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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박 Sep 18. 2023

친구가 사람을 죽였다

해부학의 나비 효과 


해부학의 나비 효과 


해부학에서 낙제를 했다! 과학이 아닌 영화 연출을 전공, 겨우 선수 과학 과목만을 이수해 턱거리로 치의대에 들어온 난 해부학이 처음이었다. 입학도 힘들고 지옥이었는데, 지나온 모든 지옥들이 해부학 한 과목에 담겨있었다. 라틴어 어원의 생소한 의학용어들이 소화되지 않은 채로 쏟아졌다. 암기력과 체력에 한계가 왔다. 외워지지 않아서 울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건  유쾌하지 않다. 하루 세 시간 수면이 일주일 이어져도 결국 낙제를 했다. 해부학 랩 시험은 까다롭다. 진열된 50개의 테이블 위에 문제와 인체 조직들이 디스플레이되고 60초를 준다. 60초 후엔 옆 테이블로 이동하며 답을 적는다. A라는 조직을 보여 주고 그것의 해부학적 이름을 답하는 게 아니라, 디스플레이된 조직 A에서 혈류가 B로 이어져 C로 들어갈 때, C 혈관 위에 위치한 신경 조직의 이름을 묻는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출제되다 보니 ABC 모두를 다 알아야 푸ㅜ 수 있다. 학부에서 했던 생물학과는 차원이 다르다. 


낙제를 하면 Academic probation을 받는다. Probation이란 범죄자들이 집행 유예를 받은 후 여행을 제한받고 일주일에 한 번 프로베이션 담당을 만나 생존 신고를 해야 하는 징벌이다. 낙제를 해도 똑같다. Academic probation에 들어가면 일주일에 한 번 카운슬러와 심리 치료를 동반한 면담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위원회 미팅에 참석해야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의사 선생님들 10명 정도가 기다란 책상에 마주 보며 앉아 있고, 난 그 책상 끝 한가운데 앉게 되는 구조라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집중되면 등골이 오싹하다. 처음엔 이 많은 머리 희끗들이 나를 보기 위해서 모였다는 거에 당황했다. 내게 별로 관심을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았으니까, 내가 이 모든 몰려듦의 원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익숙하지 않았다. 위원회가 열리고 나면 늘 누구도 내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내 운명이 이미 결정되고 있었다. 난 그저 증인으로 그곳에 출석해 있을 뿐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너에 대한 결정을 하면서 우리끼리 속닥거리면서 결정을 한 게 아니라, ‘너와 함께 한 거란다’라고 말을 하기 위한 요식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과정들이 그리 비관적이진 않았다. 적어도 내 성실함에 대해서는 경험치가 있었다. 낙제생들끼리 모여 그룹을 이뤄 스터디를 하고, 다시 재 시험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재 시험을 낙제하면 치의대를 나가야 한다. 


낙제를 했을 때 힘든 건 낙제, 그 자체가 아니다. 수근 거림을 견뎌야 한다. “누구누구가 낙제했다는데 바보들이지~ 모” 이런 이야기들을 그 낙제자가 나인 줄 모르고 스스럼없이 한다. 처참하지만 친구들의 인성을 나무랄 순 없다. 전국에서 공부 빼면 서러운 아이들이다.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가 공부뿐인 아이들 기준에 낙제자는 상상도 못 할 비웃음의 대상이다. 학교에선 비밀로 하지만 적어도 낙제생끼리는 미팅을 하기 때문에 서로 안다. 나도 우울증이 왔다. 우울증은 살아 있는 죽음이다. 살아 있는 죽음을 살 것인지 아니면 죽음으로서 살 것인지를 끊임없이 저울질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마이크를 만났다. 훗날 알았지만, 마이크는 해부학 외에 다른 두 과목을 더 낙제했었다. 불안해 보이는 눈빛, 낙제를 해본 사람만은 알 수 있는 비장하기조차 한 외로움 가득한 눈빛이었다. 같은 학교를 다녀도 정원이 76명이라 졸업 때까지 말 한마디 못 해본 동료도 있다. 마이크도 그중 하나였다. 왠지 그날은 말을 걸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날 그에게 말을 걸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은 파리의 날개를 하나 떼어 사막 위에 올려놓았을 때 파리가 느끼는 고통의 반이 외로움이라 했다. 작은 파리 하나가 옆자리를 지켜 준다면 반쪽 날개의 파리는 고통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기에, 흔들 거리는 버들가지도 새가 앉으면 바람에 덜 흔들린다.


사막에서 너무도 외로워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_오르텅스 블루


친구가 사람을 죽였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용하는 유명한 변호사 아버지를 둔 마이크는 190cm가 넘는 큰 키에  경제적으로 넉넉했고, 빨간색 콜벳 스포츠카를 탔는데 나는 그 차를 저녁 로컬 뉴스에서 첨 봤다. 새벽에 음주 사고를 내고 상대 운전자와 동승자 두 명을 사망케 하고 현장을 떠나 도주 8시간 후 체포됐다. 음주 측정을 할 수 없으니 음주혐의는 피했으나 뺑소니로 8년형을 받았다. 때론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주는 따듯함의 문제’라고 리처드 프로티컨이 했다. 내 행동의 결여를 후회했다. 그날 말을 걸었더라면, 그래서 차 한잔 마시자 했더라면, 단지 몇십 분에 불과했겠지만 나와의 접촉이 그의 고독감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러지를 못했고 다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낙제를 했다 추가 공부시간은 없다. 기존의 커리큘럼을 소화하면서 틈틈이 재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한 과목도 아니고 2-3과목을 낙제했던 그의 심리적 압박감이 짐작이 된다. 프로티컨이 말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주는 따듯함의 문제기도 했지만,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인생이란 ‘짧은 기간의 망명’ 일 수도 있다. 이 덧없는 짧은 기간의 망명 생활 동안 우린 서로 따듯함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지만, 고립되지는 않았다.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하루가 완전히 끝난 적도 없는 일상


사건이 있고 나서 한차례의 웅성거림이 지난 후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타인의 아픔을 안고 감정 소모를 끌고 갈 여유는 없었다. 인생에서 마스크도 없이 맞이하는 예고되지 않은 불쾌한 날 숨은 세상 어딘가에 있는 큰 공기 청정기로 매끈하게 빨아들인 듯했다. 나 도 무덤덤하게 감정을 냉장고에 얼려둔 채 드라이하게 살아야 했다. 마이크는 새로운 세계에서 형벌을 받을 것이고 나는 나의 진창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창은 훗날 기억하건대, 이제 시작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명도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때론 우정이 애정보다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한다. 같은 학교를 4년 동안 함께 다닌다는 이유로 우정을 위장하며 사는 것도 피곤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 성취를 함께 나눈 시절만 서로에게서 빼고 나면 공허해진다. 내가 고독을 즐기거나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없다. 다만 억지 노력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소모시켜 갔고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하루가 완전히 끝난 적도 없는 일상의 드라이한 반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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