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만져지는 지점

by 백아절현

완연한 봄햇살에 자연스레 산책길을 나섰다. 1분 쯤 걷다보니 저 멀리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보건선생님이 함께 산책 중이셔서 인사를 드렸더니 “차장아~~같이 걸을까~?” 하시는 물음에 “네 좋습니다~” 하고 열심히 달려가 합류했다. 학교에서 벗어나 아기자기한 바닷 마을을 걷는 와중, 세 분은 당신들이 가꾸시는 화단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나는 예의바른 막내답게 뒤에서 입 다물고 경청 중이었다.

그러다 교장 선생님은 심어놓은 씨앗이 매번 새들이 파먹어 싹을 틔우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울상이 되셔서 한숨을 푹 쉬시길래,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여워서 웃음을 터뜨리며 “교장 선생님, 그게 그렇게 한숨을 크게 내실 일입니까?” 하고 여쭤봤다. 그러니 옆에서 교감 선생님께서 “차장님, 우리가 키우는 씨앗이 생명을 피우면 얼마나 행복한지 아나? 그거 안올라오면 진짜 진짜 속상하다?”고 하시더니 “난 우리 남편이랑 싸웠다가 화단에 가서 내 새끼들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남편이 화단 앞을 지나갈 때 나 혼자 기분이 풀려서 ‘짝지야~ 사랑해~’ 이렇게 말한다?” 난 또 웃음을 터뜨렸고, 옆에서 듣고 계시던 보건 선생님께서 “차장님 이해 안가지요? 이 나이 되면, 이런거에 재미를 느낀다?” 그러고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보건 선생님은 산책 길 중에 “어머~ 저 꽃이 저번주랑 색이 완전히 달라졌네?” “어머~무슨 무슨 꽃이네” 하며 길거리의 꽃들에 인사를 하고 봄을 온전히 느끼시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 산책은 끝이 나고 다시 일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날의 하루가 끝이 나고 잠들기 전 유튜브를 잠깐 켰다. 배우 박지환님이 본인의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을 옮겨주었는데 “지환아, 나이가 들수록 내 삶을 내가 만져지는 지점이 와. 식물 하나를 키우는데 젊을 때는 이것이 돈이 되나 안되나를 생각했다면, 지금은 나의 작은 공간에 이런 식물 하나 키우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 나이 되니까 생각하고 마음을 다하면 그것들이 다가오고 만져지고 내 마음대로 빚어지는 순간들이 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데 점심 시간 함께 산책했던 세 분이 곧바로 떠올랐다.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보건선생님이 배우 박지환님의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시기를 지금 지나고 계신거구나. 씨앗 하나에 속상하고, 새순에 활짝 웃고, 꽃을 보며 행복해하시는 그 분들이 떠올랐고, 산책 후에 내가 마음이 따뜻해졌던 이유가 있었구나. 삶을 온전히 느끼시고, 생명과 계절의 작은 변화까지도 받아들이시는 분들이시구나. 그래서 그 분들과의 시간이 따뜻했구나 싶었다.

작은 이끼를 키우며 행복해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주던 친구 성호에게 물어봤던 적도 있다. “그게 재밌나?” 성호는 대답했다. “이 작은 이끼에 생태계가 담겨있다 순. 아름답고 경이롭다.” 그리고 내가 이 곳에 발령 받았을 때 선물로 받았던 화분을 나보다 정성스레 키워주시고 계신 채주무관님까지. 내 주변에는 삶을 만지고 빚어가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따뜻하고 그들에게 감사했다. 작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하는 분들. 오늘도 내가 봄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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