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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a Oct 21. 2024

피할 수 없는 운명

무당의 관문인 신병을 앓다

프롤로그의 꿈을 꾼 이후 나는 몸도 마음도 점점 더 나빠졌다. 정말 힘든 점은 아파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작년에 고열로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었다. 고막 체온계로 쟀을 때 39도에서 40도까지 열이 올랐는데 원인불명이었다. 검사를 아무리 긁어도 모든 결과가 정상이었다. 백혈구 수치도 정상, 하다못해 염증 수치도 정상이라 의사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코로나, 독감일 수 있으니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검사를 했더니 음성이었다. 이것도 아직 초기단계라 결과가 음성으로 뜰 수 있다고 해서 며칠 있다가 다시 재검사를 했지만 역시 음성이었다. 비싼 검사를 외주로 맡겨가며 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원인을 모르면, 대증요법 밖에 할 수 없다. 원인을 모르니 근본적인 치료는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고열이 나니 해열제만 정맥주사로 맞았다. 그런데 열이 내리는 것도 딱, 그 해열제를 맞는 동안에만 내렸다. 해열제 수액을 다 맞고 나면 다시 열이 올랐다.


곤란한 점은, 해열제를 맞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 약도 독성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 투여 가능한 횟수가 있기 때문이다. 낮에 열이 38도까지 올라서 간호사에게 해열제를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곤란한 듯 대답했다.


"해열제가 하루 3번까지라서요. 지금 견딜만하면 참고 밤에 열이 날 때 맞고 잠을 편하게 자는 게 낫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니 열 때문에 괴로워서 밤에 잠을 못 잤다. 지금 좀 참고 밤에 편히 자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겠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공황장애에 불안장애, 우울증 등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지쳐갔다.

그래도 내가 아픈 것은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텼다. 그래서일까. 내 주변 사람들이 다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생이었다. 중국에 출장을 갔을 때 꿈을 꿨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친할머니를 데려가려는 꿈. 친할머니가 순순히 따라가시기에 내가 친할머니 손을 낚아챘다. 그리곤 외할머니와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려고 섰다. 그곳엔 동생들도 있었는데 남은 한 손에 남동생 손을 잡았고 여동생 손은 잡지 못했다. 내 손은 친할머니와 남동생 손을 잡고 있어서 손이 모자랐으니까. 여동생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빨리 내 옆에 바짝 붙으라고. 여동생은 시무룩해지더니 천천히 내 곁으로 걸어오는데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도 너무나 생생한 꿈에 너무 불안했다. 바로 친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친할머니는 전화를 받으셨고 아무 일 없다고 하셨다. 다음은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동생도 전화를 받았고 아무 일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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