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토요일에 교회 여전도 회원들이 모였다. 모처럼 회원들 간의 교재를 위해서이다. 교회를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고 노력하는 회원들이다. 무리하며 걸을 수는 없고 서귀포 7코스 짧은 거리를 걸은 후에 점심을 먹고 쉬자고 했다.
서귀포항 새섬과 연결된 새연교를 지나 새섬 한 바퀴를 천천히 걸었다. 섬은 넓지 않아 걷기에 부담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곳에는 멀리 문섬이 보였고 좌우로 섶 섬, 멀리에는 범 섬이 보였다. 섬들은 가까이에서 혹은 멀리서 바라볼 때의 모습이 달랐다.
새 섬은 새연교라는 다리를 놓기 전에는 '가깝고도 먼 당신'이었다. 지척의 거리에 있어도 걸어서는 갈 수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관광 사업의 일환으로 예쁜 다리를 놓은 후에는 누구나 산책하며 걸을 수 있는 인기 코스가 되었다. 오래된 소나무, 보리수, 갈대 등이 어우러져 오붓한 분위기의 산책길로서 훌륭했다. 다리를 놓은 후부터는 가끔 서귀포에 올 때는 찾게 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어릴 때 찬구들과 근처에서 놀다가도 수영으로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면서도 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바다에서 보는 시거리는 실재의 거리와는 많이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잘못하면 수영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련한 기억에 바라만 보며 밟아보지 못했던 그 섬을 어른이 되어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기획을 생각한 누군가가 고마웠다. 걷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어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 초밥을 맛있게 먹었다.
정방폭포 입구에서 옛 기억을 더듬어 멀리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았다. 폭포는 바다와 근접하여 길고도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짙푸른 바다로 이어 저 멀리 수평선을 볼 수가 있다.
유년 시절 내 놀이터였다, 집에서도 가깝고 산책코스로도 좋은 곳임에 틀림없으나 폭포로 내려가는 덱 계단이 길고도 가파르게 놓였다. 요사이 무릎이 시원찮은 나는 계단이 무서워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입구에서만 바라보았다. 유년 시절에 워낙 자주 다니던 곳이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친구들 재잘거리는 소리와 험한 돌계단을 씩씩대며 올라오는 숨찬 소리가 갑자기 내가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주차장에 걸어들어오다 심심한 입을 달래고자 매점을 보게 되었다. 매점 앞 배너에 빵이 오백 원이라는 광고판을 따라 가게 앞에 서서 빵 5개를 주문했다. 방은 틀에 반죽을 붓고 팥과 슈크림 치즈 등을 주문받아 속을 채울 수가 있었는데, 5개를 주문했기에 다양하게 속을 채워달라고 했다. 빵이 구워지는 동안 결재를 먼저 한다고 '2천5백 원이죠?'하고 되물었다. 가게 주인이 나를 쳐다보았다. '사천 원이에요'한다. 나는 배너를 가리키며 빵이 오백 원이라고 되어있다고 했다. 가게 주인은 '오백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옆에 서 있던 권사님이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고 나는 그제야 빵 이름이 '오백빵'이라는 걸 이해했다. 2만 원을 결재했다. 사천 원이라 해도 샀었겠지만, 어쩐지 상술에 놀아난 것 같은 기분 탓인지 빵을 먹으면서 툴툴거렸다.
우리는 소정방으로 향하는 코스를 따라 걸어들어갔다. 소정방의 폭포는 길이가 짧기는 하나 백중날이면 폭포 아래 신경통 치료를 위해 비닐포대를 뒤집어쓰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온몸에 맞으며 짜릿한 쾌감을 느끼느라 어른들이 바글거렸던 곳이다. 험한 바위와 흔들거렸던 돌계단들은 안정되게 손을 보고 오르내리기에 위험하지 않도록 보수해 놓았다. 검푸른 바다는 바위에 부딪치며 거품을 만들어냈다. 어릴 때 소정방 바다는 항상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는 절벽과 가파른 계단, 험한 바위에 직접 부딪치는 파도가 늘 무서웠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만만하지는 않아 우리는 대나무 숲이 우거진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소정방 위로 올라가면 중.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괜히 폼 잡는다고 이곳 '파라다이스'호텔 야외로 자주 왔었다. 그때는 관광 산업이 일지 않을 때였다. 잘 지어진 건물과 빼어난 경관이었음에도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게 사람이 많았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주변의 경관과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훌륭한 건물이었다.
어릴 때 생각 없이 봐 왔던 경관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음을 지금에야 알아보다니, 천혜의 자연을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장님이었다. 그때 그 동무들은 보이지 않아도 새로운 벗들과 새롭게 조성된 이곳을 보면서 거니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았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 벗들도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왔을 것이었다. 얻은 것도 있겠지만 잃은 것은 없었겠는가. 오늘 잠깐의 나들이로 수고했던 시간을 더러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았다. 기분 좋은 가을 나들이가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 없이 휘젓고 다니면서 발 도장을 찍었던 기억들이 흑백사진처럼 떠올랐다. 웃음소리가 해맑은 어린 숙녀들의 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