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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운 Dec 18. 2023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라는 물음.

직장 내 괴롭힘 4) '성장과 정체, 행복과 불행의 롤러코스터’

재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말이 재활학교이지 그냥 병원에 가서 재활치료를 받는 것인데, 주 5일을 빠짐없이 출석하다 보니 나 스스로 학교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입사 후 지난 21년 8개월 간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고 조직에 소속되어 보지 않은 일이 없는데, 이제 막상 연말 정산을 처음으로 홀로 해 보자니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조차도 막막하다. 건강보험 가입 자격이 상실되어 누구 밑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조직 밖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길 잃은 바보 천치이다. 


마음속으로 계속 쉬고 싶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라도 드디어 ‘쉼’을 얻게 된 것이 다른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막연한 불행 속에도 이점은 찾아내면 있는 법이다.


이렇게 사람은 성장과 정체의 시간을 반복하게 되고, 인생의 행복과 불행한 순간도 롤러코스터처럼 계속되는 것인데, 18년 간 다녔던 직장을 퇴사한 그때의 나는 내가 이미 경험한 것으로 충분한 성장의 고점에 도달했으며, 그때 느꼈던 영혼의 자유로움이 영원히 계속될 줄만 알았다.


나는 회사를 퇴직하고 한 동안 매일 같이 마라톤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그야말로 완벽한 소위 ‘인싸’의 삶을 살았다.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실컷 만나고, 제주도 한 달 살기, 미국 여행하기 등 가고 싶었던 곳도 다 가보고, 보고 싶었던 전시와 공연도 실컷 보았다. 전 직장의 퇴근 후 소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하였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나를 부러워하며 내 얼굴에 활기가 돋고 훨씬 표정도 풍부해졌으며 보기 참 좋다고 하였다.

나는 결혼 후에도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똑같은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남편에게 매달 30만 원의 용돈과 생활비를 받으며 생활해 왔지만, 퇴사와 동시에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선언했고 그동안 쓰지 못하고 모아두었던 나의 자금과 퇴직금을 털어하고 싶은 것을 모두 누리며 매일같이 신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내게 그 모종의 ‘트라우마’라는 것쯤은 한 치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배운이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라고 내 인생의 고난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18년 간 애정과 내 모든 것을 듬뿍 쏟은 회사에 제대로 끝인사도 하지 않은 채 홀연하게 반차를 내고 떠나온 나는, 회사 출구를 통과하자마자 하늘에 두 팔을 벌리고 만세를 불렀다.


내가 퇴사 인사를 위해 쓰고 나 온 세 통의 이메일은, 회사 전체를 흔들어 놓았고, 많은 후배와 동료들에게 연 이은 인사와 감사 연락이 쏟아졌다.

그중 한 통의 메일은 내가 18년을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며 불공정한 처사로 직원의 노력과 성과를 일개 부품의 기능으로 취급해 버리는 현직 사장의 마인드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었고, 또 한 통은 직장 내 괴롭힘 속에서도 내 업무에 도움을 많이 주었던 고문님에게 감사를 전함과 동시에 나를 괴롭혔던 J에 대한 고발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통은 회사 내외에 멀리 퍼져 있는 현 사장의 비리에 대하여 현직 글로벌 윤리위원회 소속이자 우리의 주재원이었던 외국인 경영진에게 윤리적인 내부 고발을 한 것이었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내가 직원들이 잡아 놓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자마자, 그것을 읽은 사장은 얼굴이 붉어진 채 자리를 황급히 떴다 했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 오늘 연차를 앞다투어 내려한다는 농담 섞인 문자를 보냈다. 

그 후 며칠 동안 이전 퇴사자들과 동료들의 인사와 선물 공세가 이어졌다. 내 메일들은 서로 간의 채팅 등을 통해 여기저기 이미 다 흩뿌려진 모양이었다.


‘배운 팀장님, 얘기 전해 들었어요. 제가 퇴사하며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대신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속이 다 후련해요.’


‘누나, 역시 누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멋지고 정의로운 사람이야. 언제나 잘 될 거야 그렇게 믿어.’


나의 영향 탓이 일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 몇 달 동안 직원들의 잇따른 퇴사가 이어졌다. 최소한 5~6명의 나와 같이 일한 동료들이 줄줄이 퇴사를 했다.

나의 퇴사일은 소위 ‘난 년의 난’이라는 용어로 오랫동안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안주처럼 오고 갔다.


어떠한 정의와 사명감을 가지고 한 일은 아니었고, 내가 한 일이 그들의 인생에 무슨 영향을 끼쳤다고도 감히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스스로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나는 옳은 일을 해냈으며, 언젠가는 그들이 자신이 잘못한 일들로 인해 응당한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일종의 후련함과 작은 승리에 대한 만족감을 잠시나마 준 일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직전 회사에 더 이상의 애증도 없어 이제 아무 미련 없이 훌훌 털고 덮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나는 나의 새 인생을 살아야지. 실제로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전 14화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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