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깨달음의 길
신할머니께서는 자꾸 내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악기 소리에 맞춰 방울을 흔들거나 일월다리를 들고뛰며 눈을 감고 생각했다.
'지금 보이신 분은 누구세요? 가르쳐주세요! 제발!'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실망했다. 나는 뭔가 확 보이거나 느끼거나 들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신굿을 해주는 사람도 참 힘드시겠더라. 내가 신을 받을 때까지 옆에서 징과 북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오후 10시가 되었다. 이쯤 되니 질문을 바꾸셨다. 성별, 옷차림, 헤어스타일, 손에 들고 계신 것 등을 물어보셨다. 나는 눈을 꼭 감고 보이는 대로 말씀드렸다. 이게 머릿속에 이미지로 떠오르는 느낌으로 보였고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용이 보일 때는 용의 색깔까지도 물어보셨다.
자정이 지나 오전 12시 45분쯤, 내가 지친 기색이 역력하자 신할머니께서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하시며 내려가자고 하셨다. 내려가서 야식으로 양념치킨을 조금 먹고 곧바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잠결에 들은 빗소리가 컸다.
다음날 아침.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다. 내가 피곤할 것을 배려해 주셔서 굳이 깨우지 않으셨다. 주섬주섬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를 하고 왔다. 아침은 신어머니께서 멸치국수를 삶아주셨다. 잠시 산신당에 올라가 기도했지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이후 짐을 정리해서 내 본산으로 향했다. 본산은 내 고향에 있는 산을 말했다. 신할머니께서 고향에서 큰 산이 어디냐 물으셔서 말씀드렸고 내비게이션에 찍고 출발했다. 가는 동안 나는 역시 졸았다.
가는 길에 점심으로 다들 추어탕을 드셨고 나는 추어탕을 못 먹어서 달걀프라이를 밥과 함께 먹었다.
본산 기도터에 도착하니 보살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시설은 열악했지만 뜨거운 물은 잘 나왔다. 너무 뜨거워서 용암수인 줄 알았다.
거기 계신 보살님께서 산에 올라가기 전에 샤워하고 마지막에 소금물을 머리 위에 뿌리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여기 산신할아버지께서는 비린 것, 누린 것을 싫어하셨다. 그런데 여기 오기 전에 추어탕에 달걀을 먹었으니 소금물을 뿌려야 한다고 하셨다. 향을 피운 재를 물에 타고 소금까지 섞은 물을 머리에서부터 뿌렸다.
나중에 들었는데 내가 받은 할아버지 신은 엄청 까다롭다고 하셨다.
준비를 하고 오후에 해가 저물어갈 때쯤 출발했다. 길이 가파르고 험해서 너무 힘들었다. 역시 밑에서부터 올라가며 인사를 드리고 올라갔다.
제일 위에 산신당에 도착했고 역시 어제처럼 할아버지와 신어머니는 악기를 잡으시고 이모는 촬영 준비, 신할머니께서는 나를 지켜보셨다. 역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시무룩했다. 신할머니께서 오방기를 뽑으시더니 갑자기 심각해지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산신) 할아버지께서는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한다는 식이셔서 마음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솔직히 나는 좀 짜증이 났다. 여기서 더 이상 뭘 더 어떻게 마음을 정해야 할까. 여기서 대충 생각하면 안 된다. 책임감도 무거웠고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생각하다 결심을 굳히고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방울 잡고 뛰다가 앉아서 제발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울다 기도하다를 반복하니 정말 힘들었다.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할머니께서는 보이면 연락하라고 하시며 화장실에 가고 싶으시다고 내려가셨다. 신어머니와 나만 남았다. 앉아서 마음 잡고 기도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짜증이 났다. 이게 맞나? 나 사기당한 거 아닌가? 하도 답답해서 신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나는 결심하고 진심으로 기도하는데 왜 안 보여주시는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니 신어머니의 한 마디 대답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네가 뭔데?"
순간 말문이 막혀서 가만히 있자 이어서 말씀하셨다.
"네가 뭔데 네가 '오세요'하면 신에서 오셔야 하니?"
신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셨고 나는 정신 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기도하며 잘못했다고 빌었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는 순간 뭔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