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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Oct 21. 2022

손가락

넌 붕어방 벤치 분수에 넋이 나갔어 손을 올려 물줄기를 가려보려는 너지만 없는 약지 사이로 물이 얼굴을 향해 쏟아져


초딩 때 젖은 머리를 말리기 싫어했어 새끼손가락으로 약속하면 결혼, 행복, 직업, 부자 어떤 것이든 걸어댔는데 자연 바람에 마르는 머리칼처럼 바람이 날 업어줄 거라고 몸 기대면 흐름에 따라 미끄럼틀에 미끄러져 모래사장에 누우면 소지(小指) 하나 높게 들어 구름을 반지 삼기도


넌 어디를 베고 싶어 나는 신이 미워했대 몇 번을 물었지만 손톱만 무성하게 자랐어 신은 손을 긋는대 그런데 난 약지까지 금을 이었데 어의관 외벽만큼이나 헌 손가락 하릴없이 물어뜯다 보면 신이 이해가 될 것 같아 맛있거든 짭조름하게 가운뎃손가락을 들고 다녔어 중학생 때는 정점을 찍으려 했지 높아진 키는 바람마저 다르게 불 것 같았거든


지금, 분수에서 가장 높이 물이 뛰쳐나올 때야 수면에 가장 파동이 일렁일 때야 어지러운 게 똑 주름진 내 손가락 같지 물줄기처럼 나의 중지도 낙하했어 그러곤 펜을 잡고 서걱서걱 됐지 도서관 유령이 돈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할 때까지 가방에는 일용할 책을 즐비하게 준비했어 검지는 책의 밑줄을 치는 형광펜이었지


뭉툭하게 굵어진 엄지는 지문이 지워졌어 너는 의자와 한 몸을 이룬 채 첫 번째 손가락을 치켜세웠어 분수는 널 금방이라도 덮칠 것만 같고 햇볕은 나뭇잎 사이를 뚫느라 희미하게 너의 얼굴에서 숨을 쉬고 손가락을 접자 평범한 주먹 같고


양손을 포개자 물줄기가 얼굴을 덮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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