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일정으로 어른들을 모시고 아르떼 뮤지엄 관람을 다녀왔다. 아르떼 뮤지엄은 제주의 자연을 계절마다 독특하게 영상에 담아낸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다. 나도 얘기만 듣고 가보기는 처음이어서 기대되었다. 원래는 유람선을 타기로 되어있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계획이 바뀌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렸고 승합 차에는 빈자리 없이 할머니들이 앉아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운전석에 앉은 목사님은 ‘자, 이제 출발하겠습니다.’라는 신호로 차의 시동을 걸었다. 승합 차가 먼저 천천히 출발했고 두 대의 승용차가 뒤를 따랐다.
최근에 교회 분위기를 보면 노인 세대가 중장년보다 많이 차지한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노인 세대가 많은 편이다. 어떤 어른은 가끔 치매가 아닐까 의심이 될 때도 있다. 예배 중 주위에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말해서 교인들이 고개 돌려 쳐다보게 하는 일이 있어서다. 나도 처음에는 가서 말려야 한다고 했으나, 몇 번 보게 되니 익숙해졌다. 할머니들은 걸음이 자유롭지 못해서 식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몇 걸음 걷고는 서서 심호흡하고 다시 움직이곤 한다. 그러니 걷는데 자유로운 여성도들은 불편한 노인들의 거동을 위해 같이 다녀야 했다.
나도 걸음이 힘든 할머니 한 분과 손을 잡고 입장하게 되었다.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도 많고 현란한 영상과 음악으로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 사방은 꽃과 그림들의 짙은 원색이 빠르게 혹은 느리게 움직여서 잠깐잠깐의 불빛을 따라 더듬거리며 가야 했다. 할머니와 나는 벽을 만지면서 확인하듯 천천히 걸었다. 어느 넓은 방에 들어갔더니 잔 꽃잎들을 사방으로 뿌리며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나도 눈앞이 아득하여 정신이 없었다. 할머니는 내 손을 으스러지게 꼭 잡고 있었다. 발을 바닥에서 뗄 수가 없는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더 나아가지 못하는 할머니를 그냥 제자리에 앉으라고 옷자락을 끌어당겨 바닥에 앉혔다. 엉거주춤 서 있던 할머니도 내가 붙들고 있어 안심했는지 서 있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할머니와 나는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촉감에 안심했다.
두 다리를 뻗고 앉아,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흐드러진 꽃잎이 바람 불어 날리는 분위기에 취했다. 할머니와 나는 기분 좋게 앉아, 손 등을 타고 흐르는 꽃잎을 손으로 건져 올려도 보았다. 손에 쥐어져 만지거나 촉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공적인 기계음이라 해도 눈과 귀는 덕분에 호강했다.
잠시 후에 다른 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들어오는 분들을 향해 신이 나서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앉아! 앉아! 거기 그냥 앉아!'라고 소리쳤다. 들어오던 분들이 놀라서 더 걸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깐 사이에 입구에는 우리 교인들이 들어올 때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게 되었다. 나는 졸지에 일어서지도 계속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얼떨결에 앉게 된 다른 분들이 슬금슬금 일어서서 천천히 돌아 걸어가며 구경했다. 흥이 사라진 할머니도 내 손을 잡고 다른 방으로 걸어갔다. 할머니는 한 바퀴 돌아 '나가는 곳'에서 차량을 대기하고 있는 목사님을 만나서야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았다.
할머니가 내 손을 놓았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웠다. 기다리는 일행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도 코끝에 스치는 공기가 신선했다. 할머니와 같이 다닌 시간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어도 무거운 짐을 벗은 가벼움으로 걸음이 빨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축축해진 겉옷과 가방을 정리하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이유를 꼬집어 ‘이것이다’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은 알고 있었다. 세탁실 문을 열고 열린 세탁기 통으로 빨랫감을 집어던졌다. 싱크대에 있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 넣으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와 보냈던 시간이 떠 올려지자 가랑비에 젖은 옷을 입은 것처럼 개운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불편한 걸음에 내 걸음걸이를 맞추어 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 분위기를 엉뚱하게 몰아가 당황했던 순간을 할머니의 탓으로 미루고 싶었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은, 사람들 사이의 교제이다’라고 ‘심리학 입문’에서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은 비슷해 보이는 사람끼리 무리 짓는다. 그래서 ‘끼리끼리’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들릴 때도 있다. 더디게 걷는 사람과 천천히 걸어가며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계곡의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사방으로 날리는 꽃잎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던 시간을 떠올렸다. 더러는 진정한 마음이 아니었어도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같다 보면 마시는 공기처럼 아무렇지 않은 순간이 오게 될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따뜻한 커피가 서늘했던 가슴을 녹이면서 맛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