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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 다시 여기에"

- 어머니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다. -

by 올제

매주 일요일에 어머니를 면회하기 위해 요양원에 다녀온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고 나서는 건강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았다. 협착증, 고혈압, 뇌경색, 치매까지 안정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다. 노인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질병이긴 해도 주변에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어르신도 많다. 나의 어머니 건강이 좋으시다면 얼마나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지만 나 역시 20년 후에 그렇게 건강한 노인으로 살 자신이 없다.

요양원에서의 생활이 집만큼 편할 수는 없겠지만 적적하지 않고 관리해 주는 요양사가 함께 계시니 잘 견디고 계신다. 5년은 더 사실 수 있다고 기대해 본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 것만은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다. 만일 10년이란 세월이 흐른다면 나에게도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할 시간이다.


“설마 나보다 더 오래 사시진 않겠지!”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잘 보내드리고 내가 가는 것이 순리(順理)이고 자식 된 도리(道理)이다.


어머니의 참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진로교사 시절 학생 상담하는 기억을 떠올라 프리즘카드를 가지고 갔다.


프리즘카드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해 주는 그림카드이다. 평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 프리즘카드는 아주 유용하다.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이 그림 카드로 상담을 해보면 많은 학생들이 거친 바위 절벽을 혼자서 올라가는 그림카드를 고르곤 하였다. 우리나라 많은 청소년들은 '나 혼자 힘들고 거친 차가운 바위벽을 올라가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심리 상황에 처한 학생들이라면 부모의 따뜻한 관심이 꼭 필요하다.


< 힘든 현실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한 프리즘 카드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마인더라면 도전과 성취라는 의미로 이 카드를 고를 수도 있다. >


난청이라 잘 못 들으시는 어머니께 큰 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어머니 많은 사진 속에 어머니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사진이 어떤 것이에요?”

한참을 고르시더니 “나는 잘 모르겠다.” 하신다.


그래도 나는 계속 다그쳤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한 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아마 가까이 있는 사진 중 하나를 그냥 잡으신 것 같다. 누군가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왜 이 사진을 고르셨어요” 하고 물으니

“예쁘게 사진 찍고 싶어서"라고 하신다. 물론 어머나께서 사진을 찍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찍히고 싶다는 표현이시다. 그래서 나는 판단했다. 이 사진이 주는 의미는 일단은 긍정적인 신호이고 사진을 찍히고 싶다는 마음은 밝은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내 얼굴이 추하거나 내 삶이 고달프고 괴롭다면 사진 찍히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요양원에는 잘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예전처럼 멀리 사는 아들과 딸과 영상통화하고 노래 가사 낭송을 해본다.


오늘은 ‘이 마음 여기에’라는 노사연의 노래이다. 노랫말이 서글프고도 아름답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래서 아름답다고 했다. 어머니가 세상과 작별하는 날 나는 서럽게 울지 않고 살아계시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어본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이 마음 여기에'를 들으면서 어머니를 추모해보고자 한다.


< 프리즘카드를 찾아보고 계신다. 많은 사진들 중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나타내는 프리즘 카드는 오른쪽이었다. >


이 마음 다시 여기에 (노사연)


못내 아쉬운 이별이

어느새 그리움 되어


설레이는 더운 가슴으로

헤매어도 바람일 뿐


끝내 못 잊을 그날이

지금 또다시 눈앞에


글썽이는 흐린 두 눈으로

둘러봐도 하늘일 뿐


아 나의 사랑은

때로는 아주 먼 곳에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에

던져버리고 싶을 뿐


하지만 차츰 멀어진

그리운 우리의 사랑


대답이 없는 너의 뒷모습

이 마음 다시 여기에

< '이 마음 다시 여기에'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

노사연 - 이 마음 다시 여기에


어머니세대는 지독한 가난 속에 오로지 자식 하나만 보고 한평생 희생하고 헌신하고 살아오셨다. 내가 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해야 하는 이유이다. 넉넉지 않은 연금이지만, 불편한 요양원이지만, 어머니의 노후를 끝까지 함께하고 책임지고 싶다.


어머니란 위치는 평생 자식을 위해 단순히 의무감으로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의 웃음, 성공, 그리고 행복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으며 자신의 몫을 스스로 기꺼이 내려놓는 사랑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희생은 부모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부모는 자신의 청춘과 여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자녀에게 헌신한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옷을 입혀주고는 정작 자신은 얇은 외투 하나로 버티는 어머니의 모습, 지친 몸으로 밤늦게까지 일을 마치고도 자녀의 학비를 위해 기꺼이 힘을 내는 아버지의 모습은 희생의 생생한 증거이다.


표지사진 설명: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일출보다 일몰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날씨가 추울수록 바람이 차가울수록 겨울 일몰은 더 아름답다. 자전거를 타고 일몰을 바라보기 위해 나섰다.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일몰은 아름다웠다. 석양에 물든 아름다운 이 마음 내가 사는 세상도 아름다운 이 마음 물들면 좋으련만...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 쉼보르스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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