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oem1

흔적마저 지운다

by lee nam

바람이 잠시 멈춘 자리,

돌 틈에서 들꽃 하나

아무도 모르게 피어난다.

햇빛의 손길을 조용히 받아

온몸에 하늘을 담는다.


발끝에 고인 물방울은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땅에 스며들어

새로운 뿌리를 적시고,

기억은 다시 흙이 된다.


들꽃은 빛을 모두 마시고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름도 없이, 흔적도 없이

그 자리에 스며들어,

다음 생명을 품는다.


시간은 오고 가는 바람일 뿐.

돌 틈의 그 자리에는

언젠가 또 다른 꽃이 피어나고,

들꽃은 묻는다.

남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들꽃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