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죄송하다고 빌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것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빌었다. 순간 통통하신 할아버지께서 빙긋 웃으시는 얼굴이 보였다.
신어머니께서 무언가 보이거나 느껴지면 바로 말하라고 하셨지만 그것도 잊어버린 채 할아버지 얼굴을 봤다. 신기하게도 할아버지 얼굴이 보인 그때 신어머니께서 뭐가 보이는지 물어보셨다.
나중에 생각이 나서 신어머니께 여쭤봤다. 어떻게 내게 뭔가가 보일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게 뭐가 보이는지 물어보셨는지 질문했다. 신어머니께선 웃으시며
"네가 보는 거 나도 보여."
라고 하셨다. 나중에 나도 제자를 내릴 때 알게 될 거라고 하셨다. 정말 신기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신을 받기 시작했는데 오방기를 양손에 잡고 나는 제자리 뛰기를 뛰었다. 눈을 감고 뛰며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열심히 받았다.
신할머니께서 이제 명패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보이는 신에게 명패를 알려달라고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명패를 받는 건 너무너무너무 어려웠다. 모습은 보이는데, 도통 명패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신할머니의 도움으로 글문 할아버지와 벼슬 할아버지 등 여러 명패도 받았다.
신할머니께서는 어제보다 훨씬 더 세세하게 물어보셨는데, 산신 할아버지를 봤다면 옆에 다른 건 없는지, 손에는 뭘 갖고 계신지 등등 물어보셨다. 옆에 호랑이가 보인다고 대답하면 호랑이 색깔은 무슨 색인지, 손에 지팡이를 들고 계신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다 물어보셨다. 그렇게 자정이 넘도록 뛰다 보니 나도 탈진 직전이 되었다. 신할머니께서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하시며 내려가자고 하셨다. 산을 내려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다. 가서 대강 샤워한 후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날도 역시 내가 가장 마지막에 일어났다. 부스스 일어나 세수하고 밖에 나가보니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밥을 먹으며 다들 어제 수고했다고 해주셨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산에 올라 인사를 드리며 기도를 올리는데, 신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신령님께서 신굿 하고 100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하셨단다. 그렇게 다음 기회를 약속하며 산을 내려와 마지막 일정인 부산 용궁을 향해 출발했다.
바닷가에 도착해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차리는데 뒤에 고양이가 다가왔다.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줄만한 음식은 없었다. 그렇게 고양이는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주었다.
역시 신을 받는데 용왕할아버지께서는 굉장히 인자하신 얼굴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힘들 땐 바닷가에 와서 울어도 된다고 하시며 나를 보듬어 주셨다. 정말 바다 같은 분이었다. 용궁 일정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나는 짐을 챙겨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2박 3일 동안의 일정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집으로 돌아간 뒤 며칠간 앓아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