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혼 후 아이아빠는 한 번도 아이를 만나러 오지 않았습니다. 양육비를 한 번도 주지 않아서일까요? 그렇다고 해도 면접교섭권은 정당한 권리인 거 같은데 어떠한 이유가 되었건 만나고 싶다는 연락조차 받은 적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그땐 저도 어렸을 때라 아이를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아빠이기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만나도 좋다고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아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혼할 때 양육비를 안 받겠다고 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도록 한 번도 안 줄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아이 아빠이기에 형편에 맞게 조금이라도 주려는 시도라도 했었다면 덜 슬펐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경제적인 상황이란 것도 언제나 안 좋지만은 않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때로는 여유롭기도 하고 때로는 궁핍하기도 하지 않을까요? 돈으로 주지 않더라도 자그마한,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졸업식 때마다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더라면 못 만나게 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아니 자라는 과정에서 보고 싶다고 하면 설사 이혼할 때 그런 약속을 했다 하더라도 만나게 했을 것 같습니다. 그저 그때의 약속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 전, 20대의 마음이었으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그 마음이 조금씩 풀렸습니다. 이렇게 계속 만나려는 시도도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정말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이도 커가면서 분명 슬펐을 겁니다. 혹시나 이제는 만나러 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생각까지 하니 더 슬픕니다.
아이도 나름 눈치가 있어서인지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친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어느 날 아이 사촌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아이에게 만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성인이니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만나겠다고 하더군요. 친한 친구처럼 지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끔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가끔 같이 밥도 먹고 쇼핑도 했습니다. 사촌과 잘 지내고 싶어 하는 걸 제가 막을 이유도, 권리도 없으니까요.
한 가지 두려웠던 건 사촌을 통해 친아빠의 소식을 알게 될 텐데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 두렵긴 했습니다. 사촌은 분명 자신의 삼촌(아이의 친아빠)에게 어떻게 컸는지 소식을 전했을 겁니다. 아이에게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분명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을 겁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줄 수 없는…..
그렇지만 친아빠의 소식은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친아빠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운데 본인 꼴이 아이 앞에 나설 정도가 아니라서 도저히 만날 용기가 없다고요. 100억을 벌면 아이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겠다고요.
황당했습니다. 본인 형편이 아이 앞에 나설 정도가 아니라는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는데 만날 수 있는 부의 기준을 듣고 이게 실제로 친아빠란 사람이 할 말인가 싶었습니다.
좋게 들으면 돈 많이 벌어서 당당하게 만나러 오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그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루라도 빨리 그 사람이 100억 벌길 기도 해야 할까요?
아이와 친아빠가 만나는데 부자여야만 되는 걸까요? 당당함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정도의 부라는 게 100억이라는 엄청난 돈이 필요한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핑계로 들렸습니다.
행여라도 아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이의 기분이 어떨까요?
아빠가 형편이 안 좋아서 지금까지 못 만나러 온 거였구나 하고 받아들일까요?
이제 성인인데…. 나의 친아빠는 여전히 날 만날 마음이 없구나라고 받아들이진 않을까요?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이는 더 슬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