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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Apr 23. 2024

두 손이 불도저인 여자

  옥희는 이곳 판포리의 땅을 매입하고  가슴이 설레었다. 

  몇천 평이나 되어 아주 넓은 곳도 아니고 비옥하지도 않았다. 그냥 땅이라고 불리었다. 땅이라고 해도 흙은 볼 수가 없었다. 돌과 바위틈을 무론하고 사방이 오래도록 자라 가시 돋친 선인장만 무성할 뿐이었다. 측량했던 직원들조차 선인장 가시에 찔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옥희는 평생에 한번 가져보고 싶었던 땅이기에 내 땅이라고 불렀다.

  땅을 샀다는 말에 다녀가신 엄마는 한심한 표정을 지으셨다.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오신 엄마는 흙 한 톨 보이지 않는 이곳이 어째서 땅이냐고 하셨다. 기름진 옥토라면 더 좋았겠으나 아무려면 어떠랴. 

  그나마 옥희를 위로하는 것은 고개 들어 주위를 돌아보면 망망대해 바다가 보이고 경계선 안에 자라있는 두 그루의 큰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이다음에 애쓰지 않아도 멋있는 조경을 만들어주고 그늘을 제공할 것이다. 둘레를 경계 삼아 허름하게 쳐놓은 돌담은 제주의 특색 있는 돌담으로의 가치를 느끼게 해줄 때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또 다독거렸다. 

  그러다가도 아주 가끔은 이 볼품없는 땅을 왜 샀는지 스스로도 무너질 때가 있기는 했다. 특히나 어쩌다 겨울에 찾아와 황량한 이곳에 감당하기 어려운 세찬 바람이 싸대기 후려칠 때는 정신이 아득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땅을 샀다고 자랑했지만 고향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순간 "하필이면 그곳에"라고 핀잔하는 말은 옥희를 더 기가 죽게 만들었다. 다른 이들은 옥희가 손가락으로 꼽는 가치를 무시했다. 

  어느 해 이른 봄이 되어 아직 겨울바람의 끝이 추웠지만 옥희는 땅을 밟고 섰다.  

  내 땅이라 하면서 도저히 발을 디딜 수 없던 이곳을 덤프트럭을 빌려 흙을 사다가 메웠다. 바위와 가시 돋친 선인장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깨끗한 황토 흙이 펼쳐졌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돌담으로 울타리를 만들어서 내 땅을 만들었다. 이제 선인장 대신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동식 주택을 갖다 놓아 가족들이 오면 쉴 수도 있게 되었다. 이곳에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비웃었던 남편도 눈빛이 달라졌다. 어쩌다 찾아오면 구석구석 미진한 곳을 손끝이 야무진 남편이 손보고 다듬었다. 

  우리 가족은 '나무 심는 날'을 만들기로 했다.

  사월이 되어 온 가족이 나무를 심기 위해 모였다. 울타리 둘레를 돌아가며 동백나무를 심고 봄이 되면 꽃을 봐야 한다고 벚나무, 철쭉 등을 심었다. 삽이며. 호미를 동원하여 작업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땀을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렇게 즐거운 노동이 있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점심때가 돼서는 중국집에 연락하여 배달을 시켰다. 

  잠시 후에 중국집 직원이 콘테나 박스에서 짜장이며 짬뽕, 볶음밥과 탕수육을 꺼내 우리가 깔아놓은 골판지 박스 위에 꺼내놓았다. 배달된 음식들이 야외에 준비된 훌륭한 식탁 위에 화려하게 나열되어 우리를 침샘을 자극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우리 가족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웃으며 쳐다보며 심겨있는 나무를 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땀을 흘린 후에 이렇게나 맛있고 근사한 음식을 아마 다시 먹어볼 기회가 있을는지는 모를 일이다. 비록 거친 풀밭에 골판지를 깔고 중국집에서 배달된 음식을 먹어도 우리는 다시없을 행복한 시간을 함께 누렸다.

  가족들이 각자  할 일을 위해 떠난 후 옥희는 팔을 걷어붙였다. 목이 긴 장화와 꽃무늬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삽과 호미 등의 연장을 든 옥희가 찬 공기를 마시며 새벽바람을 맞았다. 가시 돋친 선인장과 바위투성이였던 곳은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돌담을 따라 이런저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큰 꽃을 좋아하는 옥희는 군데군데 수국을 심어 다음 해부터 피워낼 화려한 자태를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덩치가 큰 바위도 옥희의 두 손이 밀어내는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굴러갔고 고르지 못한 흙이 쌓인 곳은 삽이며 호미가 해결했다.

  심은 나무가 모두 잘 자라지는 않았다. 해풍이 심한 곳이라 겨울바람을 이겨낼 장사는 없는 듯했다. 기대를 모았던 큰 소나무도 재선충이 휩쓸고 지날 때 무사하지 못하고 베어져나갔다. 봄부터 싹이 돋던 나무도 겨울이 지나면 죽어나가는 나무가 생겨 옥희의 가슴을 쓰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봄이 되면 또 나무를 사다 심고 또 심었다. 해풍에 시달리느라 동백나무도 돌담 이상의 높이보다 자라기를 힘들어했다.

  몇 해가 지나자 벚나무도 잎이 많이 달려  따가운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을 흩날려주었다. 겨울이 되면 동백나무에 달린 화려한 겹동백이 지나가는 이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 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했다. 나무를 심겠다고 했을 때 웃었던 사람들도 마당 한가운데 들어서면 찬찬히 살피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마당 입구에 심어진 달맞이꽃은 봄이 되면서 온 동네를 연한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옥희의 두 손은 황폐하게 버려진 곳을 만지면서 아름답게 만들어갔다. 돌을 운반하고 흙더미를 옮기느라 리어카도 망가져갔다. 

  새로운 화초를 심을 때마다 옥희는 다음 해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장화를 신고 꽃무늬의 챙 있는 모자와 삽과 같은 연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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