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의 나비 효과
해부학에서 낙제를 했다! 과학이 아닌 영화 연출을 전공, 겨우 선수 과학 과목만을 이수해 턱거리로 치의대에 들어온 난 해부학이 처음이었다. 입학도 힘들고 지옥이었는데, 지나온 모든 지옥들이 해부학 한 과목에 담겨있었다. 라틴어 어원의 생소한 의학용어들이 소화되지 않은 채로 쏟아졌다. 암기력과 체력에 한계가 왔다. 외워지지 않아서 울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건 유쾌하지 않다. 하루 세 시간 수면이 일주일 이어져도 결국 낙제를 했다. 해부학 랩 시험은 까다롭다. 진열된 50개의 테이블 위에 문제와 인체 조직들이 디스플레이되고 60초를 준다. 60초 후엔 옆 테이블로 이동하며 답을 적는다. A라는 조직을 보여 주고 그것의 해부학적 이름을 답하는 게 아니라, 디스플레이된 조직 A에서 혈류가 B로 이어져 C로 들어갈 때, C 혈관 위에 위치한 신경 조직의 이름을 묻는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출제되다 보니 ABC 모두를 다 알아야 푸ㅜ 수 있다. 학부에서 했던 생물학과는 차원이 다르다.
낙제를 하면 Academic probation을 받는다. Probation이란 범죄자들이 집행 유예를 받은 후 여행을 제한받고 일주일에 한 번 프로베이션 담당을 만나 생존 신고를 해야 하는 징벌이다. 낙제를 해도 똑같다. Academic probation에 들어가면 일주일에 한 번 카운슬러와 심리 치료를 동반한 면담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위원회 미팅에 참석해야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의사 선생님들 10명 정도가 기다란 책상에 마주 보며 앉아 있고, 난 그 책상 끝 한가운데 앉게 되는 구조라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집중되면 등골이 오싹하다. 처음엔 이 많은 머리 희끗들이 나를 보기 위해서 모였다는 거에 당황했다. 내게 별로 관심을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았으니까, 내가 이 모든 몰려듦의 원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익숙하지 않았다. 위원회가 열리고 나면 늘 누구도 내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내 운명이 이미 결정되고 있었다. 난 그저 증인으로 그곳에 출석해 있을 뿐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너에 대한 결정을 하면서 우리끼리 속닥거리면서 결정을 한 게 아니라, ‘너와 함께 한 거란다’라고 말을 하기 위한 요식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과정들이 그리 비관적이진 않았다. 적어도 내 성실함에 대해서는 경험치가 있었다. 낙제생들끼리 모여 그룹을 이뤄 스터디를 하고, 다시 재 시험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재 시험을 낙제하면 치의대를 나가야 한다.
낙제를 했을 때 힘든 건 낙제, 그 자체가 아니다. 수근 거림을 견뎌야 한다. “누구누구가 낙제했다는데 바보들이지~ 모” 이런 이야기들을 그 낙제자가 나인 줄 모르고 스스럼없이 한다. 처참하지만 친구들의 인성을 나무랄 순 없다. 전국에서 공부 빼면 서러운 아이들이다.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가 공부뿐인 아이들 기준에 낙제자는 상상도 못 할 비웃음의 대상이다. 학교에선 비밀로 하지만 적어도 낙제생끼리는 미팅을 하기 때문에 서로 안다. 나도 우울증이 왔다. 우울증은 살아 있는 죽음이다. 살아 있는 죽음을 살 것인지 아니면 죽음으로서 살 것인지를 끊임없이 저울질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마이크를 만났다. 훗날 알았지만, 마이크는 해부학 외에 다른 두 과목을 더 낙제했었다. 불안해 보이는 눈빛, 낙제를 해본 사람만은 알 수 있는 비장하기조차 한 외로움 가득한 눈빛이었다. 같은 학교를 다녀도 정원이 76명이라 졸업 때까지 말 한마디 못 해본 동료도 있다. 마이크도 그중 하나였다. 왠지 그날은 말을 걸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날 그에게 말을 걸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은 파리의 날개를 하나 떼어 사막 위에 올려놓았을 때 파리가 느끼는 고통의 반이 외로움이라 했다. 작은 파리 하나가 옆자리를 지켜 준다면 반쪽 날개의 파리는 고통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기에, 흔들 거리는 버들가지도 새가 앉으면 바람에 덜 흔들린다.
사막에서 너무도 외로워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_오르텅스 블루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용하는 유명한 변호사 아버지를 둔 마이크는 190cm가 넘는 큰 키에 경제적으로 넉넉했고, 빨간색 콜벳 스포츠카를 탔는데 나는 그 차를 저녁 로컬 뉴스에서 첨 봤다. 새벽에 음주 사고를 내고 상대 운전자와 동승자 두 명을 사망케 하고 현장을 떠나 도주 8시간 후 체포됐다. 음주 측정을 할 수 없으니 음주혐의는 피했으나 뺑소니로 8년형을 받았다. 때론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주는 따듯함의 문제’라고 리처드 프로티컨이 했다. 내 행동의 결여를 후회했다. 그날 말을 걸었더라면, 그래서 차 한잔 마시자 했더라면, 단지 몇십 분에 불과했겠지만 나와의 접촉이 그의 고독감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러지를 못했고 다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낙제를 했다 추가 공부시간은 없다. 기존의 커리큘럼을 소화하면서 틈틈이 재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한 과목도 아니고 2-3과목을 낙제했던 그의 심리적 압박감이 짐작이 된다. 프로티컨이 말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주는 따듯함의 문제기도 했지만,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인생이란 ‘짧은 기간의 망명’ 일 수도 있다. 이 덧없는 짧은 기간의 망명 생활 동안 우린 서로 따듯함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지만, 고립되지는 않았다.
사건이 있고 나서 한차례의 웅성거림이 지난 후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타인의 아픔을 안고 감정 소모를 끌고 갈 여유는 없었다. 인생에서 마스크도 없이 맞이하는 예고되지 않은 불쾌한 날 숨은 세상 어딘가에 있는 큰 공기 청정기로 매끈하게 빨아들인 듯했다. 나 도 무덤덤하게 감정을 냉장고에 얼려둔 채 드라이하게 살아야 했다. 마이크는 새로운 세계에서 형벌을 받을 것이고 나는 나의 진창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창은 훗날 기억하건대, 이제 시작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명도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때론 우정이 애정보다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한다. 같은 학교를 4년 동안 함께 다닌다는 이유로 우정을 위장하며 사는 것도 피곤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 성취를 함께 나눈 시절만 서로에게서 빼고 나면 공허해진다. 내가 고독을 즐기거나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없다. 다만 억지 노력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소모시켜 갔고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하루가 완전히 끝난 적도 없는 일상의 드라이한 반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