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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Oct 31. 2024

오늘 수업

  

  오늘부터 수업을 하기로 했다. 수업을 받는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글쓰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몇몇 분들이 모였다. 현정원 작가님의 진행으로 2주마다 모이기로 했다. 오늘은 첫 시간이라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우리는 수필을 쓰게 될 거리는 설명을 들었다. 모임 장소가 '한경 도서관'인 지역사회의 도서관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오늘 참석하지 못한 한 분은 다음 시간에 참석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여섯 명이 모이게 되는데 오붓한 분위기의 수업이 예상되었다.

  작가님은 각자 써온 글을 합평의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기분 좋은 말보다 마음 상하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각자는 필요한 과정이며 나를 발전시키는 길임을 알고는 있다. 그러니 나머지는 본인 몫일 것이다. 모인 분들은 어떤 분야에서건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짧다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시간이 길다. 남아있는 시간을 현역처럼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다. 

  참석한 분들은 글을 써 본 적이 있네 없네 하며 서로 초자임을 강조했다. 아마도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수줍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살다 보면 반전이 생기는 일이 많다. 의외로 앓는 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 끝까지 가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살짝 불안하다. 어지간해서 앓는 소리를 하거나 힘들다 소리를 할 줄 모른다. 잘해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힘들어야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힘들다 소리를 하지 않으므로 상대방은 가끔 오해를 하거나 실망을 하기도 한다. 맡겨주는 일을 똑소리 나게 잘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서다. 이유도 모르고 상대방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오늘 모였던 자리에 어느 선생님이 내게 '잘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좋은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실망할 분이 또 계시는구나'라고 생각되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어린 나를 바라보며 가끔 한숨을 쉬셨다. 아버지는 '애고, 우리 딸을 어떻게 팔아먹을까. 떡반 같이 생겨서'라고 하실 때가 있었다. 그 표정이 워낙에 진지해서 나는 팔리지 않는 떡반 같이 생긴 얼굴인 줄 알고 자랐다. 떡반은 제주에서 제사나 명절에 떡을 올려놓는 둥그렇고 널따란 접시를 말한다. 그런 떡반 같은 얼굴을 들고 제사 명절이 되면 떡을 나르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학교 갈 때 만나게 되는 동네 어른이 '우리 맏며느리 학교 가는구나'라는 인사를 당연스럽게 듣게 되었다. 그러다 운이 좋게 지금의 남편이 사랑을 지불하고 나를 사서 아버지의 근심을 덜어드렸다.

  나이 사십을 앞두고서는 같이 동역하는 교회 청년들에게서 '소녀 같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사십이 넘으면서는 아줌마들 입에서 탤런트 '박정수 닮았어요'라고 하기도 했다. 어이가 없었다. 오십을 넘었더니 '고두심 닮았어요'한다. 부정하지 않았다. 강한 부정으로 '그렇다'라고 할 수도 없어서다. 확실히 말하지만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오십이 넘어서야 나는 떡반이 아닌 꽤 반반한 얼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눈이 하늘까지 닿았는지 끝내 반반하게 생긴 당신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가셨다.


   아버지에게 못 미치는 기대는 힘든 일을 내색할 줄 모르고, 아프다고 할 줄 모르고, 못하겠다, 안된다고 할 줄 모르면서 살아가게 만들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하니, 아파도 참아야 하고, 무조건 해야 했고, 안되면 되게 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쉽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때문이라고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찾아보면 많기 때문이다. 서점에 갈 수도 있고, 도서관을 이용하여 자기 계발 서적을 필독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에 있어 무심하고 게을렀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업은 내게 온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물론 발가 벗겨진 나를 누구에게 보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부끄럽고 창피스럽다. 그러나 맞춤 재단사에게 옷을 맡기려면 옷을 벗고 치수를 재야 한다. 제대로 지은 옷을 입고 가슴을 내밀어 당당한 걸음걸이로 밖을 향해 나와야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오래전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구절이 어쩌면 오늘 나를 향해 말하고자 함 인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습관을 새로이 얻기 위해  투쟁해야 얻어질 수 있는 길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고여있던 의식을 흔들어, 생각을 바꾸어야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가까이하며 글을 쓰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좋은 일이기는 하나 또한 포기하기도 쉬운 일일 수 있다. 의식을 붙들기 위해 신체의 단련도 필요할 것으로 여겨 운동도 시작해야 하겠다.   거실 구석에 자리 잡고 옷걸이로 사용되고 있는 실내 자전거를 꺼내 준비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오늘 수업을 시작으로 잠자던 나를 깨워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으로 변하게 할 거라 의심치 않으며, 반반한 얼굴을 의지하지 않게 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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