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물로 쓴 어버이날 편지

-태어나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날-

by 올제


< 요양원에서 어버이날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이었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요양원의 직원들은 헌신적이고 봉사심이 깊었다. 그들은 어버이날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정성껏 준비해 나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문득 내가 꿈꾸던 학교조직의 모습이 떠올랐다.


청렴하고 비전을 가진 리더가 방향을 제시하고,

그 리더를 믿고 따르는 헌신적인 구성원들,
관리자와 구성원이 한 마음으로 일하는 곳,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이상적인 공동체였다.


나는 학교를 일찍 명예퇴직한 것에 잠시 미련이 스며든다. 그런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날 원장님의 인사말씀이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세기를 살아오신 어머니 세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고단하고 불행한 시대를 살아오셨습니다.
노년에도 제대로 된 취미생활 한 번 누려보지 못한 삶이었습니다. 이제라도 이곳에서, 여가생활을 즐기며 마지막까지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곳 직원들의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종교적 신념 때문일까?

관리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일까?
아니면

본래 타고난 봉사의 마음 때문일까?
궁금했다.


< 마침내 나의 편지 낭독 시간이 되었다. >


100여 명의 어르신들과 40여 명의 직원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며 편지 낭독을 지켜보았다.


그 눈빛들 속에서 나는 멈춰 섰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편지를 읽는 도중, 나는 지금껏 흘린 눈물 중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무려 5분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4일 전 치른 아들의 결혼식에서도 감정에 휩쓸릴까 봐, 여러 번 원고를 읽고 리허설까지 하며 단단히 준비했던 나였다.
그날은 감정이 무뎌질 정도로 다듬고 다듬었다.

하지만 어머니께 드리는 이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
여러 번 읽지 않았다. 감정을 다스리지 않고 무방비로 마음을 편하게 원고를 읽으려고 했던 게 실수였다.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고, 그것이 나를 무너뜨렸다.

알고 보니 140여 명의 할머니와 직원들을 뿐만 아니라 강당에 모이지 못한 100여 명의 다른 어머니들과 직원들도 고스란히 내가 울면서 편지 낭독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버이날 행사에 감동적으로 편지를 읽어서 요양원에 계시는 많은 어머니들을 훈훈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는데 어버이날 행사를 망치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난청 인 데다가 치매가 조금 있으신 어머니는 내가 왜 그날 앞에 가서 편지를 읽는 지도, 그리고 왜 그렇게 5분 동안 울적이면서 탁자에 앉아 있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표정이다.


왜 그렇게 감정에 북받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 싫었지만,
결국 보내야만 했던 그날의 힘들었던 마음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 아파트에 혼자 생활하며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매일 CCTV 화면을 들여다보며 힘겨워했던 내 마음이 그 순간 한꺼번에 밀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머니를 따뜻하게 돌봐주시는
요양원의 보호사님들에 대한 깊은 감사가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산청복음전문요양원은 단순한 보호시설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르신들의 스승이었고 노후를 함께하는 반려자였고 멘토였다.


그곳은 ‘삶’을 가르치는 교육의 공간이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표지 사진 설명 : 이번 주에는 결혼식 때문에 아내가 울었고 어머니 편지 때문에 내가 울었다


아내는 말한다.

은퇴하고 감정이 무뎌진 상황 속에 이렇게 눈물을 원 것 흘릴 수 있을 만큼 카타르시스를 느껴 본 것이 오히려 참 좋았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태어나던 날 큰 울음을 선물하여 주셨고,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돌아가시는 날 나에게 큰 울음을 선물하여 주셨다.


나는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려 본 것 같다.


keyword
이전 14화"이 마음 다시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