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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Oct 14. 2022

가족 목욕

목욕물엔 거무스름할 때가 이끼처럼 피어있다

앞선 가족들의 흔적이 떠다니는 욕조에 발을 집어넣는 할아버지

천천히 물속에 몸을 집어넣는 게 시간을 거꾸로 감은 영상 같고

창문 너머로는 하얀 눈이 나부끼고 

얼음 같은 물에도 흔들림 없는 표정 유지하랴

자신의 술배 손으로 올려보랴 찰랑, 

욕조 끝까지 갔다 온 파도가 잠잠해진다

몇 번 더 파랑을 만들던 할아버지는 흥얼거렸고

콧노래가 욕실 모서리 수증기처럼 뭉게구름 지으면

아궁이 불 때우던 아비와 바게스에 물 담던 손자와

욕조에 물 온도 맞추던 애미의 노래도 욕실 곳곳에 남았을 것 같고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일어나자

욕조 속으로 다이빙하는 물방울

수증기 속에 섞인 한숨을 도로 삼키곤 마개를 연다

배수구에서 머뭇, 빙글빙글 도는 물, 물, 물

할아버지는 축축하게 걸린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바가지로 물 한번 뿌리면 욕조 속 남은 때마저 씻겨지고

면도가 잘 되었나 턱을 만져대는 할아버지는

뿌연 거울을 손으로 닦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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