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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쿠예 오야신”

아버지가 보낸 편지

by 올제


< 2025년 을사년 (乙巳年) 새해 아침에 아버지가 보낸 편지 >


벌써 내가 여기에 자리 잡은 지 8년이 넘었구나~

한참 무덥던 2016년 7월 25일 모든 가족의 전송을 받으며 경치 좋고 공기가 좋은 이 자리에서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엊그제 아들이 와서 나의 묘비에 장미꽃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유화물감으로 정성스럽게 한 붓 한 붓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와서 아들의 집에 가훈(家訓)이라고 화(和), 근(勤), 검(儉), 독(讀) 네 글자를 보여주고 알려주어서 기쁜 마음으로 잘 읽어보았다.


비록 몸은 이곳에서 움직일 수 없어도 하늘에서 아들과 손자손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잘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가 외롭지 않게 자주 요양원에 찾아 주어서 고맙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네가 하는구나 ~


북미 원주민 사이에는 ‘미타쿠예 오야신’이라는 인사말이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생명은 땅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형제이고 자연은 다음 세대와 나눠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총을 입어 이 세상에 태어나서 79년 동안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듯이 너도 너의 인생 알차게 잘살고 있으니 참 흐뭇하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기 1년 전에 함께 어머니와 3명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노쇠해져 허약한 신체 그리고 인생에 대한 허무한 감정과 고독한 감정으로 우울증이 심했던 나에게 제주도 여행은 활력을 되찾게 해 주었고 제주도 여행 이후 다시 우울증으로 다소 벗어나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의 9개월의 시간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평생 입원 한번 한 적 없던 내가 9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려니 답답하고 수술 후 통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무엇보다도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없다고 생각하니 그때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평생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인생은 너무 짧은 것 같다.


나의 인생 79년을 돌이켜보면 인생에는 곡선이 있는 것 같다. 태산처럼 높은 행운(幸運)이 따르는 때가 있었고 때론 절벽과 같은 절망(切望)의 시기도 있었다. 행운이 따르던 시절 자식들과 부인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지 못한 것에 아버지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식에 대한 교육과 관심은 어머니의 몫이라 여겼기에 챙기지 못한 것이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버지의 교훈을 반면교사(反面 敎司)로 삼아 손자, 손녀에게 항상 관심을 두기를 바란다.


어머니는 양반집 장녀로 무척 귀하게 자랐지만 나에게 시집을 와서 참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어머니가 무 툭툭하고 사교성이 없지만 누구보다도 희생정신이 강해 우리 집안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가 생활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매우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다. 그래도 장남인 큰 아들이 어머니 곁에 있어 마음이 든든해 하늘나라에서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부모에게서 받은 작은 세포에서 번식하고 성장하여 하나의 유기체에 불가한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물체란 유전자가 자기 복제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로봇과 마찬가지 존재이다”라고 했다. 네 몸의 진정한 주인은 네가 경험하고 머릿속에 정리한 너의 정신이다. 항상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루이세뇨족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대지가 네 말을 듣고 있고
하늘과 숲과 우거진 산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내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너는 온전한 어른이 될 것이다.


항상 하늘과 땅이 그리고 하늘에서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올바르게 살아라.


2025년 1월 1일 하늘나라에서 아버지가...


2024년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는 12월 27일 선친이 계신 산소를 다녀왔다. 아무 말씀도 없는 아버지의 묘비를 닦고 장미꽃문양을 그려면서 아버지와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아버지가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계실까? 만일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면 나에게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신 것일까? 혼자 2시간 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서 장미 무늬를 유화로 깨끗이 그려놓고 돌아왔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애교 많은 아들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스럽고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더 헤아렸어야 했는데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아버지 생각이 자꾸 납니다. 을사년 한해에도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 "


무안 비행기 사고로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시

딜런 토마스 < 순수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인이여, 날이 저물어감에 화 내고 몸부림쳐야 하오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


지혜로운 자들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어둠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의 말로는 번개 하나 가를 수 없으니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선한 자들은 마지막 파도가 지난 후에서야

덧없는 행실들이 푸른 바닷가 위에서 빛났음을 한탄하니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


하늘 높이 떠 있는 해를 붙잡고 노래하던 거친자들은

저물어 가는 해를 늦게 깨닫고 슬퍼하오니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죽음의 문턱에서 엄숙해진 이들의 눈으로도

그 멀어버린 눈도 유성처럼 불타고 명랑할 수 있음을 깨닫고

빛이 사라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


그리고 그대, 슬픔의 단 위에 선 나의 아버지여

당신의 성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길 내가 기도하오니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빛이 사라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


-1951년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 딜런 토마스-


표지사진 설명: 중세 사람들이 생각하던 지구를 둘러싼 천국의 개념이다. 중세 사람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형성되어져 있고 천국도 지구 주변의 하늘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출처 위키 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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