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열차 안에서

그냥 일기

by 수호


나는 지금 열차 안에서 글을 쓴다. ktx 특급 열차다. 일반실 표가 없어서 특실을 탔다. 일반실보다 6천원 정도 더 비싼 특실이지만 사실 다른 특징은 잘 모르겠다. 다른 게 있다면 일단 콘센트가 두 개라는 것? 그리고 태블릿 같은 작은 모니터가 있다는 점이다.


안동엔 추석을 맞아서인지 활기가 있었다. 시내엔 사람이 가득했다. 아차가와 맘모스엔 줄이 길었고 웅부주차장에도 차가 가득했다. 일직식당에 줄 선 사람들이 보였고 시내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친구네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가봤는데 가게는 넓고 깔끔했다. 모임을 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룸까진 아니지만 공간을 분리시킨 테이블이 곳곳에 있었다. 친구는 일을 시작하면서 10키로가 빠졌다고 한다. 가장 좋은 다이어트는 일인 걸까.


고향 친구들과는 자주 보질 못한다. 거의 몇 년의 텀을 두고 본다. 오래 안 된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면 몇 년이 지나곤 했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다들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일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거나 거의 둘 중 하나였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가 다시 대학에 들어갔더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도 간혹 들리곤 했다.


아차가의 줄은 넘사였다. 버거킹 앞으로 쭉 이어진 줄은 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걸 기다려서 먹으라고? 근데 왜 버거킹 앞으로 줄을 설까 싶었다. 처음엔 버거킹에 왜 줄을 서서 먹지? 하는 생각이었다.


어쩌다 보니 추석 연휴와 생일이 겹쳤다. mc박기우라는 사람이 내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보냈다. 누굴까, 누구길래 이름 앞에다가 mc를 붙였을까. 래퍼 같진 않고 사회자 같긴 했다. 나이가 꽤 있어 보였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하는 식의 보름달이 크게 그려진 사진을 내게 보냈다. 감사하다고 했지만 여전히 누군진 잘 모르겠다. 어떤 친구가 디엠을 보냈다. 친구라고 말하긴 애매하고 서로 존댓말 쓰고 1번 만난 사이인데 그는 내게 오빠라고 말하며 반말을 썼다. 흠, 내 기억엔 분명 존칭 쓰는 사이이고 사실 안 친한데


어떻게 해야할까 싶어서 나는 존칭을 써서 답장했다. 그는 내 답장에 좋아요만 눌렀다.


나이가 드니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굉장히 비즈니스 사이인 사람에게서 축하 메세지가 꽤나 왔다. 사실 이것도 귀찮은 일이긴 했다. 답장을 하라니, 너무 귀찮은 일이다. 할 수 있는 얘기는 사실 정해져 있으니까. 그럼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형은 안동에 온 기념으로 민생지원금을 쓰고 갔다.


이번엔 추석을 맞아 성묘를 했다. 외가엔 사실 어느 순간부터 안 가게 된 것 같았다. 엄마는 오랜만에 엄마와 아빠를 뵌 거였다. 밀양까지 갔으니 올 때는 경주를 들렀다 갔다. 들렀다고 뭘 크게 하고 그러진 않았다. 그냥 밥을 먹고 오는 정도랄까.


글을 쓰는 도중 음악이 바꼈다. 퓨처리스틱 스웨버의 리브 미. 훈련소 시절이 생각났다. 인터넷 편지가 유일한 낙이던 시절, 하루가 내게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다. 내가 퓨처리스틱 스웨버의 리브 미 가사를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그 복사된 가사를 건빵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심심할 때마다 봤다. 그리고 청소 시간엔 소대번호 1번 친구와 함께 언에듀의 노래를 부르면서 놀기도 했다. 나는 또 돈 벌러 가야대~


생각하니 정작 다른 래퍼의 노래를 불렀다. 근데 그냥 그 생각이 났다. 벌써 6년 정도 지난 일인데 말이다. 하루가 죽은진 5년이 됐고.


요즘 형들을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 일이 힘든 건 알겠지만 부모님에게 함부로 구는 경향이 있다. 후회할 일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잘 모르겠다. 내가 얘기해봤자 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동생이라는 이유로 나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사실 부모님한테도 그러는데 나한테 잘해줄 거란 생각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바라지도 않고. 단지, 걱정이 된다. 죽고 난 다음에 후회하는 건 남아 있는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후회라는 걸 말이다.


손홍규 교수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를 어제 읽었다. 첫 번째 이야기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청년은 모친상을 치룬다. 불한당들은 청년에게 어떠한 위로도 하지 못한다. 청년이 후회하고 슬퍼하는 이유는 자신이 엄마에게 잘 대하지 못했음에 대한 슬픔이자 후회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물론 나 또한 사람이 괜찮지는 않다. 나라고 뭐 다를까. 단지, 그냥 노파심이 들 뿐이다. 화를 삭혀야 하는데. 오래 가는 건 불이 아니라 물인데.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걸 형은 모르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읽은 단편소설이었다. 사실 손홍규 교수의 수업을 들을 때도 별 관심이 없었다.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 것도 그런 소설을 썼다는 것도 말이다. 우리가 관심 가진 건 이슈였다. 성그루밍이었나, 뭐가 2018년에 터졌었다.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과 관련된 일화였는데


서울에 도착하면 9시가 될 거다. 자취방에 도착하면 10시가 덜 되었을 것이고. 내일도 연휴일 것이고 도서관은 닫아 있을 텐데 뭘 해야 할까. 사실 해야할 과제를 하면 되는 건데, 이젠 추석이라고 가게가 문을 닫는다거나 하질 않는 것 같다. 그냥 긴 연휴 같다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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