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뒤표지의 카피를 즐긴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의 사유가 응축된 곳이 책 뒤표지다. 손바닥 크기 작은 공간엔 독자들에게 책을 알리려는 편집자들의 진력과 헌신이 오롯하다.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이란 번역서가 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다. 지금은 절판이라 확인하기 어려운 책의 뒤표지에는 빛나는 카피가 등장한다. 원서의 카피인지, 한국 편집자의 혜안인지 모르겠다.
.. 최대한의 삶이 최선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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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2차 대전 전후의 파리 지식인, 예술인들이다. 생각나는 대로만 얘기하면, 사르트르, 카뮈, 보부아르, 베케트……. 그들은 전쟁 전의 어수선함, 전쟁 중의 공포, 전쟁 후의 폐허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어진 일상을 유린이라도 하듯, 탕진한다. 그들의 삶을 묘사하는 한마디가 ‘최대한의 삶이 최선의 삶이다’란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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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엔 ‘밀운불우’란 메시지가 등장한다. 신문의 정치면에 가끔 등장하는 말이다. 구름이 빡빡한데(밀운), 비는 오지 않는다(불우). 풀리지 않는 정국을 묘사할 때 주로 쓰인다.
‘불우’에 관해서라면, 개의치 않으려 한다.
그때 뻑뻑한 먹구름으로 인한 암흑이 빛나는 칠흑으로 변신한다. 아직은 성근 수증기의 집적에, 쏟을 수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를 투여하는 거다. 그렇게 최대한의 삶을 사는 동안, 성근 구름은 밀운으로 변하고, 광채를 내뿜는 칠흑의 장관이 탄생한다.
비가 오고 말고는 나중의 일이다.
최대한의 삶은, 그것만으로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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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카뮈는 실존주의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에서 우주의 무관심과 정신적 결투를 벌인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영문도 모르고 나는 세상에 던져져 있다. 그런 세상이 나에게 우호적일 리 없다.
왜 살아야지?
그때 시지프가 등장한다. 신에게 반항하다 천형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거대한 산 위로 바위를 밀고 올라가야 한다. 올릴 때마다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밀고 올라간다. 시지프의 ‘저주받은 노동’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왜 살아야지?
그때 시지프의 온몸 근육이 팽팽해지고, 눈빛에 생기가 돈다.
최대한의 삶이 최선의 삶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단 말도, 최대한의 삶을 최선의 삶으로 알던 사르트르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