. 한때는 지금의 네 남편도 너에게 소중한 사랑이었잖아.”
“누가 그래? 내 소중한 사랑이라고? 저는 소고 내가 닭인 줄 아는 남편과 공부는 담 싸서 서울에서 약간 멀어서 ‘서울약대’라고 부르는 대학 가느니 차라리 유학 보내자 해서 보냈더니 몰래 귀국해서 신용카드 쓰고 다니다가 걸리는 아들에, 공부가 안 돼서 첼로 가르쳤더니 무거운 가방 메고 다니기 힘들다고 차 사달라는 딸에, 인생이 왜 그러니?”
갑자기 진애의 푸념을 듣고 있자니 귀에 주렁주렁 달린 현란한 귀걸이들이 그녀의 가족처럼 보인다.
“그래도 그냥 리모델링해서 살아."
나는 진애를 위로하듯 말했지만, 그 말은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나 중매해서 삼 개월 만에 결혼했어.”
할 말이 없어진다. 시작이 무엇이었든 다 똑같아서. 20세기말에 연애해서 21세기까지 사는 나 역시 낭만은 사라지고 오직 서사만이 남을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내가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의 대답은 단언컨대 아니다.
“근데, 국영이 오빤 왜 자살해서. 내 인생 후반기를 외롭게 하니? 난 아저씨들의 하얀 ‘난닝구’가 그렇게 순결하고 아름답다는 걸 <아비정전>에서 그 오빠가 입은 걸 보고 처음 알았다.”
진애가 블랙커피를 원 샷으로 마시며 투덜거린다. 사실 나보다 그녀가 장국영을 좋아했다. 오히려 나는 <도둑들>에 나왔던 임달화를 좀 더 좋아했다.
그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아침 댓바람부터 조조 표를 끊었고 커피를 마시며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닐영의 <Four strong winds>를 들으며 오래전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극장에서 여배우 김 혜숙과 벌인 중년의 로맨스를 보는 순간 나는 오랫동안 봉인해 두었던 내 청춘의 시간이 한순간 해제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 내게도 충분히 사랑이 올 수 있는 나이건만 그놈의 망할 일부종사 콤플렉스 때문에 잊은 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 사랑도 후져진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음을 임달화의 눈빛을 보고 알았다. 죽은 장국영보다 역시 내겐 살아 있는 임달화였다. 그래도 장국영이 없어서 남은 시간이 슬프긴 하다. 진애와 나는 언젠가는 홍콩에 가서 장국영이 생을 마감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 가서 그를 추억하며 건배하기로 했다. 그날은 꼭 4월 1일 이어야만 한다.
“시인 나셨다. 원래 전설은 그래. 그‘난닝구’도 장국영이니까 멋있던 거지.”
나는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장국영의 사진을 보며 꿈꾸는 것 같은 얼굴에 되는 진애에게 초를 치듯 말했다.
화면 가득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한때 청춘을 채워주던 그가 떠난 지도 10년이 넘었다. ‘영웅본색’을 봤고, ‘천녀유혼’을 보며 그가 준 판타지를 즐겼고, ‘종횡 사회’를 봤고 ‘해피투게더’를 보며 청춘 시절의 문을 닫았었다. 그가 없는 세상은 여전히 푸르고 아름다워서 해마다 만우절에 ‘사실은 장국영이 죽은 게 아니래’라는 거짓말을 듣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죽은 후 10년 동안. 그리고 임달화는 멋진 중년으로 돌아와서 화면 가득 웃음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마리아 엘레나’에 맞춰서 거울을 보며 맘보춤을 추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진애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럴 만도 하다. 진애에는 영화 속 장국영의 고독과 허무가 그녀의 것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그날 나와 진애는 말없이 스파게티를 먹고 맥주 한잔을 마시며 창밖으로 지는 봄날의 꽃을 보며 다시는 꽃 필 일이 없는, 장국영이 가버린 텅 빈 시간, 달리 그것밖에는 추억할 것이 없는 장국영이 가버린 지루한 시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꽃처럼 진 사월의 남자 장국영, 그는 행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