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깐이의 책 읽기
인어공주줄거리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바다 왕의 막내딸인 인어가 인간 왕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 이야기이다. 폭풍 속에서 왕자를 구한 인어는 인간 세계를 동경하며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인어는 바다 마녀와의 거래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는 대신 다리를 얻지만, 인간의 다리는 걸을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준다. 왕자가 다른 공주와 결혼하면 인어는 거품이 되어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인어는 언니들이 건네준 단검으로 왕자를 죽이면 살 수 있었지만, 사랑 때문에 그를 해치지 못하고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녀는 거품이 되지만, 선한 선택으로 공기의 정령이 되어 영혼을 얻을 희망을 갖게 된다.
“엄마! 왕자님 구해준 건 인어공주인데, 이웃 나라 공주가 구해줬다고 거짓말해요.”
“그러게, 구해준 건 인어공주인데….”
아이 눈에도 인어공주가 억울해 보였나 보다.
“그런데 인어공주는 왜 말을 안 해요?”
“왕자를 만나기 위해 다리를 얻었지만, 목소리를 마녀에게 줬잖아.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말 못 하는 인어공주가 답답했나 보다.
“엄마, 인어공주 나쁘다.”
“왜?”
“왕자를 죽이려고 해.”
“뒷장을 읽어보면, 왕자를 죽이지 못해서 물거품이 된단다.”
“이 동화 너무 슬프잖아.” 아이는 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는 마지막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찌깐이는 행복한 왕자를 읽을 때도 슬퍼했다. 감정이 예민한 아이인 것 같다. 같이 책을 읽고, 감정을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다니, 벌써 5살이구나.
백설공주 줄거리
「백설공주」는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계모 왕비의 질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왕비는 마법의 거울로부터 백설공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공주를 죽이려 한다. 백설공주는 숲으로 도망쳐 일곱 난쟁이의 집에 숨어 살지만, 왕비는 변장해 여러 차례 공주를 해치려 한다. 결국 왕비가 건넨 독이 든 사과를 먹고 백설공주는 깊은 잠에 빠진다. 난쟁이들은 공주를 유리관에 안치하고 지키며 슬퍼한다. 훗날 한 왕자가 공주를 발견해 관을 옮기던 중 사과 조각이 목에서 빠져나오고, 백설공주는 깨어난다. 왕비는 자신의 악행으로 벌을 받고, 백설공주는 왕자와 함께 행복한 삶을 시작한다.
“엄마! 백설 공주의 아빠는 어딨어요?”
찌깐이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백설 공주의 아빠는 왕인데, 새엄마가 백설 공주를 괴롭히는 동안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동화가 끝날 때까지.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많이 읽었지만 단 한 번도 아빠의 부재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왕이 없어야 재미있는 동화지만 말이다.
“엄마도 아빠가 어딨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새엄마가 마녀였기 때문에 아빠를 마법을 걸어서 바보로 만들어버린 거 아닐까?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고 백설 공주를 도와주지 못했나 봐.”
갑자기 든 생각을 말해주었다.
라푼젤 줄거리
「라푼젤」은 마법의 상추를 훔친 대가로 아이를 빼앗긴 부부의 딸 이야기이다. 마녀는 아이에게 라푼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상과 단절된 높은 탑에 가두어 키운다. 라푼젤은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마녀가 탑에 오르내리게 한다. 어느 날 노래를 듣고 탑을 알게 된 왕자는 라푼젤과 사랑에 빠지지만, 이를 알게 된 마녀는 라푼젤을 먼 사막으로 보내고 왕자의 눈을 멀게 한다. 방황하던 왕자는 결국 라푼젤과 재회하고, 그녀의 눈물로 시력을 되찾는다. 두 사람은 고난을 극복하고 함께 행복한 삶을 시작한다.
“엄마! 마녀가 올 때마다 라푼젤이 긴 머리카락을 내려주잖아. 그럼 처음에 라푼젤이랑 마녀가 성에 올라갈 때는 어떻게 올라갔어요?”
아…. 이 또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다. 동화에서는 마녀가 라푼젤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높은 성에 가둔다. 그리고 마녀가 라푼젤을 보러 갈 때마다 “라푼젤! 라푼젤! 머리카락을 내려다오”라고 한다.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을 내리면 마녀는 그 머리카락을 잡고 올라간다. 그런데 처음에 아기인 라푼젤을 데리고 마녀가 성에 가둘 때 어떻게 올라갔냐는 것이다.
“음. 마녀니까 처음엔 마법을 써서 올라갔겠지.”라고 말했다. 아이의 궁금증이 해결되었을까? 내 대답이 뭔가 부족하게 느꼈다. 내가 꼭 답을 줄 필요는 없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처음에 라푼젤과 마녀는 어떻게 올라갔을까?”이렇게 물어봤으면 아이의 상상력을 더 확장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뭔가 질문이 오면 충실히 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나 보다. 다음엔 되물어줘야겠다.
얼마 후,
티니핑 장난감을 열심히 가지고 놀던 아이를 보았는데, 티니핑 모형 눈을 다 아크릴 마커펜으로 칠해버린 것이다. 나는 잘 지워지지 않는 펜이라 순간 당황했다. 또 ‘왜 눈을 저렇게 다 칠 했을까?’
찌깐이 심경에 큰 문제가 생겼을까 싶어 무서웠다. 놀란 감정을 진정하고 물어보았다.
“왜 눈이 안 보이게 다 칠해버린 거야?”
“라푼젤에서 왕자가 눈이 안 보였잖아요.”
머릿속에서 동화를 재연했나 보다. 라푼젤은 생각도 못 하고 티니핑 모형들을 다 시각장애인으로 만들어서 정말 놀랐다. 찌깐이 머릿속에서 재미있게 동화가 펼쳐지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계속 그런 모습으로 있을 수 없어서 알코올로 닦아보았다. 다행스럽게 지워졌다.
아이는 마커펜은 알코올로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후 모든 티니핑들을 손수 알코올로 지웠다. 나중에는 알코올 짜는 게 재미있었는지 작은 모형 얼굴을 닦는데 10번은 더 알코올을 짜서 썼다. 코로나19 때 사둔 손소독제 알코올이 처박혀 있다가 이렇게 잘 쓰일지 그때는 몰랐다.
또 다른 날,
나는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도 못 가서 병이 났다. 몸살감기가로 온몸이 다 아팠다. 그런데 찌깐이는 토요일에 평일처럼 7시에 기상했다. 남편은 출근하고 없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나는 방에서 기어 나오다시피 해서 거실 소파에 다시 누워버렸다.
"엄마가 오늘 너무 아프다."
아이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엄마 돌아가시는 거 아니죠?"
돌아가신다는 말은 어디서 들었을까? 그 와중에 생각이 떠올랐다.
'맞다. 백설공주 엄마도 돌아가셨고, 신데렐라의 엄마도 돌아가셨구나. 동화에 그 단어가 나왔구나.'
아파서 눈이 떠지지도 않았지만, 웃음이 났다.
"찌깐아. 걱정하지마. 엄마는 감기에 걸렸을 뿐이야.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야."
아이는 안심한 듯 조용히 곁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