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유부남 애인
지인 C의 이야기
나에겐 아주 완벽한 유부남 애인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처음부터 유부남을 사귀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는 본인이 유부남이라며 저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이 싱글인 척했다면 더 싫었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그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와 성격이 닮은 그 사람. 어떤 행동을 할 때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와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유부남을 만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끙끙 앓았던 것 같습니다. 유부남을 만나도 될까 고민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 남자를 만날 명분을 억지로 찾기 위해서 아팠습니다. 나에게 시련이 많았던 만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유부남 만나도 된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차피 결론을 정해놓고 나머지를 끼워 맞추는 과정이었습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의 이론을 그대로 끼워 맞췄습니다.
나의 완벽한 유부남 애인은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면 됩니다. 더 만나고 싶어도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그에겐 무리입니다. (더 만나달라고 조르지 않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밤에 전화하는 일이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양다리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외로운 밤에 전화해 달라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 않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갑자기 먼저 전화하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통화가능한지 먼저 문자로 물어보고 가능하다고 하면 전화합니다.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가끔 연락이 안돼도 섭섭해하지 않습니다. 그저 바빴나 봐하고 맙니다. (연락 안 해도 섭섭해하지 않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간섭하는 일이 없습니다. 저와 늘 함께 할 수 없기에 간섭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습니다. (본인 일과 가정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먹고 싶은 건 비싸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용돈을 줍니다. 하지만 같이 맛집을 가는 일은 없습니다. (같이 맛집 가자고 조르지 않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가끔 너무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선물을 줍니다. (먼저 뭔가를 사달라고 한 적이 없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누군가를 동행해서 만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애인이 없는 척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친구들과 만나자고 조르지 않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한번 한 약속은 웬만해선 지킵니다.(똑같이 약속 잘 지키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함부로 남의 욕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는 욕먹을 수 있다는 걸 서로 잘 알기 때문인가 봅니다. (똑같이 남의 욕 하지 않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합니다. (똑같이 책임감이 강한 내가 좋은가 봅니다)
제 남편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그의 아내가 되려고 하지 않는 내가 정말 좋은가 봅니다)
하지만 나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고 싶기도 하고, 밤에 오랫동안 전화통화 하고 싶기도 하고, 먼저 연락하고 싶을 때도 있고, 연락이 안 되면 섭섭해하는 것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가끔은 제 일에 간섭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비싸지 않아도 같이 맛집에도 가보고 싶고 긴 줄을 함께 기다려보기도 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그의 친구랑도, 또 가끔은 나의 친구랑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중요한 약속을 어겨가면서라도 나를 만나러 오는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저와 함께 하고 싶어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걸 바라지 않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 언젠가 그의 아내에게 들킨다면 일방적으로 저 혼자 좋아한 것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내가 좋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