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 되시죠? *** 여자친구가 임신한 거 알고 계시죠?”
11년 전 어느 날 나는 이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그대로 얼어버렸습니다. 다행히도 그때의 나는 이럴수록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고 이 전화가 보이스피싱이건 아니건, 진실이건 아니건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맞는데 왜요?”
착각일 수도 있지만 순간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걸 알고 계신다는 거죠?”
마치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사람처럼 적어도 그래야 이 싸움에서 이길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상대에게는 싸움도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요.
“***씨랑의 일은 ***씨랑 얘기를 하셔야지 왜 저한테 전화를 하셨죠?”
이겼습니다. 이미 난 이긴 것 같았습니다. 너무 놀라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지만 티 나지 않게 잘 말한 것 같아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어느새 흐르고 있었지만 우는 소리 내지 않고 잘 말했다 여겨졌고 그런 내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일은 지금까지도 정말 잘했다고 나한테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걸 알지만.... 나의 이런 대답은 예상 밖이었는지 상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때가 전화를 끊을 최고의 타이밍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곤 온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쓰러졌는데 순간적으로 모든 힘이 그렇게 빠져나갈 수 있는 건지 아주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서 화라도 내야 되나 잠시 망설였지만 받는 순간 내가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혹시 이 전화가 정말 보이스피싱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확인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에서 이미 진실이라는 직감이 왔습니다. 부정하고 싶었는데 직감이라는 것은 가끔 아주 무서운 힘을 발휘하죠. 이미 모든 걸 받아들인 사람처럼 쓰러진 채 하염없이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실이 아니길 바라면서 받아들이길 거부하면서도 몸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 그거 보이스피싱이야.”
“ 내 친구도 그런 비슷한 전화받았대……….”
그 뒤로도 뭐라고 계속 말하는데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하나의 거짓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7개의 거짓말이 필요하대.”
갑자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습니다.
어라? 또 다른 7개의 거짓말이 필요할 텐데….
이런 직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이 사실이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당신이 그럴 리가 없지…라고 말을 했어야 됐을까요? 하지만 이런 말들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통하지도 않을 거짓말을 시작하는 남편을 믿는 척이라도 했어야 되는데 속으로 그게 힘들었어도 겉으로는 그런 시도라도 했어야 됐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 순간이 살짝 후회가 됐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이미 외도는 기정사실이고 그렇다면 나란 사람은 외도한 상대가 꽃뱀이라면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일까? 우리에겐 가족이 있으니까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남편 편이 들고 싶어 졌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 상간녀를 꽃뱀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지까지 그게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건지 고민했습니다.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런 초인적인 힘을 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를 요구했어?”
이미 나는 당신 편이야 라는 걸 증명해 주기 위해서 바락 하는 것처럼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남편이 잠시 망설이는데 이미 그 표정에서 남편의 거짓말은 이미 실패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답변을 듣기 전부터 내 가슴은 울기 시작했다.
“3백만 원. 수술비랑 위로금 합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