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ia Nov 11. 2024

삼산맞이 1일 차

조상님들의 한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꿈에서도 생시에도 계속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친가 쪽 조상님들이 후손들 욕을 하시는 소리 때문이었다. 나도 몰랐는데 친가 쪽 조상님들이 예전에는 잘 사셨는데 어느새 후손들이 나쁜 짓도 많이 하고 부정도 많이 타서 불만이신 듯했다. 나쁜 짓이란 범죄나 이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고 이용하고 돈만 밝히며 살았던 것을 말하는 것이고, 부정을 탔다는 것은 산에서 베면 안 되는 나무를 베고 먹어선 안 되는 산짐승을 잡아먹고 그런 것들을 해서 부정을 탄 것이었다. 이런 행동들 때문에 지금 친가에서 제사를 지내도 그걸 조상님들이 받으실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장 내가 아는 것만 하더라도 큰할아버지의 경우 장남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재산은 전부 자기가 가져갔으면서 전쟁과 군대는 막내 동생에게 자기 몫까지 다녀오라고 시켰으니. 자기는 장남이라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군에 다녀오신 분이 나의 친할아버지다.


친가 쪽 사람들은 정말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유별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란 탓인지 돈에 대한 집착이 어마어마했고,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타고 다니는 차는 중요하지만 내가 공부하는 것에는 지원이 없었다. 하지만 성적표에는 집착이 심했다.


거기다 극단적으로 가부장적인 태도로 여자는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딸이라는 이유로 출가외인 취급당하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온 집안의 집안일을 내가 전부 해내야 했다. 어차피 시집가면 다 해야 할 일이라며 지금 배운다고 생각하라며 나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차라리 가정부나 식모가 나았다. 그들은 돈이라도 받고 집안일을 했으니. 나는 고등학생 때 생필품인 옷조차 제대로 사서 입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얻어 입고 다녔다.


이런 사람답지도 않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들, 그 정성이 조상님들께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대해 신어머니께 말씀드리니 나중에 내가 조상님들도 다 풀어드리고 제대로 모셔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는 사이 기도터에 도착했다. 다들 체력이 약한 나를 배려해 주셔서 나는 잠시 쉴 수 있었고 신어머니는 음식을 준비하셨고 다른 분들도 분주히 음식상을 차리셨다. 쟁반을 5~6개 꺼내시고 쟁반마다 밥과 국수, 술과 과일, 전을 올려 푸짐하게 차리셨다.


해가 저물어 오후 8시쯤 되었을 무렵, 드디어 쟁반을 이고 지고 출발했다. 그곳에는 굿을 하거나 쉴 수 있는 15~20평 정도 되는 공간이 2~3개 정도 있었다. 그리고 산 입구에서부터 올라가며 서낭당과 장군당, 도깨비당, 산신당 등 각 신에게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기도 공간이 따로 있었다. 나와 신어머니는 쟁반을 들고 입구에서부터 음식을 올리고 인사를 드렸다.


제일 꼭대기에 산신당에 도착하자 신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께서 준비를 하고 계셨다. 우선 음식을 올리고 인사를 드리며 절을 했다. 그리곤 신할머니께서 이제 신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며 내게 방울을 쥐어주셨다. 뭐라도 보이거나 들리거나 느껴지면 즉시 말하라고 하셨다.


신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일단 눈을 감고 방울을 흔들었다. 옆에선 할아버지와 신어머니께서 징과 북을 치셨고 신할머니께서는 지켜보셨다. 이모는 신을 받는 내 영상 촬영을 하시면서 내가 하는 말을 받아 적을 준비를 하셨다.


열심히 방울을 흔들며 눈을 감고 집중을 하는데 조상님들이 너무 시끄러웠다. 결국 나는 눈을 뜨고 신할머니께 머릿속이 시끄러워 집중이 안된다고 말씀드렸다. 신할머니께서는 조곤조곤 말씀해 주셨다.


"조상님들 한이 많으신 것은 알겠는데 지금 이 자리는 신령님을 받는 자리야. 나중에 달래 드릴 테니 지금은 물러서시고 나중에 대접해 드릴 때 다시 오시라고 해. 그래도 안 되면 네가 조상님을 몸에 실어봐."


어쩔 수 없이 나는 일어서서 방울을 흔들며 눈을 감고 뛰었다. 내 몸에 영을 싣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뛰었다. 할아버지와 신어머니의 연주소리에 정신없이 뛰다 보니 순간 쿵! 하고 무서운 감각에 눈을 확 뜨며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무언가 내 몸에 들어온다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지금도 지기라는 것을 받지만 내 몸에 누군가 실리게 되면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 고통들을 나도 똑같이 느낀다. 거기다 나는 아직 이런 경험이 없고 어려서 내 생각과 실린 사람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게 정말 무섭더라.

신할머니께서 우는 나를 무서울 수 있다고 달래주시며 이제 다시 신령님을 받자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신령님들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뭔가 보여도 틀릴까 봐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럴 때마다 신할머니께선 귀신같이 알아차리셨다. 방금 뭐가 보였는지,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 옷은 어떤 옷을 입고 계셨는지, 손에는 뭘 들고 계셨는지, 표정은 어떠신지, 머리스타일은 어떤지 등등 아~주 세세한 것까지 물어보셨다. 난감했던 것은 또 있었다. 바로 그분이 누구신지 어디에서 오셨는지 직접 물어보라고 하셨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삼산맞이 첫 째날부터 쉽지가 않았다.

이전 04화 삼산맞이를 출발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