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생 토끼끼리 만나다

by 수호

스님을 화장하니까 몸에서 사리가 나왔대. 이게 뭘까.

뼈 아닐까.


내 룸메는 한결같다. 문창 본인과 공대 룸메의 조합은 MBTI로도 확실하게 구분된다. INFP와 ISTJ(아마도)의 4년 동안의 룸메이트 생활은 내년이면 종지부를 찍는다. 서로 대학을 졸업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우리가 만난 건 서로 18학번 스무 살 새내기 시절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외모의 소유자인 공대 룸메는 정말 평범했다. 안경을 쓰고 말랐다. 솔직히 외모만으로 구별하라고 한다면 어려웠다. 어쨌든 이게 첫 만남이었다. 생각보다 순했다. 우린 서로 소심했고 토끼띠만큼이나 조심스러웠다.


공대 룸메에게 비과학적인 건 사고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특히 나와는 정말 반대되는 학문이었다. 나는 문학을 공부하고 소위 문학적인 것은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다. 비문학은 과학이라면 문학은 비과학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등가 성립이 가능해진다.


뼈 아니래. 이거 다른 성분도 발견됐대.


내 룸메에게 그건 '사리'가 아닌 뼈다. 관심 분야가 다르다. 최근에 삼립 사건에 대해서도 나는 다소 놀랐다.


산업재해는 항상 있었고 여성 노동자의 죽음도 적잖이 있었어.


맞는 말이었다. 사건사고는 항상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조금 결이 다른 거 같은데.


장례식장 때문에 사건이 더 발화된 거 아닐까. 빵을 줬다잖아.

그건 맞는데, 장례식 전부터 사건이 핫했던 거 같은데.


듣고 보니까 맞는 말이었다. 사실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탓에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독서 토론에서 어떤 공대생은 장애인의 노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력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로 장애인의 노동이 예시될 수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장애인이 노동에 있어서 환경과 급료의 차이가 나는 것은 그만큼 선진국의 국력을 보여주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듣고 놀랐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왜 저렇게 접근해본 적이 없었을까. 물론 다소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었다. 노동력이기 전에 엄연히 사람으로서 보여준 행동이니까. 그렇지만 숫자 앞에서 우린 자꾸만 도구나 상품으로 전락한다. 수치화는 우리 모두 개개인의 특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내 룸메와 나는 생활 패턴에서도 굉장히 차이가 났다. 나는 수건을 따로 빨고 싶었다. 섬유유연제를 사용하지 않고서. 내 룸메는 그것이 귀찮았다. 세탁망도 난 쓰고 싶어 하지만 룸메는 반대였다. 우린 그렇게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달랐다.


그럼에도 잘 지내는 거 같다. 나에게 공대 룸메는 애착 인형 같기도 하다. 내가 뭐라 뭐라 떠들면 잘 들어준다. 사실 듣고 있는진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난 그가 듣고 있든 아니든 그냥 막 말한다. 내가 했던 후회도 잘못도 반성도 좋은 일도 기쁜 일도 재밌는 일도 사상적인 이야기도 모두.


글을 쓴다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으니까.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그랬다. 누군가의 추억은 미화된 것일 수 있다. 말만큼이나 글도 상황에 쉽게 좌우된다. 내가 쓴 글에서도 누군가는 기분이 나쁠 수 있고 잘못을 지적할 수도 있다. 천현우 작가처럼 누군가 젠더 감수성을 들먹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할 말이 없어질 거다.


이런 얘기에 무슨 방향이 있거나 흐름이 있진 않다. 그냥 쓰고 싶은 걸 쓰는 거니까. 진용진의 <없는 영화>를 보면 남자들의 세계를 정말 잘 구현했다는 생각든다. 최근 편에선 성희롱을 일삼는 양아치 남성이 나온다. 군대의 후임과 겹쳐 보였다.


그 후임은 자기 말에 잘못을 모르는 아이였다. 물리치료사를 보고 맛있겠다 등의 말을 일삼았다. 물론 물리치료사 앞에서 그러지 않았다. 나는 처음엔 일관되게 무시하다 한번은 내 앞에서 그런 얘기 꺼내지 말라고 했다. 내가 선임이 아니었다면 말을 꺼낼 수도 없었을 거고 사실 무시라는 변명으로 회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후임의 불같은 성격을 당해낼 자신도 없었는데


그 후임은 나를 페미니스트로 지칭했다. 내가 뱉은 말이 반페미니즘과 페미니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윤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아니었나 보다. 사실 후임으로선 좋은 친구였다. 한남이란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그 표현에 적절했다. 남자들의 세계에 너무 적합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속에 부조리와 불합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물론 나 스스로 그것을 척결하고 그러지 않았기에 할 말은 없다. 나는 그것을 즐긴 인물에 가까웠다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너무 고생했던 일병 때를 떠올리면 상병장 땐 확실히 편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부조리는 없어지면 안 됐다.


군대의 방식은 사람의 이기심을 정말 잘 이용했다. 관료제의 한계점이 아닐 수가 없다. 탈관료제라고 해결될 자본주의가 아닌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사회는 여전히 썩었다. 나는 사회가 바뀌길 바란다. 세상이 잘못되었고 우리 청년들은 너무 고생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은데


내 룸메는 생각이 달랐다. 항상 달려가기 바쁜 친구였다. 순응해야 했다. 얘기한다고 바뀌지 않으니까. 정말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눈에 난 배짱이와 비슷한 그 무언가로 보였을지 모른다. 난 시험 기간에도 책 한번 펼치지 않는 대학생이니까. 룸메는 종종 나를 지칭할 때 하는 말이 있다.


학생 맞냐.


시험도 안 치고 책도 안 보고 노트북으로 글을 끄적이거나 영화 따위를 보니까. 연극 연습하러 나가고. 친구와 놀러 가고. 사실 나에게 있어 룸메는 불쌍하다. 당연하게 즐겨야 할 놀이나 여가를 게임으로만 보충하니까. 물론 룸메도 사람을 만난다. 스터디나, 조별 활동이나, 가끔 교수님?


이런 질문을 본 적이 있다. 눈이 녹은 걸 보고 무엇을 떠올리나요?


하수구로 들어가겠지.


내 룸메는 이렇게 말했다. 영상 속 공대생들도 비슷하게 말했다. 눈이 되겠다, 더러워지겠다 등. 반면 문과생은 봄, 희망, 새싹 등을 떠올렸다. 사실 눈 녹은 걸 보고 봄을 떠올릴 만큼 난 시적이지 않다. 문학 소년이라고 불렸지만 딱히 감성적이진 않다.


어떻게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젠 서로 이빨을 들어내고 싸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토끼처럼 오순도순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당근이 주어지면 나눠서 먹기도 하고. 부드러운 털만큼이나 따뜻한 이야기가 앞으로도 계속 쓰였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