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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Oct 13. 2022

태엽귀신 로빈슨 크루소

명예퇴직을 앞둔 불안함이 잠으로도 이어집니다 나는 매일 밤 폐기처분 되어 용광로에 들어가는 꿈을 꾸거든요 이미 제 수명을 다한 시계가 녹슨 초침을 자꾸만 삐걱거리고 난 시침에 걸터앉은 채 오늘도 어김없이 시간을 만집니다     


여기는 거실 한가운데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섬입니다 익숙한 방을 오래도록 쳐다보지만 저 역시 외로운 곳입니다 햇빛이 달아오른 모래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물결을 타고 넘실거리는 외로움이 깊은 수심에 꼼짝없이 침몰하여 다가가기에는 너무 가깝고도 먼 거리입니다     


하나, 둘 

박자를 맞춰 

노래해, 똑딱

똑딱     


망망대해를 자꾸만 연상시키는 거실에서도 불 꺼진 집안에서도 노래하며 지냈지만 매일 밤 악몽은 신기루보단 예지몽에 가깝습니다 타오르는 성냥으로 모닥불을 지피는 게 동화 속 일이지만 왜인지 타고 있는 재는 나의 미련인 것 같습니다     


리듬을 바꿔 재깍, 째깍거리고 싶었던 내가 불 속에서 똑딱, 똑딱 소리를 내며 타고 있습니다 

    

표류 날짜를 잊은 채 혼잣말로 나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모래처럼 여기저기 묻혀있다 똑딱똑딱, 소리를 만들고 시침이 흐르면 어디선가 파도가 밀려올 겁니다 바다 너머 저 어딘가 목청껏 노래하다 죽은 태엽들의 소문을     

여기저기 난파된 채 나의 존재는 귀신으로 남을 거지만 누구든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한 번 더 똑딱, 똑딱 노래하는 것을 관두고 싶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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