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어가는 중

그냥 일기

by 수호


부쩍 들어 나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러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냐면,

10월 2일이었다. 12:40분 정도의 시간이었고 점심시간이었던 타이밍이었다. 교수님의 기부채납도서를 받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나는 14시 강의가 있었고 아직 덜 읽은 책이 있었다. 즉, 할 게 아직 많이 남은 상태였다. 그래서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도서관에 간 것이다.


평소처럼 자료 대출하는 2층에서 기부채납도서를 받으러 왔다고 하는데 근로학생이 3층(행정실)으로 가라는 거다. 어? 그래서 뭐, 그 사이 바꼈나 싶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듯 점심시간이었다. 1시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흠, 그래서 13시까지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에 좋은 좌석이 많아서 쉴 곳이 많았다.


그런데 행정실에 주무관께서 회의 중으로 외부에 있다는 거였다. 근로학생만 가득한 행정실에서 난 길을 잃었다. 주무관에게 연락을 취해줄 수 있냐고 하자 근로학생이 카톡을 보냈다. 요즘은 전화가 아닌 카톡으로 하나...


주무관 왈, 2층 자료실로 가서 받으라는 거였다. 나는 다시 내려갔다. 내려가서 근로학생에게 "여기서 기부채납도서 받는 게 맞다는데요?"라고 했다. 근로학생은 그제야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곤 책의 바코드를 찍으면서 "신청하러 오신 건 줄 알고" 이런 식으로 말하며 얼버무렸다.


사과는 없었다. 나는 20분을 기다렸는데, 바쁜데, 근로학생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아무렇지 않아 했다. 나는 그냥


아, 네.


말고 할 말도 없었다. 다시 빨리 상상관으로 돌아가서 책을 읽어야 했다.


1일 날, 17시부터 19시까지 학원에서 직보가 있었다. 고2 학생들의 직전 보충 수업이었다. 2일 날, 국어 시험을 치는 학생들을 위한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런데 학생이 오질 않았다. 두 명밖에 학생이 없는데 둘다 오질 않았다. 하나는 18시에 왔다. 하나는 오질 않았다. 그래, 내 성적 아니지


달관하는 자세를 배워야 했다. 생각보다 나는 오지랖이 넓구나. 이해가 안 됐다. 학원에 돈을 내고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학원비는 싸질 않다. 물론 우리 학원은 타 학원에 비해 싸긴 하지만 그럼에도 학원의 가격은 착할 수 없다. 나는 점점 꼰대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17시부터 18시까지 나는 혼자서 잡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한 영화사의 조연출이었다. 전에 오디션 봤다가 떨어진 기억이 났다. 왜 전화가 오지?


용건은 간단했다. 4일(토요일)에 시간이 된다면 이미지 단역을 해달라는 거였다. 촬영팀에 면접 보러 온 사람과 감독, 통역가가 있는 장면이었고 나는 주인공(면접 보러 온 사람)이 오기 전 면접자였다. 그러니까 아주 작은 역할이지만 어쨌든 역할이었고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첫 씬이기도 하고 뭐라도 역할이 있다는 건 소중한 거니까. 그렇게 진행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다음 날인가 다다음 날엔 촬영 경력이나 일본어, 영어 회화 여부도 물었다.


3일이었다. 나는 강원도 동해에 아침 첫차를 타고 갔다. 가족 여행 때문이었다. 그렇게 베틀바위를 오르고 호텔에서 머물렀고 내 생일이었다. 조감독에게 문자가 왔다. 통화 가능하세요?

벌써 불안하다. 저녁이었다. 나는 7시 이후로 괜찮다고 보낸 것 같았다. 통화는 아마 8시에서 7시 사이에 온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는 조감독, 전달하는 입장은 참 난처할 것 같았다. 요지는 역할이 없어졌다는 거였다. 대신 카페손님 역으로 부탁한다는 거였다. 카페손님이라, 보조출연 아닌가. 맞았다.


나는 3일 막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4일(오늘)에 있을 합정 로케 촬영을 위해서다. 아침 8시 30에 갔고 나는 보조출연을 하고 왔다. 심지어 빽에도 걸리지 않고 그냥 대기만 하다가.


사실 슬펐던 건 그거였다. 조감독은 내게 씬이 바꼈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씬은 그대로고 내용만 바뀐, 그러니까 굳이 앞의 면접자가 필요 없는 상황이었던 것 뿐. 나 말고 다른 보조출연(카페 손님)은 3명 더 있었다. 다들 오디션을 봤었고 떨어진 분들이었다. 그분들 말로는 어제 오후 5시에 연락이 왔다고 한다. 나는 왜 몇 시간 늦게 연락준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신적으로 너무 슬펐다. 몸도 정신도. 지하철에서 사실 울고 싶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이렇게 하루 전(12시간)에 없애도 되나.


나는 꼰대가 되었다. 나에게 무례한 사람이 싫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만 내게 무례하다. 세상에게 자꾸만 한소리를 하고 싶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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