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이는 왜 나만 미워할까?

반려견이 여자보다 남자를 더 무서워하는 이유

by 예일맨

[땅콩이를 소개합니다. 땅콩이는 아직 어린 애기푸들입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 관리가 잘 안 되어 있어서 피부가 많이 안 좋았던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으며 입양 후에도 관리가 필요한 아이입니다. 땅콩이는 처음에는 낯가림이 있으며 남자한테는 소심한 모습을 보이는 겁 많은 아이입니다. 하지만 간식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라 간식을 주면서 천천히 다가가면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애교쟁이 땅콩입니다!! 여자분들한테는 거리감 없이 애교쟁이입니다]


입양센터 홈페이지에 있는 땅콩이에 대한 소개 글입니다. 남자에게는 소심하고 여자에게는 거리감이 없는 애교쟁이라고 하는데 입양하여 집에 데리고 온 첫날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 땅콩이가 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땅콩이가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 발톱을 깎는다든지, 항문낭을 짠다든지 땅콩이가 싫어할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학교에 가는 아이와 출근하는 아내보다 저와 함께 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고 매 끼니를 챙겨주는 것도 저입니다. 그런데 땅콩이는 저보다는 아내와 아이를 바라봅니다.


지나가는 길에 제가 있으면 은근슬쩍 피해 돌아서 갑니다. 제가 다가가 예뻐해 주려고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슬슬 거리를 두며 제 손이 닿지 않는 곳이나 더 쉽게 도망갈 수 있는 곳으로 숨습니다. 서운했습니다. 첫날만 해도 저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피우던 녀석이 어제 싸운 사람처럼 내외를 하다니...


앞으로 함께 할 세월이 짧지 않은데 계속 이런 식으로 나를 피한다면, 반려견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같은 공간에서 그냥 같이 사는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서글퍼지기도 하고... 밥 줄 때만 신나게 다가오는 땅콩이에게 진심으로 섭섭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니 땅콩이에게 해줘야 하는 것도 늘어납니다. 발톱도 잘라줘야 하고, 목욕도 시켜야 하고, 이빨도 닦아줘야 하고, 항문낭도 짜야하고, 안 좋은 피부에 약도 뿌려야 하고, 귀 청소도 해야 하고, 동물병원에도 데려가야 하고... 그런데 현재 가족 들 중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은 저이고, 그래도 수의사라고.... 땅콩이 관리를 전적으로 제가 전담해야 합니다.


'가뜩이나 나를 피하는데... 더 하겠구먼... 땅콩이에게 사랑받기는 틀렸네' 인기관리는 포기하고 어차피 버린 몸 희생하기로 합니다. 다행히 귀 청소와 목욕, 양치는 그렇게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산책을 자주 하니 발톱은 굳이 자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몸에 약 뿌리는 것은 싫어합니다. '칙칙' 소리도 그렇고 몸에 닿는 차가운 느낌이 싫은가 봅니다. 평소에 안기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한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제가 스프레이 항생제를 들고 뭔가 준비를 하면 귀신같이 눈치를 챕니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붙들리고 맙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면 한껏 고개를 돌려 털고 나서 또 저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리고 아내나 아이한테 갑니다.


억울한 것이 있습니다. 땅콩이가 싫어하는 것을 주기적으로 하는 저를 피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땅콩이는 자꾸 베란다로 나가려고 하고, 배변 패드를 물어뜯어서 아내에게 혼이 나곤 하는데 혼날 때는 무서워하다가도 결코 아내를 피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잠깐 지나면 또 다가가서 애교를 부립니다.


'지난 5개월 동안 남자 주인에게 학대를 당했나?' 오해를 했습니다. 하지만, 반려견이 왜 여자보다 남자를 더 무서워하는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의사이자 반려동물 행동 전문가 설채현 님이 동아일보에 해당 내용에 대해 쓰신 칼럼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생후 12주 정도까지 개는 사회화 과정을 겪는데, 이때 "남성"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없는 경우, 또는 이 기간 동안 사회화가 잘 되지 못한 상태에서 의도치 않은 "남성"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하는 경우에는 남성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남성의 "다가오려는 듯한" 걸음걸이, "내게서 떨어지라고 경고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 예리한 관찰자인 개들이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남성의 선 굵은 외모와 수염, 그리고 남성 특유의 냄새는 반려견들에게 더 큰 두려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유를 알고 나니 땅콩이한테 가졌던 섭섭함이 풀어집니다. 예민하고 겁이 많은 땅콩이는 다른 개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더군다나 땅콩이는 아마도 사회화 과정을 온전히 겪지 못했을 것이니 남자 사람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고, 어쩌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는 목소리가 낮고 얼굴에 수염도 많은데 걱정입니다. (아내 말을 들어보면 냄새도 좀 나는 것 같습니다) 땅콩이랑 친해지려면 수염은 기르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샤워할 때 바디클렌져를 좀 더 써야겠네요. 걸음걸이는 좀 느긋하게 하면 될 것 같고... 아... 목소리가 가장 문제인데... 이 참에 노래 연습 겸 가성을 좀 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