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3)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마침내 오래 회사를 이끌었던 회장님이 은퇴를 하고 지부장이 사장 자리에 올랐다.
사업 관리 경력은 풍부했으나 실전 경험이 전무했던 그였기에 현직 거래처 대다수 임원들의 심판대에 자연스럽게 올랐지만, 그는 당연히 잘 해내겠다는 굳세고 젊은 의지로 불타올랐고 사업의 대대적인 혁신을 감행하였다.
조직이 다양하게 개편을 했지만, 어차피 글로벌 본부에 보고를 하는 기획팀이라는 중요 부서가 변화할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보직과 관련한 변화에 크게 개의치 않았었지만, 또다시 내게 벼락같은 일이 찾아 들어왔다.
나와 같이 즐겁게 일했던 B팀장은 타 부서로 발령이 났고, 그토록 내가 벗어나고자 노력했었던 J가 다시 내 직속상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나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를 다시 같은 반에 넣어 주는 거라 마찬가지라며 격하게 항의했지만, 인사과에서는 그가 1년여간 타 부서를 전전하며 임원 승진 대상에서도 누락되었고, 반성을 많이 하여 자세를 낮추었으며, 이제 그런 일은 다시없을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지옥문이 다시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가 발령이 난 것은 2020년 4월 1일이었는데, 2주도 되지 않아 이미 내 몸과 마음은 다시 부서져 가고 있었다. 다시 아침에 신발을 신을 때마다 뾰족한 쇠창칼 밑에 발을 구겨 신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일전에 한 OTT채널의 드라마에서 배우 신민아 님이 우울증을 소재로 느끼는 감정을 에피소드로 다룬 적이 있었는데, 그 장면은 정말이지 뭐 하나 더 보태고 뺄 것도 없이 처참한 암흑 그 자체에 홀로 흩뿌려 내버려진 재 같은 내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발령이 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퍽이나 내게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작은 손짓, 미세한 미간의 주름 하나하나에도 온갖 말초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와 말할 때마다 점점 위축되어 더듬거리거나 아예 의견을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적어 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어쩌다 내가 의견을 조심스럽게 얘기하면 그는 몸을 앞으로 세우며 무슨 말을 하려다 다시금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아버리는 듯한 행동을 하였다. 매일같이 손에 쥐고 다니는 행주만 한 수건으로 연신 머리를 닦아내며 한숨을 쉰다던지, 내가 말하는 내내 연신 자신의 주먹을 계속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는 했다. 항상 손에 압력기를 쥐고 다니며 대화를 할 때마다 그 기구를 쥐락펴락했다. 그런 소소한 그의 행동 하나하나마다 나는 모든 의미를 부여하며 ‘아 그래,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터지겠구나. 언젠가는 올 것이 오겠구나.’ 시한폭탄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래, 차리리 올 거면 빨리 와라.
업무의 개편으로 내가 맡는 일은 넓어져 기획일에 광고일을 더하고 전시장 개발 관련 업무까지 포괄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제 나 대신에 나와 같이 일을 하던 다른 직원들을 돌아가며 하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광고 일을 하는 젊은 직원에게 굉장히 심하게 대했는데, 나는 그 직원과 J와 회의를 할 때면 그 직원이 당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나는 그 직원을 걱정했고 회의 때마다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도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참던 그는, 결국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다시 5월이 되고 중장기 계획 수립 시즌이 시작되었다. 5월 1일부터 일주일 간은 골든 위크 시즌으로 타국에서도 쉬는 날이 많았지만, 우리는 어린이날에도 휴일에도 나와서 8일에 있을 1차 중장기 계획 안을 작성했다. 일주일을 꼬박 고심하며 만들었기에 무난하게 지나가리라 내심 기대했었다.
2020년 5월 8일, 오후에 경영진에게 첫 보고가 시작되었다. 보고를 마치자 5분도 채 안되어 사장님과 경영진은 전면 재 보고를 명하였다.
나는 또다시 시작된 이 쳇바퀴 같은 지옥불 속에 이제 두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일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J와 지옥 같은 야근의 시간을 또 계속 함께해야 한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그를 6년이나 참아왔는데 무너져 내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 퇴근길에 온몸이 바스러진 갈대처럼 가누지를 못하고 휘청이며 울며 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길 나의 눈물이 바닷길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온 소매와 옷깃을 적셨다. J부장의 옅은 한숨과 한심하다는 날 선 눈빛, 그리고 그와 또 계속해야 할 끝도 없는 야근의 밤들을 생각하니 이제 내가 이대로 세상을 등져야만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중얼거리며 집에 들어가 남편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남편은 정말 화를 내며 이제는 정말 회사를 그만둬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긴 할 건데 지금 너무나 중대한 보고를 맡고 있어서 이것만 끝나면 정말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 날 집에 있는 처방받은 대량의 정신과 약들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무엇을 받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6개월 간 쌓여있던 약봉지 중 몇 개를 아무 거나 미친 듯이 입 속에 털어 넣고 침대에 누웠다.
우선은 자야 한다. 어떻게든 내일은 회사에 가서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지. 그리고 조금 쉬어야겠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나는 넋이 나간 좀비처럼 휘청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휘청거리고 막 쓰러지려는 나를 본 남편이 갑자기 무슨 소름이 끼쳤는지 냅다 쓰러지는 나를 잡고 침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오늘은 정말 중요한 보고 날이라 죽어도 회사에 가야 한다고 몸부림쳤지만 남편은 나를 강제로 방에 가두고 문을 잠근 뒤 회사에 전화를 해서 상태가 좋지 못해 회사에 가지 못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상태로 나는 정말 좀비가 되었다. 눈을 뜨면 앉았다가 약을 먹고 다시 잤다. 2주 동안이나 그 상태는 지속되었다. 남편은 아들에게 엄마가 몸살이 나서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말하며 방문을 닫아주고 아들을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우울증이 심하면 걷지 못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눈을 뜨면 그저 멍하니 침대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약을 챙겨 먹고 드러누워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2주 차에 접어드니 드디어 J부장이 전화를 했다.
“많이 아프다고 들었어요. 어쩌면 좋아요. 그러니까 건강 관리를 잘해야지.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해요. 그런데 이 일을 어쩌죠. 진짜 나 일이 너무 힘들어요. 죽을 것 같습니다. 잠깐만 나와서 일해 주면 안 되나요? 이것만 끝나면 내가 진짜 배팀장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줄게요. 내가 약속할게.”
그는 정말로 사정을 하다 못해 거의 내게 매달리며 울고 있었다.
이 사람, 뭘까.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는 걸 까. 모르고 싶은 걸 까. 모른 척하는 걸까.
드디어 내 쪽에서도 울며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부장님, 이건 정말 아니에요. 절대 저는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죄송합니다. 나갈 수 없어요. 정신 좀 들면 복귀할게요.”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는 회사로 복귀를 했고, 회사에서는 발령 기간이 아니지만 이례적으로 나를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주겠다며 원하는 부서를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가 없는 곳이면 딱히 어디라도 상관없지만 인사과로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생각지도 못한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은 현업과 관계가 있는 부서였는데, 그 영향은 J가 그 간의 나의 커리어를 세심하게 배려를 해 주고 면밀히 보살펴 준 덕에 현업과 지속이 가능한 부서로 발령을 내주었다는 것이 인사과의 설명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복도에서 지나가다 J를 마주치자, 그는 내게 다가와 특유의 멸시어린 약간의 비웃음을 띄며 말했다.
“그런데 배팀장, 그날 갑자기 회사에 못 나온 날 말이야. 배팀장 남편이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아주. 사람이 나를 그냥 잡아먹을 것 같더라니까? 무서워서 혼났지 뭐야.”
나는 그로부터 J와 한 사무실에서 마주치고 대화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3년 동안 다른 부서에서 나름대로 안정을 찾아가며 운동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작은 보고에도 크게 긴장을 하고 약을 먹던 습관도 1년 정도가 지나니 느슨해지고 동시통역 회의도 곧잘 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직에서 팀장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던 업무와는 다르게 루틴하고 하릴없이 흘러가는 일련의 업무에 그다지 만족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워라밸도 보장받고, 충분한 휴식도 주어졌지만 승승장구하며 날아오르려 할 때 날개가 부러져 버린 듯한 횡횡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옮긴 팀에 있던 나보다 어린 팀장도 말로는 내가 이제 팀장이 돼야 한다고 했지만 본인이 14년이나 있던 자리에 대해 내심 견제를 하는 것 같았고, 내가 원래 있던 자리에 비해 이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것 같아 솔직히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 같다는 기색도 감추지 않았다. 객관적으로도 그녀에게는 억울한 부분일 것 같았고, 실제로도 나는 사실 조금 자만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새로운 기획팀의 부장과 이전에 죽이 잘 맞은 B부장 둘이 전화가 왔다.
“배 팀장, 고문님하고 얘기 다 됐어. 우리 다시 이제 기획팀으로 복귀하자. 다시 이전처럼 열심히 해보자.”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신이 났다. 나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 신제품 런칭을 위한 아이디어가 꿈처럼 팡팡 솟아올랐다.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리지 시작했다.
“두 부장님, 걱정 마세요! 우리가 한 번 회사를 씹어 먹어봐요!!”
나는 아직 발령이 나지도 않았는데 이삿짐부터 싸고 인수인계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모두 그것이 이미 기정 사실화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막상 발령 당일이 되자, 나의 발령은 무산되었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받을 수 없었던 특혜, 바로 보직 변경 시즌 외에 특별히 부서 이동을 내가 이례적으로 받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번 발령에 대해서 사장님은 원래부터 한 번도 허가를 내준 적도 없고 들은 바도 없었으며 단지 두 부장과 고문님만의 의견이었기에 그로 인해 사장님의 심기가 불편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나는 한 번 아팠고 넘어졌던 사람이기에 아직 요직에 복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곳에서 그냥 안정을 찾으며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무려 18년 동안 뼈가 부서져라 조직에 헌신한 나라는 사람이, 개혁을 중시하는 사장에게는 한낱 일개 부속품으로 비쳤을 뿐이라고 느껴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적대적인 배신감, 타오르는 분노와 원망. J에게 내가 그렇게 모질게 당한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망가지기까지 나를 방관자처럼 내버려 두었으면서도 일말의 책임조차 느끼지 않고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사장과 회사에 환멸을 느꼈다.
일을 잘 하니까 배 팀장이 해. 배 팀장의 별명은 마타하리 배. 그 모든 것이 이용과 도구였을 뿐.
조직이란 그런 곳이지만. 알고 있지만...
회사는 내게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직원들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 연간 200만 원 상당의 의료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정책조차도 회사의 관리 구조에 기인한 문제를 개개인의 자기 관리 부족으로 치부해 버리고 조직에서 책임지지 않으려는 회피의 연장책인 것만 같아 더욱 회사에 환멸을 느꼈다.
나는 그 길로 결국 5개월을 더 버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내 위의 어린 팀장은 내 사직서를 받자마자 처음에는 나를 엄청 원망을 하고 보류를 하고 시간을 갖자고 하더니, 본인이 급하여 빨리 조직을 재구축해야 한다며 내게 말도 없이 그 길로 바로 인사과에 송부했다.
주요 보직에 있을 때 세 번의 사직서를 내고도 그토록 반려를 받고 온 부서 직원을 통해 설득을 당했었는데, 이 번에는 단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퇴사 처리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차피 나갈 거 오래 있을 필요도 없으니 시간을 잘 조절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모든 것이 우스웠다. 우리 회사가 한국에 진출한 뒤 18여 년 간 내가 이곳에 속하여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울고 웃던 나날들이 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회사의 최후의 마마상(할머니)으로 마지막까지 회사 문을 닫고 나오겠다던 내 작고 소중한 꿈은 바스러졌다. 너무나 오래 함께 일해서 이제는 그냥 가족 같고 친구 같고 귀하고 애틋한 동료들과는 눈물도 많이 나누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계속 인생의 길에서 만날 거니까. 그리고 나는 회사에 그렇게 헌신을 했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 어떠한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미련은 정말 없고 후련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원망. 그것만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남아버렸다.
만약 내게 지금의 이런 일만 생기지 않았더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