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 불명의 편지가 문을 똑똑, 두들겼다
능소화 하나 손에 쥐고 바닥에 누운 너
편지는 무궁화 그려진 엽서를 머리핀 삼았고
엽서 테두리는 너의 피부만큼이나
하얀 옷을 입었는데 인장으로 얼룩져있었다
향학로를 걸을 때면 너는 그늘에 가려지는 기분이라고
그런 기분은 태양이 잘못한 것만 같고
나무는 멋쩍게 나뭇잎만 살랑, 흔들 수밖에
바람을 미워해
레터링 타투처럼 눈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글씨
바람이 나뭇잎을 건들잖아 숨은 채
나무 밑에 있으면 해님이랑 숨바꼭질한다고
편지지에 숨어 있을 너를,
나는 문양을 해독하는 학자가 될 것만 같고
문장 속에서 네가 ㄱ, ㄴ을 들고 손을 흔들 것만 같은데
스탠드 조명 아래서 능소화와 여름에 피어난 널
가을에 수신해서 찾지 못하겠어
널 찾다가 편지를 찢었다
현관 등은 자신의 존재를 까먹은 채 검은 구두처럼 어둑에 익숙해졌고
또박또박, 미안해로 시작해
비문이 되기 전에 마침표를 찍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