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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는 않되, 매몰되어 있지 않기]

19. 두번째 추적관찰

by 아피탄트

90%의 완치율과 11층짜리 아파트


두번째 추적관찰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친구와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여러 이야기들을 하다 암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제 완전관해도 되었고 다시 건강해졌는데, 여전히 불안하기도 하니? 완치 가능성이 되게 높은 암이긴 하잖아."


추적관찰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은 불안했던 나는, 어떻게 말해야할까 고민하다 답을 했다.


"응. 호지킨림프종 2기면 완치율이 90% 정도 되더라, 거꾸로 말하면 10% 정도는 5년 내 재발을 한다는 뜻이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를 보며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다보면, 가끔씩 목적지의 층이 같아서 버튼이 이미 눌러져 있는 경우가 있잖아. 지금 내 상황이 그래, 11층짜리 아파트."

"20층짜리 아파트에서도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같은 층에 사는 이웃과 같이 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확률이 한 5% 되잖아."

"근데 10%의 확률이면 11층짜리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잡는 거지. 그래서 불안해."


괜찮다가도 가끔씩 불안해지는 이 마음을 이 정도면 꽤 잘 표현한 것 같았다.




두번째 추적관찰


2024년 9월 10일


- 9:40 채혈

- 11:40 CT 촬영


이번엔 추석연휴가 끼어있어서 검사와 진료의 간격이 2주가 되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운전을 해서 그런지 도착해서 피를 뽑을 때까지도 혈관이 차가웠고,

그래서 더 많이 아팠다.


2024년 9월 24일


- 13:30 진료


교수님께서는 이번에도 역시 다 괜찮다고 하셨다.

이젠 밖에서 보면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다며, 예정대로 3개월 후에 또 보면 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다만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긴 피부 병변들이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아서 이 부분을 문의드렸더니 피부과 진료를 의뢰해주셨고, 10월 22일로 예약을 잡게 되었다.


마지막으론 다음 추적관찰 예약일을 잡고 귀가했다.


- 채혈/CT 촬영: 12월 17일

- 외래 진료: 12월 24일




잊지는 않되, 매몰되어 있지 않기


요즘에 주변에서 결혼을 많이들 하더라고요.

훨씬 먼 미래를 내다보고 그 시간들을 함께할 것을 약속하는 것, 그럴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기도 부럽기도 해요.


각자의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삶의 불확실성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과정이라 생각을 해요.

물질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가장 중요한 건강이 있을 테죠.


그런데 저는 그 밑바탕인 건강에서 불확실성이 커져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하는 게 어렵고 두려웠어요.

다 3개월 후에 다시 시작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거든요.

그래서 결혼을 하는 주변의 지인들이 참 부러웠나봐요.

3개월 후에도, 1년 후에도, 5년 후에도, 50년 후에도 서로가 떠나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을 테니까요.


이제 저는 부러워만 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들을 축하하면서, 또 이런 제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과 생각들에도 맞서며 이겨낼 거예요.

정말 힘들었던 항암치료기간, 그리고 그 때 했던 많은 생각들, 잊지는 않을 테지만 거기에만 매몰되어 있지도 않으려고요.

조금씩 빠져나올 거예요.

두 번의 추적관찰을 통과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더 가벼워져서, 그래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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