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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Oct 03. 2023

뱀은 원죄?

그냥 일기

헬스장을 가는 길이었다. 아닌가. 어쨌든 걷고 있는 길이었다. 앞에 중년의 부부가 나누는 얘기가 들렸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의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뱀은 죄가 없지.


그러자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얘기했다.


뱀은 원죄지.

뭐?

뱀은 원죄라고.


아마 아내로 보이는 분은 기독교 신자였지 않을까.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오늘 2호선에선 한 아저씨가 열심히 소리를 치며 열차 칸을 이동하고 있었다.


짐승도 믿는 하나님을 인간이 안 믿는다는 건, 이런 벼락맞을 것들.

짐승도 믿는다니까? 인간이 근데 안 믿는 게 에잉 쯔쯧 벼락맞을 것들.


무슨 게임 속 NPC를 만난 기분이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 음, 반복까진 아니어도 이 정도면 대구법 아닐까.


그러고 연신 아저씨는 소리를 쳤는데 열차 칸을 이동하는 중이라 자세히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 부러운 발성이었다. 저 정도 발성에 딕션, 와우.


뭐, 이런 얘길 한다고 오늘의 주제는 종교이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안 쓴지 좀 된 거 같아서 쓰는 거다. 생일이기도 하고 뭐. 작년 생일 때도 촬영을 했는데 오늘도 그렇다. 짧은 촬영이라 정말 금방 끝났지만.

보라매 공원은 처음 가봤다. 공군을 나왔지만 그 보라매가 그 보라매인 줄은 몰랐었다. 보라매 공원에 가득한 전투기를 보자 옛날 생각이


나진 않았다.


나는 원재의 노래를 좋아한다. 우원재. 키드밀리 노래도 좋아하는 편이다. 둘의 빡센 랩보단 감성이 좋고 특히 우원재의 감성은 무언가를 자극하게 만든다. 갑자기 우원재 얘기가 나온 건 정말 다른 의미는 없고 앞선 뱀의 원죄 때문이다.


뱀은 무슨 죄를 가지고 있는 걸까. 성경을 읽진 않았지만 대충 듣긴 했다. 그래서인지 서양에선 뱀이 안 좋은 동물인 거로 안다. 뱀에서 진화한 게 용인가, 그건 모르겠다만 용도 안 좋은 이미지로 그려지는 게 서양이고.


뭐 동양에서도 뱀은 좋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뱀, 징그럽게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던 거 같다. 엄마가 그랬다. 뱀띠인 탓인진 몰라도 뱀과 연이 길었다. 작은 형의 태몽은 뱀이었다. 큰 구렁이 같은 뱀이 엄마를 꽉 쪼았다고 한다. 엄마는 꿈에서도 너무 징그러웠다고 한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 뱀이 나오면 엄마는 등을 돌려버린다. 이유는 징그럽다고. 모든 파충류한테 공정하게 대한다. 징그러운 것엔 파충류, 그것엔 뱀이 대표였지 그냥 비늘 달린 애들은 징그럽다고 말한 거 같다.


실물 뱀을 봐도 좋아하진 않는다. 당연한 얘기겠지. 사실 길 가다 뱀을 만나면 경계하기 마련이니까. 

만약 뱀이 고양이처럼 생겼다면 원죄는 가지지 않았을 거 같은데. 이런 생각엔 끝이 없겠지.


판다는 귀여워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경우인지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뱀이 원죄를 가진 게 맞다면, 그건 정말 낙인 아닐까.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한다. 그냥 태어나자마자 죄를 가진 거니까. 뱀 각각은 분명 각기 다른 개체로서 생명을 가진 존재일 텐데. 부모가 범죄자라고 아이한테까지 죄를 묻는 그그그그 뭐냐, 그 법은 폐지되지 않았는가. 아닌가, 내가 다른 법이랑 착각하나.


입주자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세대주가 000이 맞냐는 거였는데 내가 집주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전화는 그렇게 30초도 안 되서 끝난 거 같다. 

뭐, 그냥 그렇다고.

추석에 본가로 내려가기 전 주말, 집 앞엔 갑자기 등이 생겼다. 공원에 설치하는 그 밝은 등. 자취방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은 블라인드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오늘 난 자는 곳을 옮겼다. 작은 방으로 이불을 옮겼다.

입주자 대표한테 물었어야 했는데. 왜 정작 가장 피해보는 위치의 집에 사는 나한텐 등 설치 여부를 묻질 않고 세대주를 묻는 걸까. 관리비는 똑같이 내는데 난 주차도 안 하는데. 시시티비나 고칠 것이지 왜 갑자기 없던 등을 설치하는 걸까.


이런 얘긴 끝도 없다. 끝도 없어서 막막하다. 순응하면 편하지만 마음은 반대하고 싶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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